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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책 표지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책 표지
ⓒ 클레이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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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에 피운 모닥불 같은 소설

소설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 수상작으로, 먼저 읽은 독자들의 요청으로 인해 종이책으로 출간된 소설이다.

코로나 펜데믹이 지나는 3년 동안 우리는 보이지 않는 장막을 사이에 두고 마음이 닫히고, 멀어지고,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이제 식어버린 마음을 다시 따뜻하게 데워 온기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우연히 만난 한 권의 소설이 마음에 모닥불을 피워주었고, 타닥 타닥 타오르는 불빛이 온몸을 따뜻하게 감싸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소설은, 모두가 둘러앉아 손을 녹이고 싶게 만드는 '앞마당에 피워 놓은 모닥불'같은 소설이다.

요즘 비슷한 포맷과 비슷한 표지의 책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시대의 흐름이 '온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어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황보름 작가의 뛰어난 문장력 덕분에 비슷하지만 완벽하게 다른 감동을 전해준다.

소설책을 읽을 때는 그저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이입해서 읽기 때문에 문장에 줄을 긋는다거나 포스트잇을 붙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책에는 빼곡하게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마음을 술렁이게 하는 문장들, 멈춰서 계속 되새기게 만드는 문장들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소설의 배경은 휴남동 서점이다. 서점에서 만난 사람들, 크고 작은 상처와 희망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그려지고 있다. '서점'이라는 공간이 주는 포근함 덕분에 대화는 내밀해지고 풍성해진다.

이 서점에 발을 딛는 순간, 무거운 세상의 짐은 내려놓고 물 한 모금 마시는 여유를 갖게 된다. 그렇다고 명확하게 인생의 정답을 제시해 주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소설,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소설이라고 하겠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위로를 얻게 될 수도, 희망을 보게 될 수도 있다.

나를 소외시키지 않는 공간

작가는 "어느 공간을 좋아한다는 건 이런 의미가 되었다. 몸이 그 공간을 긍정하는가. 그 공간에선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그 공간에선 내가 나를 소외시키지 않는가. 그 공간에선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가"(10쪽)라고 공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시끄러운 세상의 소리로부터 벗어난 곳, 일부러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구석진 곳, 마음이 건강해지는 곳,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주인공 영주는 스스로를 소외시키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기 자신에게 한 번쯤 질문을 던져보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어떤 공간을 좋아하고 있는가? 나 자신을 소외시키지 않는 공간은 어디인가?'라고.

내 인생의 정답은?

서점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잘 살고 있는 건가? 내 인생이 틀린 건 아닌가?'라는 고민을 한다. 그러나 작가는 이렇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정답을 안고 살아가며, 부딪치며, 실험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안다. 그러다 지금껏 품어왔던 정답이 실은 오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다시 또 다른 정답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평범한 우리의 인생.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 안에서 정답은 계속 바뀐다."(32쪽)

오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정답이 될 수도 있다. 정답이라고 믿었던 것이 오답으로 바뀔 수도 있다. 출제자가 실수로 문제를 잘 못 냈을 수도, 오답을 정답으로 체크했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내 인생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고, 비록 틀렸다고 할지라도 정정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살아도 되지 않을까? 이 얼마나 큰 위안이고 희망의 언어인가!

나를 일으켜 세우는 '책'

휴남동 서점은 책을 파는 공간이므로 책의 효용에 대해 언급된 부분을 한번 되짚어 보려고 한다. 필자는 '다독'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무조건 다독이 좋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읽기는 했는데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책들이 수두룩하다. 그럴 때마다 독서습관이 잘못된 건 아닌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책은 뭐랄까.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라 몸에 남는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아니면 기억 너머의 기억에 남는 건지도 모르겠고요. 기억나진 않는 어떤 문장이, 어떤 이야기가 선택 앞에 선 나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하는 거의 모든 선택의 근거엔 제가 지금껏 읽은 책이 있는 거예요."(57쪽)

이 문장에서 휴~ 하고 마음을 내려놓았다. 대부분의 독서가들이 필자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었다. 기억이 나던, 기억이 나지 않던지 간에 내가 읽은 책 속 문장들은 내 안에 쌓여 있고 필요한 어느 순간에 그 문장들이 튀어 나와 나를 일으켜 세울 것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책은 힘이 아주 세니까 말이다.

