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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설이다. 조상 은덕에 감사하고 새해 안녕을 기원하는 명절이다. 가족과 친지들이 오랜만에 함께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고 세배하는 날이기도 하다. 설 대신 성묘를 미리 다녀오고 휴가 가는 등 설날 풍경은 예전과 매우 다르지만 풍성한 설날의 설렘은 여전하다. 아무리 변해도 설날의 의미는 가족 공동체라는 유대와 결속을 확인하고 희망을 기대하는 것이다.

지금쯤이면 설 제수 준비 등 설맞이가 한창이지만 명절이면 더 외롭고 회한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고향을 등진 실향 이산가족이 그들이다. 이산가족은 일제 해방과 6.25 전쟁 이후 이북 고향을 떠난 실향민을 총칭한다. 특히 이산가족 중에는 6.25 전쟁 때 이남에 온 10~20대 전후 젊은이들이 많다. 피난길에 오르거나 참전했다가 고향에 가지 못했다. 고향에는 조부와 부모, 부녀자들이 대신 남았다.

한동안 설 명절을 잊고 살았다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가 2019년 이북5도청에서 추석합동망향제를 올리고 있다.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가 2019년 이북5도청에서 추석합동망향제를 올리고 있다.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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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무수한 실향민을 양산했다. 임진강과 한강을 낀 개풍군 실향민들은 고향을 마주하고도 못 가는 기막힌 신세다. 개풍군은 경기도 파주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손에 잡힐 듯 보이는 곳이다. 전쟁 전 이남 지역인 개풍군은 개성시를 포함하는 지역으로 황해도를 접하고 있었다.

개풍군 피난민들은 전쟁이 발발하자 주로 강화나 인천 등지로 잠시 피했다. 전쟁이 끝나면 강 건너 고향에 바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밀고 밀리는 전황에 따라 고향 집을 비우는 경우가 흔했다. 전쟁통에 잠시 고향 떠난 게 벌써 70년 세월이 흘렀다.

고향을 잃은 이산가족들은 연고 없는 이남에서 갖은 고생과 설움을 겪었다. 타향살이 객지에서 일자리는 없고 끼니 풀칠하기도 바빴다. 고향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설 쇠는 것도 꿈꿀 수 없었다.

당시 남한사람의 이북사람에 대한 냉대와 멸시는 상상을 초월했다. 실향민들은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삼팔따라지'라 해서 이북출신과는 결혼도 반대하는 시절이었다. '삼팔따라지'는 38선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다. 이는 참혹한 전쟁의 발로이지만 남북갈등의 단면이기도 했다.

실향민들은 외롭고 고단한 삶에도 끝까지 버텨냈다. 개성상인 등 이북출신들은 생활력 강하다는 평과 함께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한 축을 담당했다. 지금의 후손들이 실향1세대에 경외심과 자부심을 갖는 이유이다.

설을 맞아도 실향민들은 반갑지 않았다. 실향민 2세인 필자의 10대 시절 기억 한 토막, 아버지는 설 명절이면 고향에 두고 온 부모와 형제 생각에 남몰래 혼자 눈물을 훔쳤다. 나는 아버지께 남들은 성묘도 가고 친척도 많은데 우리는 왜 그렇지 않냐고 따졌다. 혈혈단신 아버지의 외로운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도발했는데 아버지는 특별히 대꾸하지 않았다. 그때는 할머니, 할아버지 있는 애들과 고향 내려가고 성묘하는 집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설은 개인보다 집단으로 쇠고 있다

개풍실향민들이 설과 추석 명절을 챙기기 시작한 것은 1960대 초중반쯤이다. 그러나 이남 사람들의 명절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부모님 생사를 모르는 상태에서 차례를 지낼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선산과 묘소도 이북에 있어 성묘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짜낸 묘안이 강화나 파주 등지를 찾아 강건너 고향을 직관하는 것이다. 각자 준비한 제물을 땅에 펼치고 고향을 바라보며 차례를 드렸다.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대성통곡했다.

설 쇠는 풍경이 조금씩 진화했다. 개풍군 중면민회는 1960년대 초반 실향 1세대들이 중심이 돼 인천 검단에 고향 선산을 대신하는 묘지공원을 조성하고 망향제단을 설치하는 등 애향활동을 전개했다. 중면사람들은 죽으면 이곳에 묻혔으며 명절이면 함께 모였다. 면민회는 묘지공원에서 해마다 총회를 개최하고 망향제를 올리고 있다.

자녀들은 실향민 부모가 겪는 외로움과 설움을 보고 자랐다. 성장하면서 실향민 정서도 자연스레 몸에 뱄다. 실향민 중에는 애써 자신의 고향을 밝히지 않는 경우도 일부 있지만 2세들의 실향민 정체성은 부모 따라 형성됐다.
 
