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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가 배부된 12월 9일, 한 고등학교 교실의 모습.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가 배부된 12월 9일, 한 고등학교 교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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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명문대' 출신 교사라는 건, '훈장'이면서도 '족쇄'다. 대학을 졸업한 지 25년도 더 지났는데도 여전히 학벌의 위력은 살아있다. 아이들은 내 멀쩡한 이름과 전공 교과보다 출신 대학을 먼저 기억한다. 지금 만나고 있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오래전 졸업생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일단 강의의 내용을 신뢰한다. 마치 저명한 학자의 말을 인용하면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느낌과 비슷하달까. 고백하자면, 가짜뉴스라고 해도 공중파 방송사의 앵커의 목소리로 소개되면 진실처럼 여겨지는 현상을 빗대며 아이들 앞에서 자학하듯 이를 문제 삼은 적도 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들도 명문대 출신 교사의 자질을 더 높게 평가한다. 학벌과 자질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건데, 그저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명문대 진학생이 많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자녀도 명문대에 진학할 확률이 높을 것으로 여기는 심리와 비슷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성적이 우수한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재능이다.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읽는 것 또한 공부를 잘하는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로지 점수로 줄 세워 당락을 결정하는 교원임용시험 제도에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운신의 폭 좁히는 족쇄가 된 명문대 졸업장

명문대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졸지에 '1타 교사'로 인정받고 있으니 대학 졸업장이 '훈장' 역할을 한 건 맞다. 그러나 그것이 되레 운신의 폭을 좁히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지금껏 꾸준히 집회에 참여하고, 틈틈이 이곳에 칼럼을 연재하는 등 학벌 구조 타파를 외쳐온 터다.

"허구한 날 학벌 구조를 허물어야 한다면서, 선생님은 왜 명문대를 선택하셨어요? 전형적인 사다리 걷어차기 심보 아닌가요?"

한 아이의 느닷없는 질타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대꾸하든 궁색한 대답이 될 것 같아 나중에 대화하자며 꽁무니를 뺐다. 그의 눈에는 지금껏 학벌의 혜택을 톡톡히 봤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도록 막는 행태로 비친 모양이다. 표면적으론 그렇게 여겨질 법도 하다.

그 덕분에 30년도 더 지난 내 고등학교 생활을 반추해보게 됐다. 학력고사 체제였던 당시에는 고3 진학 담당 교사의 말이 곧 법이었다. 그의 승낙과 동의 없이는 대입 원서도 낼 수 없었다. 그가 낙점한 대학과 학과를 군말 없이 선택했다. 흥미와 적성 따위는 '개나 줘버렸던' 시절이었다.

고3 담임 교사가 쓰라고 해서 썼고, 가라고 해서 갔다면, 나더러 '사다리 걷어차기 심보'라던 그 아이는 이해할까. 사실이 그랬다. 당시 명문대를 선택한 건 내신과 모의평가에서 그만한 성적이 나와서일 뿐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나마 학과를 스스로 선택한 것만도 나름 큰 행운이었다.

다른 친구들도 다 그랬다. 누구 하나 교사 앞에서 토를 달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토를 달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학부모도 자녀의 대학 진학에 대한 모든 권한을 교사에게 위임한 채 그들의 판단과 선택을 그대로 따랐다. 버젓이 촌지마저 오가던 참람한 시절이었다.

그때도 오매불망 명문대에 못 보내 안달이었다. 학교 교문마다 명문대 합격자의 이름을 적은 현수막이 경쟁적으로 내걸렸고, 그 숫자가 명문 고등학교를 결정짓는 절대적 기준이었다. 고등학교마저 시험을 치러 입학하던 비평준화 지역에서는 교복이 '신분증' 역할을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의 공부가 맹목적이었다는 걸 깨달은 건 대학에 진학한 뒤다. 오로지 대입 하나만을 바라보고 죽기 살기로 달려왔으니, 맹목이라는 한자어 그대로 눈먼 공부일 수밖에 없었다. 대입은 아이들이 올곧은 가치관과 세계관을 정립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 제도였다.
 
