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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변호사회(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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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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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서울지방변호사회 6급 사무국 직원 A씨는 서울지방변호사회(서울변회) 및 전임회장 김아무개 변호사가 근로기준법을 위반했다며 서울고용노동청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김 변호사가 회장 재임 시절 사적인 용무에 운전을 지시하는 등 업무 외 지시를 했고 그에 따른 야간노동으로 주 52시간제를 위반했다는 내용이다. 그는 서울변회가 추가로 일한 시간만큼 지급돼야 할 수당도 제대로 주지 않아 근로기준법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A씨가 주장하는 연장 노동 시간은 8개월 간 총 284시간 정도. 법정 최저임금 8720원(2021년)으로 셈하면 미지급 임금은 최소 371만여원이다.

A씨는 미지급 임금도 문제지만, 진정에 나선 더 중요한 이유는 명예회복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24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2년 동안 쌓인 수치심을 치유하고,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결과로)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적 술자리인데 밤 10시까지 대기"

사건의 발단은 회장의 '업무 외 지시'였다. A씨는 이를 직장갑질이라고 주장한다. A씨는 2020년 봄 회장 운전을 맡는 사무국 직원으로 입사했다. 관리팀 소속으로, 회장이 변호사회 업무와 관련해 이동할 일이 있으면 운전을 수행했고, 그 외 시간엔 용역계약·세금 관리 등 관리팀 행정업무를 함께 봤다.

서울변회는 서울에서 개업한 변호사들이 의무로 가입하는 상설기관인데, 회장·이사진 등의 집행부는 2년마다 선거로 뽑힌다. A씨는 2021년 선출된 신임 회장을 수행하며 갑자기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골프·술자리 등 변호사회 업무가 아닌 일정에까지 수행기사로 나가 늦은 밤 까지 차에서 대기하는 게 일상화됐다는 것이다. 당시 회장이 배우자가 출산한 병원과 산후조리원을 가는 데도 운전을 수행했다고 A씨는 주장했다.

A씨는 신임 회장을 수행한 지 5개월이 지날 무렵 왼손에 마비 증세를 느꼈다. 밤마다 차에서 대기하는 날이 많아지고, 자신이 개인 비서처럼 쓰인다는 부당함을 느끼면서 스트레스가 쌓여 있던 터였다. 당시 A씨는 한 달 전부터 회사 측에 여러 번 시정을 요구했고 마비 증세로 병원을 다녀 온 뒤에도 고충을 토로했지만, 이후 두 달 동안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A씨는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면 보직이라도 바꾸는 게 차선책이라는 판단에 보직 변경을 신청했다. 서울변회의 권유도 있었다. 그런데 대기 발령 후 옮겨가게 된 근무처는 '1층 로비 책상'이었다. 1층 코로나19 관련 'QR 코드' 기기가 놓인 책상에 앉아 기기 관리와 방문객 안내를 맡게 된 것이다. 운전 수행은 용역업체 직원이 대신했다. 

1층 로비 책상에서 지하 휴게실 입구 책상으로 바뀐 근무처
 
서울지방변호사회 지하 2층 변호사 회원들을 위한 휴게공간 '서리풀홀'. A씨는 2022년 5~10월 로비에 놓인 책상에서 대기하며 근무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지하 2층 변호사 회원들을 위한 휴게공간 '서리풀홀'. A씨는 2022년 5~10월 로비에 놓인 책상에서 대기하며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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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이를 시작으로 1년 간 총 3차례 근무처를 옮겼다. 2021년 10월엔 1층 로비 책상, 지난해 5월엔 지하 2층 휴게실 로비 책상, 이어 지난해 10월엔 지하 3층 주차장 옆 경비실로 각각 전보됐다.

