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장애인의 날(4.20) 다음날인 지난 4월 21일 오전 서울 중구 2호선 시청역사 내에서 지하철 탑승시위를 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장애인의 날(4.20) 다음날인 지난 4월 21일 오전 서울 중구 2호선 시청역사 내에서 지하철 탑승시위를 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저는 '4호선에 영혼이 갇혔다'는 이야기를 우스갯소리로 하곤 합니다. 제가 무려 서너살때부터 살아온 경기 과천은 4호선만 지납니다. 초중고를 모두 도보 10분 이내 거리에서 다니고 대학도 4호선에서 다녔습니다. 비록 워낙 외근이 많아서 매일 명동으로 오는 것은 아니지만, 졸업논문 제출 다음 날부터 명동에 사무실이 있는 곳으로 출퇴근을 한 지 만 5년이 넘었습니다. 그래서 4호선을 타고 등하교, 출퇴근을 하는 마음을 조금은 압니다. 

지금 4호선을 중심으로 생활반경이 이루어진 시민들의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아침마다 얼마나 착잡할까요. 저는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투쟁으로 인해 출근시간이나 회의에 늦어지는 것이 매우 양해되는 곳에서 지내고 있으니 그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가끔은 절대 늦어서는 안 되는 기자회견, 토론회, 면담자리 등이 있을 때면 전날 밤부터 깊은 고민을 합니다. 버스 우회를 할 것인지, 얼마나 더 많이 일찍 출발할지를 따져봅니다.

4호선 구간을 지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도 못하면서, 전철에서 안내방송이 나올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 누군가 나의 동료들에게 욕설을 내뱉을까 신경이 곤두서있기도 합니다. '사회적으로 옳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투쟁이니 모두가 아주 흔쾌한 마음으로 지지해야 한다'는 말도 차마 하지 못하겠습니다. 대부분 시민들이 장애인도 인간답게 사는 세상이 오길 바라지 않아서가 아니라, 당장 내 눈앞 삶을 조여오는 시간의 압박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자는 시간을 빼고, 아니 자는 시간보다 긴 시간을 사회운동에 쓰는 저조차도 예측 못하고 탄 전철이 지하철투쟁으로 연착 중일때는 한숨도 쉬고, 복잡한 마음으로 전장연의 SNS 중계를 보며 시간을 계산하곤 하니까요. 

어제도 오늘도, 누군가에게 욕을 먹고 있는 전장연 동료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아픕니다. 몇 달 전, 함께 회의를 하던 전장연의 달주 대표님(권달주 상임공동대표)께서 한동안 중단되었던 전철투쟁을 내일 가야 한다며 한숨을 깊게 내쉬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전철을 멈춰 세우고, 맨몸으로 날선 목소리에 마주해야하는 것은 그 누구도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날선 시선 마주할 생각에 한숨 쉬던 그 모습...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다 
 
2018년 10월 19일 서울지하철5호선 신길역에서 장애인리프트 추락참사 1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고 한경덕씨는 지난해 10월 20일 분향소 옆으로 보이는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려고 호출 버튼을 누르다 계단 아래로 추락해 결국 3개월여만에 숨졌다.
 2018년 10월 19일 서울지하철5호선 신길역에서 장애인리프트 추락참사 1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고 한경덕씨는 지난해 10월 20일 분향소 옆으로 보이는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려고 호출 버튼을 누르다 계단 아래로 추락해 결국 3개월여만에 숨졌다.
ⓒ 김시연

관련사진보기

 
휠체어를 탄 누군가들의 죽음이 있었고 지하철 투쟁과 같은 거친 싸움들이 있었기에,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는 빠른 속도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하철 엘리베이터 말입니다. 

빠르게 설치된 승강기들은 실은 비장애인들이 훨씬 많이 이용합니다. 어느날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이동할 때,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거나 반깁스를 했을 때, 유난히 컨디션이 좋지 않아 피곤한 몸이 천근만근일 때, 나에게 자녀가 혹은 조카가 생겨서 유아차와 이동할 때, 이제는 연로하신 부모님과 이동할 때 우리 모두 그 승강기를 타고는 합니다. 

지금 전장연이 지하철을 타는 이유는 장애인 권리 예산때문입니다. 지금 국회에서 법정시한을 넘기고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예산에서 '잘려나간 장애인 권리 예산'은 훑어만 보아도 다음과 같습니다. 특별교통수단운영비, 장애인의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활동지원 시간 확대, 장애인 평생교육시설 운영비, 장애인노동권 보장을 위한 각종 편의보조 비용. 2023년에도 장애인의 이동과 교육, 노동은 여전히 보장되지 않는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장애계의 투쟁은, 본격적인 지하철 투쟁을 시작한 1년 전부터 시작된 요구가 아닙니다. 수십년째 제자리걸음인 한국 사회에서 끝없이 싸우고 끝없이 욕을 먹으며 활동보조사 제도를 만들고 장애인콜택시를 도입하며 넓혀온, 장애인들이 '보통의 일상을 살아갈 권리'들입니다.

이들이 '시끄럽게' 욕먹지 않으면,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이형숙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공동상임대표가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앞에서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지역사회에 함께 살고 싶다"라며 윤석열 정부의 '장애인 권리 예산 확대 편성'을 요구하고 있다.
▲ 전장연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지역사회에 함께 살고 싶어"  이형숙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공동상임대표가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앞에서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지역사회에 함께 살고 싶다"라며 윤석열 정부의 '장애인 권리 예산 확대 편성'을 요구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이제 1년이 다 되어가는 지하철 투쟁의 기간 중, 지하철 투쟁을 멈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이 요구들이 기사에서 사라졌습니다. 

장애인들에게 와서 고개를 숙이거나 혹은 그들에 손가락질 비난을 하던 정치인들의 언어도, 투쟁이 멈추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장애인들이 시끄럽게 욕을 먹지 않으면, 세상을 바꿀 힘이 있는 그 누구도 이 이슈에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4호선을 타고 출퇴근을, 등하교를 하는 당신에게 부탁합니다. 장애인 동료들이 시민들의 날선 시선과 폭언 속에 내던져지지 않아도 인간다운 삶을 위한 마땅한 사회적 제도가 마련될 수 있도록, 국가가 마땅히 지불해야 하는 예산을 편성하도록.

그리하여 장애인도 시설이 아닌 '나의 집'에서 등하교를 하고 출퇴근하는, 나와 같은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있도록. 이 싸움이 부디 하루빨리 끝이 나도록 아주 약간의 마음을 내어주기를 당신에게 부탁합니다. 

[관련 기사]
전장연 "시민들이 국회로 가라는데... 제발 답을 달라" http://omn.kr/21vy4
장애인활동지원사입니다, 지하철 시위 비난하는 분들께 드립니다 http://omn.kr/1y3j2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장예정씨는 천주인권위원회 사무국장입니다.


태그:#지하철 시위, #전장연
댓글27

홈페이지 : cathrights.or.kr 주소 : 서울시 중구 명동길80 (명동2가 1-19) (우)04537 전화 : 02-777-0641 팩스 : 02-775-6267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