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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의 밑그림이 될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노동시장 개혁안이 공개됐다. 연구회는 지난 12일 권고안을 통해 우선 개혁과제로 근로시간 유연화와 연공제가 지배적인 임금체계 개편을 윤석열 정부에 권고했다. 노사관계의 정치화를 막겠다며 노조 운영의 투명성 보장이나 노조의 사업장 점거 제한, 대체근로 사용의 범위에 대해서도 법제도 개선을 제안했다. 향후 정부와 여당은 권고안을 바탕으로 한 근로시간 유연화 등 노동개혁 과제를 제도화 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개정 등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다. 이해당사자인 노동계는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 방향에 대해 세 가지 영역(근로시간 유연화, 임금체계 개편, 노사관계)으로 나눠 살펴본다.[편집자말]
두 청소노동자의 차이

양아무개씨는 부천시에서 공무직으로 일한다. 부천시엔 공무원을 비롯해 3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한다. 양씨는 도로를 청소하는 노면차 운전기사로 1994년에 시청 소속 직영 환경미화원으로 입사해 30년 가까이 일했다.

초기 월급은 90만 원이 채 안 돼 네 명의 가족이 먹고살기 빠듯했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상급단체의 도움을 받아 부천시를 상대로 꾸준히 임금교섭을 통해 공무원에게만 지급되던 복지포인트도 받는 등 안정적인 임금체계를 마련했다. 덕분에 50대 후반에 들어 선 양씨는 4인 가족 월평균 소득을 넘는 임금을 받으며 어엿한 중산층으로 살 수 있었다.

양씨는 다가올 노후가 걱정이다. 국민연금은 65세가 돼야 받을 수 있는데 60세인 정년은 코 앞이다. 국민연금 수급 때까지 임금이 좀 줄더라도 일을 하고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요즘 장기근속하는 동료들이 늘며 시에선 부쩍 인건비에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 신규채용은 가뭄에 콩 나듯 이뤄졌고 300여 명이 넘는 환경미화원 정원은 50명 가까이 줄었다. 시는 청소업무 일부를 떼어 내어 민간의 청소업체로 넘기려 한다. 민간위탁 노동자에게는 양씨에게 주는 월급의 절반만 줘도 되기 때문이다.

양씨와 같은 나이의 정아무개씨는 김포시에서 청소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는 환경업체에서 일한다. 그가 속한 청소업체는 임금체계도 없고 그냥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임금이 정해진다. 초과수당을 포함해 월급은 300만 원이 채 안 된다. 양씨는 김포시의 청소 업무를 위탁 수행하지만 김포시 소속이 아니어서 김포시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받는 복지포인트나 상여금을 받지 못한다.

언론은 똑같이 청소일을 하는 민간위탁 청소 노동자들이 양씨와 비교해 절반 임금밖에 받지 못하는 불공정한 현실을 지적한다. 이는 모두 양씨와 같은 공공부문 정규직이 노조를 만들어 임금을 올리고 장기근속해서 벌어진 문제라는 것이다. 양씨는 그럴 때마다 이런 임금격차를 내가 만들었나? 스스로 되묻는다.

노동조합이 비정규직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미안하지만 자신들은 열심히 일했고, 노조법이 보장한 대로 노동조합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지킨 것 뿐인데 양씨는 억울했다.

한국노동시장 이중화의 문제 
 
권순원 숙명여자대학교 교수(왼쪽 두 번째)가 지난 12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2022.12.12
 권순원 숙명여자대학교 교수(왼쪽 두 번째)가 지난 12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2022.12.12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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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씨와 김씨의 사례는 둘로 쪼개진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모순을 잘 보여준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의 과제를 연구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아래 연구회)는 지난 12일 발표한 권고문에서 이같은 한국 노동 시장의 이중화 문제를 지적했다.

2021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 조사에 따르면 300인 이상 기업의 60.1%, 1000인 이상 기업의 70.3%는 호봉제를 시행한다. 연공급제라 부르는 호봉제는 근속이 증가함에 따라 자동적으로 임금이 오르는 체계다. 연공급제가 지배적 임금체계인 대기업과 공공부문 사업장은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다. 노동조합이 매년 임금협상을 통해 임금을 인상하고 이와 같은 결과가 누적돼 상대적으로 민간 중소기업 노동자에 비해 안정적 임금을 받는다. 대기업 노동자 월급이 약 100만 원이라 가정하면 중소기업 노동자의 월급은 약 56만 원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전체 164만 개의 사업체 중 정씨의 회사처럼 임금체계 자체가 없는 사업체는 약 61%에 달한다. 기업 규모가 300인 미만으로 노조가 없는 경우가 65%에 가깝고 숙박 및 음식점업이나 도소매업 등 영세 사업장이 주를 이뤘다. 전체 사업체 중에서 호봉급은 약 23만 개소로 전체 사업체 중 약 14%에 불과했다.