A씨는 "모두 새로 만들어진 직무였다. 이미 1층 로비엔 안내데스크 직원이 따로 있었는데 QR 코드 기기 옆에 자리를 만들었고, 방문객이 올 때마다 '일어서서 인사하기' 등의 내용을 업무로 규정했다"며 "(그 곳은) 모든 직원들, 회원들이 보는 자리이기도 해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지하 2층 휴게실 근무에 대해 "넓고 한산한 휴게실 입구 바로 앞에 덩그러니 책상을 놔뒀고 거기서 8시간 대기하면서 휴게실 비품 관리 등을 했다"고 덧붙였다. 또 "세번째엔 (책상이) 청소·경비 용역업체 직원들 휴게실로 옮겨졌고, 회관 곳곳 청소를 맡았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전보가 이뤄질 때마다 2~3주 간 대기 발령을 받았기에 임금도 감액됐고 징계도 받았다. 1층 로비 근무 시 방문객에게 불친절하다는 민원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며 징계위에 회부돼 지난해 9월 감봉 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한 달 후 A씨는 청소 직무를 맡고 지하 3층 용역업체 직원들 휴게실을 새 근무지로 배정받았다. 2021년 5월 회장의 운전 지시가 합리적이지 않다고 처음 문제제기를 한 지 1년 5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A씨는 "이때 나의 상황을 알게 된 아내가 너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무너졌다"며 "그래서 처음 2022년 11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징계와 부당전보로 구제신청을 넣었다"고 말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6일 부당징계는 인정하고 부당전보 주장은 기각한다고 판정했다. A씨는 이와 별도로 직장 내 괴롭힘, 임금체불 등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하기 위해 지난 16일 고용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서울변회 "A씨 주장 사실과 달라... 노조도 징계 의결"

서울변회는 A씨의 회장의 사적인 업무에도 운전 수행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사실 확인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서울변회 대변인은 25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저녁시간 등에 불가피하게 운전수행을 나가야 하는 경우는 전임 회장 때에도 있었고 A씨도 그런 부분은 알고 동의하고 일을 했다"면서 "A씨가 주장하는 사적 지시 부분도 공적 용무는 아니었는지, 그런 지시가 일상적이었는지 등은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또 부당 전보를 당했다는 A씨의 주장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서울변회 대변인실은 "A씨는 정식 공개 채용이 아닌 당시 (95대) 회장 때 임의로 채용됐고 특별한 직군 없이 채용됐기 때문에 대체할 업무가 없었다"면서 "(A씨가) 할 수 있는 업무를 찾아서 배치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A씨 주장과 변호사회가 파악한 사실관계가 다른 부분도 많다"라며 "A씨가 처음부터 '운전 지시가 부당하다'고 고충을 제기하고 시정을 요구했는지는 아직 (사내에서) 확인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는 A씨의 주장에 대해선 "아직 결론이 나오지 않은 상황으로, 고용노동청이 조사 후 판단할 내용"이라고 밝혔다.

서울변회는 지난 6일 발표한 성명에서도 "A씨가 직무변경 신청서를 제출했고, A씨는 수차례 면담을 거쳐 '어떤 업무든지 상관없다'는 입장을 밝혔다"라며 "업무상 필요성을 고려해 1층 안내 및 QR 코드 확인 업무로 전보했다"고 알린 바 있다. 

A씨에 대한 추가 전보 조치에 대해서도 "다수의 변호사 회원들 및 방문객들로부터 불친절·근무태만을 지적하는 민원이 이어졌고 구두경고·시말서 제출 등의 조치에도 시정이 되지 않아 노사공동징계위원회에서 A씨 징계를 의결한 것"이라며 "지하 2층 휴게실 근무 동안에도 자리를 비우거나 늘 컴퓨터나 휴대폰을 보거나 비품이 떨어져도 보충되지 않았다는 근무태만 민원이 계속돼 안내 업무 대신 환경정리보조업무(청소)로 전보했다"고 밝혔다.

현재 A씨를 대리하는 변호인단은 4개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 15명으로 구성됐다. 대부분 노동·공익 소송을 주로 맡아온 변호사들이다. 법률대리인 이용우 변호사는 25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정의와 인권을 수호한다는 변호사들의 법정단체, 의무가입단체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명확한 선례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에서 공익활동 변호사들이 대거 모였다"며 "본질은 거대 단체와 법조인이 힘없는 6급 직원에게 가한 직장 내 괴롭힘 여부"라고 주장했다.

태그:#서울변호사회, #노동법 위반 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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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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