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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통일부·행정안전부·국가보훈처·인사혁신처 정책방향 업무보고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통일부·행정안전부·국가보훈처·인사혁신처 정책방향 업무보고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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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단어는 중립적이지 않다. 말에는 언제나 그 말을 선택하고 사용하는 사람이나 집단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특히 그 집단이 현실에서 매우 큰 권력을 가진 정부라면, 그 말에는 매우 분명한 의도와 목적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광주 시민을 학살한 위에 세워진 전두환 군사독재가 내건 정당 간판이 '민주정의당'이요 그들이 외친 구호가 '정의사회 구현'이었다는 건, 말로 현실을 가릴 수 없던 시대의 '촌극'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외치는 '노동 개혁'은 어떨까? 그것이 노동삼권을 부정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공안 탄압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 그 범위 밖의 많은 사람에게 '개혁'이란 말은 그 대상인 노동조합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개혁'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은 언제나 밑지지 않는 장사일 때가 많다.

'이중구조' 단어 뒤에 감춘 현실... 자본과 정부 책임은 왜 쏙 빼나 
 
화물연대가 파업을 종료하고 현장 복귀를 결정한 지난해 12월 9일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한 조합원이 눈물을 닦고 있다.
▲ 눈물 닦는 화물연대 화물연대가 파업을 종료하고 현장 복귀를 결정한 지난해 12월 9일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한 조합원이 눈물을 닦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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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윤석열 정부에게 이보다 더 쏠쏠한 효과가 있는 말이 있으니,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바로 그것이다. 지난 여름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이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고 외치며 파업투쟁을 했을 때, 윤석열 대통령은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조합 파업 사태와 관련해 지난해 7월 19일 "기다릴 만큼 기다리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라며 공권력 투입 가능성을 시사하는 한편,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겠다고도 말했다. 

그 후 윤석열 정부는 노동정책과 관련해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말을 주구장창 사용해왔다. 그러한 노력 탓일까, 요즘은 노동계 일각에서도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정도면 정부 입장에서는 대성공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팍팍 미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말은 현실을 가리고 왜곡한다. 이전에는 어떤 말을 썼는지 한 번 돌아보자. 한때 원-하청 문제와 관련해 '갑질'이란 말이 많이 사용됐다. 경제적 착취를 경제외적 혹은 도덕적 문제로 표현한다는 한계는 있지만, '갑질'이라는 말이 가리키는 책임의 주체은 재벌 또는 원청이다. 즉 '갑질'이라는 말은 잘못된 현실이 누구 때문인지 가리키고 있다. '원-하청 불공정거래'라는 말 역시 마찬가지다. 

'비정규직 차별'이라는 말이나 조선소에서 많이 쓰는 '다단계 하청'이라는 말도 그렇다. 단어 자체에는 직접 나타나 있지 않지만, 차별을 만들어내는 주체, 다단계 하청이라는 부당한 현실에 대한 책임 주체로 '원청'을 가리키고 있다. 

이에 비해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말은 어떤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말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 마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어떤 직접적인 가치 판단은 담기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객관성과 중립성을 가장한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이 말은, 그것이 지칭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즉 노동자만 보이게 하고, 누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만들었고 누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통해 이익을 챙기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게 한다. 다시 말해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말은 그것의 원인이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자본은 그 말 밖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자본은 사라지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만 보이므로, 이제 문제가 있다면 그 화살은 정규직에게 향하게 된다. 비정규직이 겪는 저임금 등 부당한 대우와 차별은 정규직 탓이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결국, 윤석열 정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말을 줄곧 사용하는 까닭은 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조합을 공격하기 위한, 즉 노동자들을 갈라치기 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은, 실제로 그런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한편, 정규직을 공격한다고, 그래서 정규직의 노동조건을 하락시킨다고 해서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이 나아질 리 없다. 달리 말하면, 윤 정부의 노동정책은 한편으로 정규직을 공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비정규직의 부당하고 열악한 노동조건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는 얘기다.

더욱 심각해지는 조선소 인력난의 근본 원인이 하청노동자 저임금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은, 어떻게 해서든 하청노동자 저임금을 유지하기 위한 것들 외엔 잘 보이지 않는다. 

정부의 인력난 해소 해법, 저임금 구조 유지인가

윤석열 정부는 이주노동자 대량 고용을 통해 조선소 인력난을 해결하려고 하는 듯하다. 최대 5년 동안만 일할 수 있는 E9비자(비전문취업)로는 숙련이 애초에 불가능하므로, 숙련기술인력을 대상으로 하는 E7비자(특정활동)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규정상 E7비자는 임금이 최소한 전년도 1인당 국민총소득(GNI)의 80%가 되어야 한다. 즉, E7비자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려면 기본급을 약 270만 원 정도 줘야 한다는 얘기인데, 이는 통상 200~230만 원 정도 되는 최저임금 수준의 조선소 하청노동자 임금보다도 훨씬 높은 금액이다. (달리 말하면 10년, 20년 조선소에서 일해온 하청노동자 기본급 또한 최소 270만 원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업들 측은 오히려 E7비자도 최저임금을 줄 수 있도록 제도 변경을 요청했고, 이에 발맞춰 정부는 규정을 GNI의 80%에서 70%로 낮추기로 결정했다. 결국, 윤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을 유지하게 되면 이는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저임금을 유지하게 만드는 결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저녁이 있는 삶보다 저녁 드실 여건부터 갖춰 드려야 한다(지난해 12월 20일, 본인 페이스북 글에서)"라는, 일종의 말장난을 하며 주52시간제를 허물어뜨리려 하고 있다. 하청노동자 임금을 올려서 저녁을 편하게 먹을 여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저임금을 유지한 채로 장시간 노동을 한 뒤에 저녁을 먹으라고 대놓고 얘기하는 것이다.

더구나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겠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조선소 업무 현실에는 온갖 불법과 중대재해의 근본 원인인 다단계하청 구조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저임금 탓에 상용직 하청노동자를 구할 수 없으니 물량팀, 아웃소싱 등 다단계 하청고용을 늘리고 있다. 이에 따라 이중구조는 고사하고, 하청은 오히려 삼중구조와 사중구조까지로 더 심화되는 상황이다.

현재 상황이 문제? 현실 똑바로 직시해야 해결할 수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해 10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등에 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는 모습.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해 10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등에 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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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현실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현실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단어부터 제대로 써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사용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말로는 원청의 하청노동자 착취, 비정규직 차별, 다단계하청 등의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으며 진짜 사장, 원청에 책임을 물을 수도 없게 된다.

그러므로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말은 쓰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단어가 감추고 있는 것, 가리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보고,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묻는 싸움에 힘을 집중해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김춘택님은 김용균재단 회원이자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사무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김용균재단, #노동시장 이중구조, #이김춘택, #원청 사용자성, #인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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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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