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20 17:44최종 업데이트 22.12.20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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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국주의가 나쁜 것은 '일본'이기 때문이 아니라 '제국주의'이기 때문이다. 제국주의는 소수의 다수 착취를 글로벌하게 확장한 인류사 최악의 착취 시스템이다.

이것의 비인간성은 이를 직접 체험한 이용수(위안부)나 양금덕(강제징용) 같은 피해자들이 80년 가까이 한을 풀지 못하는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들이 오로지 체불 임금 때문에 그 긴 세월 절규하고 있는 게 아니다. 몸소 겪은 비정한 착취가 그들을 움직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제국주의의 해악을 대수롭지 않게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수 지배자가 다수 대중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일을 별일이 아닌 듯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 우리 사회는 경계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인사에서는 그런 경계심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제국주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인물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에 임명했다(관련기사: 진실화해위원장된 극우 인사, 지난해 그가 방명록에 남긴 말 http://omn.kr/21ugp).

이 위원회의 핵심 업무 중 하나는 소수 지배자에 의한 대중 학살을 규명하는 일이다. 그래서 진실위원회 구성원들의 자세는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자세와 크게 다르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 점을 고려하지 않고 인사를 단행했다.

진실화해위원장에게 일본제국주의란

김광동 신임 진실화해위원장은 2008년 8월호 <한국논단>에 실린 '8·15 건국 60주년을 말한다'에서 일본제국주의 지배가 한국을 근대화시켰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그는 한민족의 낙후성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봉건체제의 해체와 근대화나 반봉건화도 타율적이거나 일본 식민체제를 통해 이뤄야 했다"라고 주장했다. 한국인 스스로 근대화할 수 없어 일제가 이를 대신했다는 것이다.

그는 한민족이 제국주의 지배를 받은 일을 두고 "스스로 근대적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정착시켜나갈 기회와 경험을 박탈당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부족함을 스스로 반성하는 듯한 어조의 글이지만, 제국주의 지배를 철저히 거부하지 않는 태도가 느껴지는 글이다.

조선왕조가 서양과 본격 교류하게 된 계기는 1882년에 체결된 미국과의 조미수호통상조약이다. 그런데 그는 6년을 앞당겨 1876년에 의미를 부여한다. 1876년은 전년도에 강화도 앞바다에서 군사도발을 감행한 일본이 도리어 책임추궁을 하면서 조선 시장을 개방시킨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가 체결된 해다.

김광동 위원장은 "한국은 조선의 쇄국정책과 봉건제의 지속으로 민주주의적 역사와 경험을 갖지 못했다"라며 "서양문물과의 교류는 1876년을 기점으로 비로소 시작되었고"라고 서술한다. 대일 시장개방이 한국 민주주의와 신문명 도입에 결정적 계기가 된 듯이 말한 것이다.

그는 일본의 한국 강점이 갖는 불법성도 모호하게 처리했다. "열강에 휩쓸리는 시대가 계속되다가 일본에 의한 식민체제를 겪어야 한다"라고 서술했다. 한국 강점의 주체가 일본임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고, 조선을 차지하려고 열강이 각축하던 중에 일본이 차지하게 된 것처럼 서술한 것이다. 제국주의의 인류 착취, 일본제국주의의 한국 지배에 대한 비판 의식이 철저했다면, 이런 서술이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김광동 위원장은 '제주 4·3 학살'을 '제주 4·3 폭동', 반미·반유엔 친공투쟁으로 규정했다. 제주도민을 학살한 주범은 군경과 서북청년단이 아니라 실은 제주도민 유격대라고 주장했다. 또 1980년 광주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학술대회에서 언급했다.

소수 지배자에 의한 대중 학살의 진상을 왜곡하는 그의 발언과 소수의 다수 착취인 제국주의를 제대로 비판하지 않는 그의 역사 인식을 함께 떠올리게 하는 일들이다.

위 기고문은 2008년에 게재됐다. '8·15 건국 60주년을 말하다'라는 제목은 '1948년에 세워진 것은 대한민국정부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다'라는 건국절 논쟁을 배경으로 한다. '1948년에 우리나라가 세워졌다'는 이 논쟁은 그해에 남한과 갈라진 북한을 '우리'가 아닌 '남남'으로 밀어내는 의식을 깔고 있다. 동시에 1919년 3·1운동이 대한민국의 출발점임을 부정하는 의식도 깔고 있다.
  