2021년 개풍군민회가 강화평화전망대에서 망향제를 올리고 있다.
 2021년 개풍군민회가 강화평화전망대에서 망향제를 올리고 있다.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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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면민회 애향 활동은 대를 이어 후손들이 맡고 있다. 중면민회 김용근(69) 장년회장은 "묘지공원에 돌아가신 부모님을 모신 후 명절 때마다 이곳을 찾아 성묘하고 있다"면서 "부모님은 생전에 향수에 젖어 귀향을 늘 염원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2세들이 생존한 90세 전후 실향 1세대 어르신들을 자주 뵙고 위로하면서 이분들의 애향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면민회 애향 활동은 타면으로 전파됐다. 인근 흥교면민회와 임한면민회도 묘지를 구입하고 이곳에서 애향 모임을 하고 있다. 이에 자극받은 군민회는 명절 맞이 행사 규모를 확대했다. 개풍군민회는 매년 강화평화전망대 망배단에 군민회원을 초대해 총회 겸 합동망향제를 개최하고 있다. 윤일현(82) 개풍군민회장은 "먕향제를 통해 조상과 선부조님의 안녕을 기리면서 고향의 전통과 미덕을 전승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실향민들의 설 쇠는 모습은 소속 단체가 주관하는 행사에 참여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점에서 개풍군 실향민 애향활동은 통일 관련 단체들이 벤치마킹하는 선례를 남겼다. 통일경모회는 이북실향민들의 불우한 처지를 감안해 1970년부터 파주 임진각에 차례상을 차리고 합동경모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사단법인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도 1983년부터 추석 전전날을 '이산가족의 날'로 정해 합동망향제 행사를 열어 실향민을 위로하고 있다.

접경지역의 파주 경모공원에는 실향민들이 많이 묻혀있다. 갈 수 없지만 죽어서도 고향을 마주할 수 있어서다. 북녘을 바로 볼 수 있는 파주 오두산통일전망대는 개풍실향민 뿐 아니라 이산가족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임진각도 이산가족 성지로 유명하다. 한기달(91) 전 개풍군수는 명절 때가 되면 자식들을 앞세워 임진각 망배단을 찾아 분향하고 자신의 고향과 추억을 알려주고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개풍실향민들의 향수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더 짙어졌다. 고향에 남겨진 가족을 찾는 이들의 행보는 한편의 드라마다. 북에 있는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송금하고 인편을 통해 수없이 편지를 띄우기도 했다. 혹시 기대하는 마음으로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정부가 추진한 이산가족 상봉도 신청했지만 모든 게 허사였다.

실향민의 대물림 한(限)
 
개풍군 중면민회원들이 인천 검단 묘지공원에서 조상께 차례를 드리고 있다.
 개풍군 중면민회원들이 인천 검단 묘지공원에서 조상께 차례를 드리고 있다.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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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실향민들은 8백만 명으로 늘어났다. 그럼에도 실향민은 아직 우리 사회의 '주변인'에 머물고 있으며 실향민 역사는 망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도 말만 무성하지 실향민 삶에 구체적인 관심이 없다. 고향과 가족권은 인간의 절대가치이다. 실향민은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정체성이다. 우리가 실향민을 따뜻하게 품지 않는 한 국민통합은 허구에 불과하다.

실향민 모임 때마다 자주 듣는 말이 있다. '통일될 때까지 건강하게 살자'는 덕담이다. 그러나 고령의 실향 1세대들은 상당수 귀향과 통일을 못 본채 눈을 감고 있다. 고인들은 통일 되면 자신을 고향에 꼭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이는 죽어서도 구천을 떠돌 정도로 고향이 그립다는 의미다. 60~70대인 2세들은 오늘도 부모 고향을 잊지 않고 실향민 삶을 이어가고 있다. 대를 이어 이산가족의 한도 대물림되고 있다.

설 명절을 맞아 고향과 가족 잃은 실향민들의 애타는 심정을 이해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중면민회 김 장년회장의 말이다. "실향민 1세대의 고통이 있기에 현재 우리가 존재하고 있으며 어버이의 삶을 본받고 향후 고향을 찾아가는 노력은 당연한 도리입니다."

그럼 실향 이산가족의 염원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아마도 통일과 귀향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남북한 현 대치상황으로는 통일은커녕 남북대화도 요원해 보인다. 올 설명절도 무심히 맞을 것이 분명하다.

북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음력설을 쇠면서 차례상을 차리고 부모님을 뵙고 세배하는 문화가 있다. 실향민들은 이북 고향에 있는 이산가족들의 생사가 궁금하고 이들의 안위가 늘 걱정이다. 부디 흩어진 남북한 실향민이 함께 만나 떡국을 먹으며 서로 덕담을 나누는 설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 입니다.


태그:#실향민, #이산가족, #개풍군, #중면, #설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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