연구회는 권고문에서 장기근속 노동자의 높은 임금 때문에 기업으로서는 중·고령 노동자를 빨리 내보내고 싶어 해 고용불안을 일으키고, 동시에 비정규직을 활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고 진단했다. 연구회는 연공 의존성을 완화하고 직무와 숙련을 반영해 공정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왜 임금 불평등을 노조만 책임지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과 농민, 학생, 시민들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민중대회에 참석해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며 민생파탄 국가책임 인정, 민생개혁입법 쟁취, 쌀값 정상화, 이태원 참사 대통령 사과, 민주주의 파괴 중단 등을 촉구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과 농민, 학생, 시민들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민중대회에 참석해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며 민생파탄 국가책임 인정, 민생개혁입법 쟁취, 쌀값 정상화, 이태원 참사 대통령 사과, 민주주의 파괴 중단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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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회의 지적은 일견 타당하다. 1980년대 이후 2015년까지 지난 35년간 우리 노동 시장에서 사업체 규모에 따른 임금 차이는 꾸준히 확대됐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기업을 중심으로 노동조합이 결성돼 임금을 끌어 올렸고, 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정규직에 대한 구조조정을 시도했지만 노조의 격렬한 저항으로 기업은 외주화와 비정규직을 통해 인건비를 절감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내부의 정규직은 보호받았지만 외부의 아래도급, 중소 영세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는 저임금에 시달렸다.

경제위기 속 기업이 비용을 줄이려 기존 정규직의 기득권을 보장하는 대신 비정규직과 하청 노동자를 착취하는 전략에 정규직 노조는 당장의 우리 일이 아니라며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반성해야 할 일이다. 다만 기업과 노조 그리고 비정규직과 하청 노동자 착취의 구조를 제도화한 정부의 책임이 균형적으로 지적되고 그에 따른 희생도 공평하게 분배돼야 한다.

그런데 연구회가 진단한 노동시장 이중화의 책임은 대기업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에게만 떠 넘겨지고 윤석열 정부가 이에 기초해 시행코자 하는 노동개혁을 위한 고통 분담은 노동조합에게만 강요된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묻고 싶다.

보수 언론과 정부는 이를 왜곡해 엉뚱한 정책을 만들려 한다. 조중동과 경제지들은 연구회의 진단을 빌어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다수 일하는 서민의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한 원흉이라고 공격한다. 정부의 개혁 방안은 이후 대기업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을 '하향 평준화'시키는 것에 방점이 찍힐 것이다.

역사적으로 연공급은 기업의 필요 때문에 만들어졌다. 근속연수나 경력이 증가함에 따라 숙련도나 직무수행능력이 높아진다는 '숙련 상승설'에 근거한다. 여기에 더해 무상교육이나 육아수당처럼 사회임금이 발달한 선진국과 달리 가족의 생계를 온전히 노동자의 임금으로 부양해야 하는 상황에서 근속에 따라 노동자 생계비는 늘어나기에 기업은 인력 확보를 위해 연공급제로 인력을 확보했다.

특히 뚜렷한 직무 구분 없이 기업 내 다양한 부서 간 인사이동을 통해 인력을 활용하는 우리 기업의 특성상 연공급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연공급 제가 폭넓게 시행되는 대기업과 공무원 조직에선 부서간 협업에 능숙한 '제너럴 리스트'를 필요로 했다. 기업과 공공부문 사업장은 대규모 공채를 통해 신입사원을 채용하고 초기 임금을 낮게 책정하되 장기근속에 따라 임금상승 폭을 확대해 안정적으로 인적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연공급제를 폭넓게 활용했다.

이같은 연공급제의 배경을 무시한 채 특정 직무의 가치를 기준으로 임금을 책정한다면 대기업이나 공무원은 물론, 직무 구분 없이 '올라운드 플레이어'를 바라는 중소기업이야 말할 것도 없이 현장 인력 운용 방식과 맞지 않아 수용성이 현저하게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삼성을 비롯해 대기업의 직무급제 시도는 번번이 좌절됐다.