국립현충원을 찾아 방문록에 글을 쓰는 김광동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 ⓒ 진실화해위원회

 
대한민국이 1919년에 출발했다는 헌법 전문의 선언은 대한민국정부가 이때부터 한반도를 이끌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3·1운동 정신을 기초로 세워졌음을 의미한다. 일제강점기에도 대한민국이 존재했다고 간주함으로써, 일제 통치의 법적 효력을 부정하고 친일 부역자 처벌을 용이하게 하는 측면도 있다. 미국도 초대 대통령이 취임한 해는 1789년이지만, 자신들이 독립을 선언한 1776년을 건국 원년으로 삼고 있다.

3·1운동 당시 한국인들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는 독립국을 세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런 의지가 거족적으로 표현된 1919년을 대한민국 원년으로 삼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일이다.

극우세력이 그런 점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굳이 '1948년 건국'을 밀어붙이는 것은 3·1운동 이념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이 구축되는 것이 달갑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3·1운동 당시 친일 보수세력은 언론매체를 통해 시위 참가자들을 맹렬히 비난했다. 반제국주의 만세운동을 부정했던 1919년 친일세력의 주의·주장이 건국절 논쟁과 맞닿는 데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뿌리가 1919년에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친일청산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일제 지배에 대한 비판 의식이 희박함을 노출하는 것이다. 김광동 위원장이 제국주의를 단호히 비판하는 인물이라면, '대한민국 원년은 1948년이다'라고 주장함으로써 1919년의 반제국주의 투쟁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깎아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남한의 친일청산이 합리적이었다?

김광동 위원장의 인식은 제국주의 잔재를 지우기 위한 친일청산 작업에 대한 입장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북한의 친일청산은 생각보다 불철저했으며, 남한의 친일청산은 북한보다 철저했다'라는 비상식적인 논리를 개진한다. 남한도 북한처럼 친일청산을 철저히 했어야 한다는 지적을 반박하고자 그런 논리를 편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생각을 담은 것이 <시대정신> 2013년 봄호에 게재된 '북한 친일청산론의 허구와 진실'이다. '매춘부와 무엇이 다르냐', '궁금하면 한번 해볼래요?'라는 위안부 망언으로 유명한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와 공동 저술한 이 논문에서 그는 북한의 친일청산이 엄연한 실제 사실이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정치적 의도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음을 고려하지 않은 채 북한 정권의 정치적 의도만을 부각하면서 친일청산을 폄하한다.
 
북한이 했다고 선전하는 친일청산이란 (것은) 친일청산이 아니라 소비에트 공산혁명에 반대하는 반공 혹은 민족주의 세력에 대한 탄압과 청산이었을 뿐이다. 공산혁명에 저항적이었던 유산계급의 재산을 대상으로 한 재산 빼앗기 과정이었고, 소련 공산주의 체제를 만드는 데 반대한, 소위 그들이 말하는 반동분자에 대한 숙청 과정이었던 것이다.
 
이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친일청산이 없었던 셈이 된다. 이런 주장을 하면서 그는 남한의 친일청산이 제대로 진행됐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이 북한보다 상대적으로 친일청산에 보다 적극적이고 철저했으며 또한 합리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라고 평했다.

그는 그 근거로 반민족행위자처벌법이 제정되고 국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활동한 사실 등을 제시한다. 실패한 반민특위 활동을 근거로 남한의 친일청산을 고평가한 것이다. 이런 평가는 친일청산을 적극 진행할 필요성을 떨어트린다. 제국주의 청산을 적극 찬동한다면 이런 식의 서술을 하지 않을 것이다.

김광동 위원장은 제국주의 지배로 한국이 근대화됐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반제국주의 투쟁인 3·1운동에 있다는 점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물이다. 이런 사고의 소유자라면 친일청산을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는 남한이 북한보다 친일청산을 잘했다며 높이 평가했다. 논문 결론에서는 "친일잔재 청산이라는 민족적 염원"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그가 상황에 따라 논리를 바꾸는 측면이 있음을  수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대중에 대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기구다. 과거사를 정리하는 것은 과거를 들추기 위한 게 아니라 동일한 불행의 재발을 막기 위한 것이다. 과거뿐 아니라 미래에도 대중에 대한 학살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기구를 김광동 위원장이 주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대중에 대한 착취, 대중에 대한 학살을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이 진실화해위원회를 주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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