'중경외시' 아래로 '건동홍, 국숭세단…'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하루 앞둔 2022년 11월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 수험생을 응원하는 메시지가 걸려 있다.
▲ "수능대박! 사랑한다! 응원한다!"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하루 앞둔 2022년 11월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 수험생을 응원하는 메시지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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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교육이 '인적 자원'을 양성하기 위한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교육부의 이름이 '교육인적자원부'였다. 하지만 그것에 그치지 않았다. 고래로 교육은 기존의 기득권 체제를 유지하는 데에 봉사해야 하는 임무를 동시에 수행해야 했다.

그 역할에 학벌 구조는 안성맞춤이었다. 몇 해 전 천만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한 영화 <설국열차>도 우리나라의 온존한 학벌 구조에서 모티프를 얻었을 게 틀림없다. 초등학생조차 'SKY, 서성한, 중경외시…'라는 서열을 노래하는 세상은 그렇게 체계화됐고 나날이 강화되고 있다.

서열에 대한 확실한 구분이야말로 학벌 구조의 유지를 위한 관건이다. 위아래의 차이가 확연할수록, 서열이 세분화할수록 학벌 구조는 철옹성처럼 굳건해진다. 근래 '중경외시' 아래로 '건동홍, 국숭세단…'이 이어지는 것도 그래서다. 듣자니까, 이젠 지방대의 서열까지 매겨지고 있다고 한다.

학벌 구조의 폐해를 난 대학생이 돼서야 뒤늦게 알게 됐다. 몰랐다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 불의를 나 몰라라 하는 건 비겁한 짓이다. 기성세대는 기득권에 맞서 학벌 구조를 혁파해야 할 결자해지의 의무가 있다. 하물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렇게 그에게 건넬 답변을 대강 정리하고 있는데, 다시 그가 찾아와 자문자답하듯 말을 이었다. '사다리 걷어차기'도, 학벌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는 주장도, 모두 명문대 출신에게만 허용된 특권이라는 거다. 설상가상, 학벌 구조는 필요악이라는 지적에 더는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방대 출신은 학벌 구조 타파를 외칠 권리가 없어요. 그랬다간 대번 지질하다는 소리를 들을 게 뻔해요. 자기가 공부 못해서 지방대에 가놓고선 누굴 탓하냐고요."

학벌 구조 타파를 외치려고 해도 학벌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에 주위에 있던 친구들 모두가 맞장구를 쳤다. 이럴진대 학벌 구조의 폐해를 아무리 떠들어댄다 한들 '공자님 말씀'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 학벌 구조에 편승하든 혁파를 주장하든 상위 학벌이 꽃놀이패를 쥔 형국이다.

아이들은 이구동성 학벌 구조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명문대 출신 교사가 학벌 구조 타파를 부르짖는 건, 특권을 포기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특권을 예쁜 포장지로 감추려는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명문대 출신이라면 뭘 해도 주목을 받고 인정받지 않느냐는 거다.

갑자기 마음이 흔들렸다. 그의 말마따나, 학벌 구조는 필요악이며 고정상수일까. 적어도 학벌 구조 속에서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교사와 아이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는 '바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계란'이었을지언정 30년 가까이 학벌 구조에 맞서왔지만, 되레 나날이 강고해졌을 따름이다.

남 탓할 것도 없다. 아이들이 성적표를 들고 와서 지원 가능 대학과 학과를 조언해달라고 하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사교육 업체에서 제공하는 앱을 켜서 확인한다. 앱에서 일러주는 대로 'SKY, 서성한, 중경외시…'라는 서열에 따라 조언하는 나 역시 온존한 학벌 구조의 공범이라는 이야기다.

학벌 구조를 두고 하루에도 수십 번 말과 행동이 손바닥 뒤집듯 엇갈린다. 때로는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편승하고, 때로는 그것이 공교육 붕괴의 주범이라며 날을 세운다. 그럴수록 이 땅에서 학벌 구조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아이들의 인식은 더욱 확고해져만 간다.

태그:#학벌 구조, #교원임용시험, #사다리 걷어차기, #설국열차, #교육인적자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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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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