연구회의 권고처럼 직무의 가치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진정한 직무급이 시행되려면 CJ에서 마케팅 기획 업무를 수행하는 강 대리와 CJ 협력업체에서 마케팅 기획 업무를 수행하는 정대리가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 기업의 규모와 지급능력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한국 노동 시장의 현실을 바꾸지 않고 이게 가능한 일인가?

임금 불평등을 확대한 것은 노조 가입 여부가 아닌 기업 규모와 이익률이었다. 기업이 임금 불평등에 미친 영향을 연구한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임금 불평등이 확산된 1994~2008년 사이 기업간 임금 격차는 노동자의 숙련보다 기업의 임금 프리미엄(우월성) 요소가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확인됐다.

규모가 큰 재벌 대기업이 정부의 수출중심 경제발전 전략에 따라 막대한 이익을 누리고 이러한 이익을 협력업체와 나누지 않은 채 독식한 결과가 오늘날 노동 시장의 임금 불평등의 근본 원인이다.

임금 불평등 해소 위한다?... '저임금 노동자 보호'가 시급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외부 노동 시장에서 저임금에 고통받는 비정규직, 중소 영세기업 노동자의 실질임금 상승을 위해 최저임금을 생계비 등에 연동시켜 현실화해야 한다. 또한 중소기업과 비정규 노동자가 실질적으로 이들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원청 대기업과 대등하게 교섭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사회임금의 형태로 육아수당을 지급해 저소득 노동자의 복지혜택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는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올라 저임금 노동자의 일자리가 줄었다고 비판하지만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분석(노동 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노사관계와 노동정책의 과제)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은 임금격차 해소에 기여했다는 점이 확인된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2020.10에 발표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노사관계와 노동정책 과제 발표문 중 최저임금 인상의 임금격차 해소 효과에 대한 설명 그래프
▲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2020.10에 발표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노사관계와 노동정책 과제 발표문 중 최저임금 인상의 임금격차 해소 효과에 대한 설명 그래프
ⓒ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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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오른 2018년(16.4%)과 2019년(10.9%)엔 2008년 이래 20%를 유지하던 우리나라의 저임금 노동자 비율(OECD 기준으로 중위 임금의 2/3 이하)이 2년 연속 20%대 미만으로 하락했다. 이 기간에 임금격차를 나타내는 임금 5분위 배율 역시 5.0 미만으로 하락했다. 임금 5분위 배율역시 2008년도 이후 약 10년간 5.0 이상을 유지했다. 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한 사회운동이 확대되던 시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산업과 직종 그리고 기업의 실태를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은 노사 당사자다. 공정한 노동에 대한 임금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이들이 공동으로 자신의 일터의 특성에 맞는 임금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정부가 그토록 원하는 직무급 제도가 일반적인 독일의 경우, 노사가 동수로 '대등 위원회'라는 조직을 구성해 직무의 가치를 평가 결정한다.

이를 위해선 임금체계 변경에 있어 노동자 의견을 수용하는 제도 정비도 시급하다. 중소 영세기업의 인사 노무 역량을 높이고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못한 30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조직률을 높일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게 우선이다.

노조 조직률이 전체 노동자의 15% 미만인 우리 현실에서 노조 없는 기업이 임금체계를 변경할 경우, 근로자 대표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연구회는 권고문을 통해 임금체계 변경시 직종과 직무의 다양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법 제도적 개선을 주문했다. 그런데 이는 전체 노동자의 동의에서 직종이나 직무별 노동자 동의만 받으면 임금체계의 변경을 할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것으로 자칫하면 회사가 소수의 의견으로 임금 체계를 입맛에 맞게 변경할 여지를 줄 수 있다.

정부는 연구회의 권고문 내용을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 빌미로 활용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보다는 임금 체계가 없는 아래도급 중소기업과 비정규 노동자가 실질적으로 노동조건 결정의 당사자로 설 수 있도록 하고 포괄임금제로 초과근로에 대한 대가를 착취하는 기업의 탐욕을 제어하는 데 더 신경 써야 한다.

[관련 기사]
전경련 건의서 내용과 일치... 기묘한 윤 정부의 제안 http://omn.kr/21zds

덧붙이는 글 | 이동철 기자는 한국노총 조직확대본부 부천노동교육상담소에서 일합니다.


태그:#노동개혁, #미래노동시장연구회, #임금체계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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