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스트 키드 (원제: Karate Kid)> 포스터

영화 <베스트 키드 (원제: Karate Kid)> 포스터 ⓒ 베스트 키드

 
시작은 책 <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를 읽다가 만난 "앙케이트4. 나를 잠 못 이루게 만든 배우는?"이란 질문이었다. 나이와 시대에 따라 좋아했던 배우는 손꼽으며 거슬러 올라가다 마침내 나를 '최초로' 잠 못 들게 한 배우를 기억해냈다. 그는 랄프 마치오(Ralph Macchio).
 
1985년, 나는 15살 때 친구들과 극장에서 영화 <베스트 키드 (원제: Karate Kid)>를 봤다. 작고 마른 소년 다니엘은 전학 간 고등학교에서 덩치 큰 조니와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코브라 카이'라는 도장에서 가라테를 배우는 조니는 자기의 전 여자친구 앨리가 다니엘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이 못마땅하기만 하다. 무기력하던 다니엘은 우연히 일본 무술인 미야기를 만나 그의 독특한 방식으로 가라테를 배운다. 결국 '올 밸리 가라테 선수권 대회' 결승전에서 반칙까지 서슴지 않는 조니를 상대로 다니엘이 회심의 발차기 반격으로 이긴다는 전형적인 성장드라마다.
 
주인공 다니엘 역의 랄프 마치오는 '꽃보다' 아름다웠다. 당시 유행이던 내 코팅 책받침은 가수 전영록에서 랄프 마치오로 바뀌었고, 청소년 잡지 <여학생> <쥬니어> <하이틴> 등을 뒤져서 관련 기사를 모았던 기억이 났다. 옛날 파일을 찾아봤더니 세상에! 영화 <베스트 키드> 잡지기사 스크랩과 손으로 쓴 관람기가 있었다. 그것도 무려 3페이지나 빽빽하게. 어찌나 자세히 썼던지 영화 장면 장면이 다 떠오를 정도다. 내가 얼마나 랄프 마치오를 '잠 못 이루며' 좋아했는지 알겠다.
     
 중학생 시절 스크랩한 영화 <베스트 키드> 잡지기사와 손으로 쓴 관람기.

중학생 시절 스크랩한 영화 <베스트 키드> 잡지기사와 손으로 쓴 관람기. ⓒ 전윤정

 
우리나라에는 평범한 하이틴 영화로 알려졌지만, 영화 <베스트 키드>는 미국에서 인기가 대단했다. 오리엔탈리즘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당시 문화적 파장은 대단해서 속편이 3편까지 나오며 승승장구했다. 영화 3편 모두 <록키(Rocky)>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존 G. 아빌드센이 연출했는데, 미국 내 흥행 성적은 록키 시리즈보다 앞설 정도다. 주인공 랄프 마치오 역시 1980년대 할리우드를 풍미한 청춘스타 군단 '브랫 팩Brat Pack' 중 한 명으로 불리며 인기가 높아졌다.
 
랄프 마치오의 현재 모습이 궁금해졌다. 검색을 해보니 오, 그는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있었다. 이래서 첫사랑은 다시 만나면 안 되는 것인가! 최강 동안이라던 그도 1961년생이니 벌써 환갑을 넘은 나이. 그동안 몇몇 영화를 찍었지만, 반응이 그다지 좋지 않았고, 현재 <코브라 카이 (Cobra Kai)>라는 미국 드라마에 출연 중이라고 해서 찾아봤다.
 
30여 년 만에 모인 출연자들... 추억이 '돋는다'
 
 <코브라 카이> 시즌5의 한 장면.

<코브라 카이> 시즌5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코브라 카이……. 왠지 낯익은데 싶었다. 코브라 카이는 영화 <베스트 키드>의 악역 조니가 다니던 무술 도장 이름이다. 그렇다, 드라마 <코브라 카이>는 영화 <베스트 키드>의 주인공들이 30여 년이 지난 후 다시 만난다는 설정이었다. 다만 주인공은 악역이었던 조니(윌리엄 자브카 역).
 
조니는 허름한 아파트에서 일용직을 전전하며 맥주 마시는 낙으로 살아가고 있다. 반면에 대형 자동차 판매점 사장이 된 다니엘은 승승장구 중이다. 조니가 '코브라 카이' 도장을 다시 열면서 이들의 악연은 다시 시작된다.
 
유튜브 오리지널로 시작한 <코브라 카이>는 시즌3부터 넷플릭스에서 제작 방영하고 있다. 시즌4, 시즌5 모두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에서 2주 연속 1위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중년이 된 두 주인공뿐 아니라 고등학생 자녀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과거 향수와 현재 속도감 있는 전개가 잘 버무려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나 같은 중년의 팬들에게는 드라마 중간중간 지난 영화 원작 장면이 적절히 섞여 나와 그야말로 추억이 '돋는다'. 돌아가신 미야기 스승을 빼고는 1984년 영화 출연자들이 대부분 동일 인물을 연기해 현실감을 더한다. 여자 주인공 앨리(엘리자베스 슈 역)는 언제 나올까 고대했는데, 시즌3에서 드디어 등장해 두 남자 주인공과 재회했을 때 얼마나 반갑던지!
 
드라마에서 영화와 관련된 물건이나 숨겨진 대사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니엘이 자동차 매장 손님에게 선물로 주는 나무 분재는 영화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중요한 소품이었다. 다니엘이 수련했던 일본식 도장, 도복과 머리띠. (머리에 맨 모양이 욱일기처럼 보여 논란됐는데 꽃문양이다), 미야기 스승에게 선물 받았던 올드카까지 그대로 나온다.
 
이렇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드라마 <코브라 카이>는 다루는 시간의 길이 만큼이나 주제 역시 깊어졌다. 권선징악, 흑백논리가 뚜렷했던 영화에 비해, 드라마는 '절대 악이나 절대 선은 없다'고 보여준다. 등장인물의 과거를 자세히 풀어내면서 캐릭터를 더 입체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더 공감이 간다. 특히 극 전반에 흐르는 '누구나 실수한다. 그렇기에 다시 기회를 주자'는 드라마 주제는 가라테 액션이 난무하는 전체적인 극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할리우드 시리즈 영화에서 앞선 이야기를 다룬 프리퀄 유행이지만, 이렇게 <코브라 카이>처럼 후일담이 시리즈로 나오는 것은 흔하지 않아 반가웠다. 무엇보다 배우들과 동시대를 살아가고 함께 늙어가는 느낌이 좋다. <코브라 카이>는 중학생 때 좋아하던 '최애' 배우가 중년이 된 나에게 준 선물 같은 드라마였다.
 
하지만 영화 <베스트 키드>를 전혀 모르는 세대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여러 해 에미상 후보에 오를 만큼 드라마의 짜임새가 훌륭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한 해를 뒤돌아보는 연말이다. "과거의 실수가 미래를 결정지어선 안 되죠"라는 극 중 카르멘 (바네사 루비오 역)의 대사에서 올해 저질렀던 크고 작은 실수를 위로받고, 2023년 새해의 의욕을 북돋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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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글쓰기로 중년의 빈 둥지를 채워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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