그리고 책을 읽는 일과 커피를 내리는 일이 매우 비슷하다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한다.

"책을 읽는 일과 커피 내리는 일은 비슷한 점이 꽤 있는 것 같았다.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 그렇고, 하면 할수록 더 빠져든다는 점이 그렇고, 한번 빠져들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점이 그렇고, 점점 더 섬세함이 요구된다는 점이 그렇고, 결국 독서의 질과 커피의 질을 좌우하는 건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점이 그렇다."(122쪽)

이 문장을 대하는 순간, 천천히 드립 커피를 내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고요하게 책을 한 장씩 펼쳐 보는 여유를 즐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좋아하는 일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십니까?"라는 질문을 한 번쯤은 받아 보았을 것이다. 선뜻 '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좋아하는 일을 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행복하지는 않다고 말하다면 그건 어떤 이유 때문일까? 모호하게 허공을 맴돌던 질문들이 서서히 바닥에 안착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다 행복하진 않아. 좋아하는 일을 좋은 환경에서 하면 모를까. 어쩌면 환경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겠네.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지 않다면, 좋아하는 일도 포기하고 싶은 일이 되어버리거든. 그러니 우선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그럼 무조건 행복해질 것이다,라는 말은 누구에겐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어. 어쩌면 너무 순진한 말이기도 하고."(273쪽)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좋은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좋아하는 일도 포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하고, 공허하기도 하다. 좋은 환경에서 자신의 꿈의 거처를 찾아 향해 직진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텐데... 그런 환경과 시스템이 구체적으로 잘 마련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 하나, 일과 밥의 연관성에 대해 언급한 문장이 매우 흥미롭다.

"저는 일을 계단 같은 것으로 생각했어요. 제일 꼭대기에 도달하기 위해 밟고 올라가는 계단. 하지만 실제 일은 밥 같은 거였어요. 매일 먹는 밥. 내 몸과 마음과 정신과 영혼에 영향을 끼치는 밥요. 세상에는 허겁지겁 먹는 밥이 있고 마음을 다해 정성스레 먹는 밥이 있어요. 나는 이제 소박한 밥을 정성스럽게 먹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를 위해서요."(343쪽)

필자는 지금껏 밥상 위에 너무 많은 반찬을 차리려고 노력하면서 살았다. 맛깔스러운 반찬 한두 개만 있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 이제 소박한 밥상에서 손수 차린 음식들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면서, 꼭꼭 씹어 정성스럽게 먹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저 밥만 먹는 것이 아니라 밥상 앞에 둘러앉아 따뜻한 대화를 나누면서 소화 잘 되는 식사를 하고 싶다.

단, 좋은 사람들, 서로를 이해해 주는 너그러운 사람들, 가식이 아닌 진짜 마음을 내어주는 사람들과 식탁을 공유하고 싶다.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사람들과 함께 매일매일 의미 있는 하루를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사람들 속에 투영된 내 모습을 직시할 수 있는 순간이 가장 귀한 것이라는 생각을 안고 살아보려고 한다.

이 소설의 압권은 단연코 심리 묘사라고 할 수 있다. 등장인물들의 마음의 결을 따라가다 보면 소설 속에 점점 빠져들게 된다. 또한 그들이 펼쳐 놓는 고민들은 어느 한 개인의 고민이 아닌 우리 모두가 생각해 볼 만한 이슈이기에 더 큰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힘들지? 하지만 넌 틀리지 않았어. 지금 이대로 괜찮아"라고 위로해 주는 소설이다.

황보름 작가는 자신이 읽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 속에서 이토록 깊이 있는 대화가 이뤄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잃어버렸던 감정들, 지우고 살았던 생각들과 뜨겁게 조우해 결국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사유해 볼 수 있는 소설이라고 하겠다.

'내 꿈의 거처가 어디인지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걸어가보겠다'고 다짐하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지은이), 클레이하우스(2022)


태그:#황보름, #어서오세요, #휴남동서점입니다, #꿈의거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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