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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희생자 배우 고 이지한 씨 아버지 이종철 씨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를 방문해 국정조사특별위원장 등과 면담 도중 무릎을 꿇고 "우리 지한이, 억울하게 죽은 우리 아들... 진실을 밝혀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사정합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건 공정과 상식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며 울부짖고 있다.
▲ "진실을 밝혀주십시오" 무릎 꿇고 울부짖는 아버지 '이태원 참사' 희생자 배우 고 이지한 씨 아버지 이종철 씨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를 방문해 국정조사특별위원장 등과 면담 도중 무릎을 꿇고 "우리 지한이, 억울하게 죽은 우리 아들... 진실을 밝혀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사정합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건 공정과 상식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며 울부짖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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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국정조사 특위의 간담회 자리에서 고 이지한씨 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진실을 밝혀달라며 울부짖었다.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해달라는 그 간절함이 여실히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앞집 개가 죽어도 위로를 하는데 하물며 158명 자식들이 죽었는데..."라는 유가족의 이야기는, 국가가 어떤 모습으로 이태원 참사를 마주했는지 잘 알려준다. 그렇다. 이태원 참사 당시 제대로 기능했어야 할 국가는 없었고, 참사 이후의 추모와 애도 과정에서도 국가는 무책임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직후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다. 바로 다음 날인 10월 30일부터 11월 5일까지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은 근조 리본을 착용했고, 축제 등 문화공연도 자제하라 권고했다. 동시에 '참사'가 아니라 '사고', '희생자'가 아니라 '사망자'라는 표현을 썼다(관련 기사: 행안부, '이태원 사고 사망자' 표기 지침...일부 지자체, '참사→사고' 변경 http://omn.kr/21fj3).

하지만 10월 30일은 구조 및 의료 업무가 진행 중이었고, 희생자 숫자조차 확정되지 않은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국가가 공식적으로 애도기간을 선포한 것이다. 정부에게 '국가애도기간'은 참사에 대해 함께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것이 아닌, 망각을 유인해 참사의 성격과 의미를 축소하려는 의도가 투영된 것에 불과했다고 보는 이유다.

참사 이후 정부가 유가족들을 대하며 보인 모습은 윤석열 정부의 속내가 무엇인지 짐자할 수 있게 해주었다. 참사 다음날 희생자를 찾기 위해 수많은 병원의 응급실을 쫓아다녀야 했던 가족들의 이야기, 14시간 만에 나온 사체검안서 때문에 이틀이 지나서야 장례를 치를 수 있었던 이야기 등 상조회사만도 못한 정부의 지난한 행정절차로 인해 유가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더욱 커져갔다.

더욱이 희생자 명단 등이 공유되지 않으면서 정부가 유가족들의 만남 자체를 차단한 셈이 돼 버렸다. 유가족들은 "우리가 범죄자도 아닌데 같은 유족 만나는 걸 왜 이리 은밀히 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참사 유족 간 접촉을 못 하게 하라고 공무원들이 교육을 받았다"라고 토로했다. 윤석열 정부가 유가족들을 정치적 적대 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0.29 이태원 참사와 마주한다는 것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 5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 5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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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직후 한국 사회가 받은 충격과 슬픔은 단순히 참사의 규모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태원 참사를 보면서 대다수 사람들은 8년 전 세월호가 가라앉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다시 떠올렸다. 더욱이 참사 희생자와 생존자에 대한 혐오부터 국가행정의 무책임한 태도와 꼬리 자르기 행태에 이르기까지, 현 정부의 대응과정에서 볼 수 있는 사회 면면은 세월호 참사 때와 비교해 달라지지 않았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

8년 전 시민들이 던졌던 문제의식의 핵심이다. 그래서 우리는 촛불을 들었고, 대통령을 탄핵하기도 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태원 참사를 마주하면서 또다시 무력감에 빠져야 했다. 결국 대통령 교체 말고는 한국 사회가 변한 것이 없다는 방증이 아니겠는가.

또 다른 의미에서 이태원 참사는 청년들의 해방 공간이 붕괴되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태원은 성소수자, 외국인 등 한국사회의 다양한 소수자들이 모이는 공간이었다. 핼러윈은 사회적 무게감에 짓눌린 청년들에게 해방구 역할을 하던 행사였기도 하다. 성소수자와 외국인 같은, 한국사회에서 차별 받는 다양한 소수자들이 참사의 당사자가 되기도 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는, 개개인에 대한 추모를 넘어 우리 사회의 아픈 곳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서로를 위로하고, 회복하고, 치유해야 한다. 하지만 국가애도기간을 통한 국가의 추모는 이 과정들을 차단했다. 일주일이라는 단 기간 안에 추모와 기억을 가두어버리고, 형식을 통해 애도의 마음마저 정형화한 것이다.

사회적 애도, 추모와 행동으로 시작하자
 
‘6:34 우리에게 국가는 없었다 : 이태원참사 추모 청년 국화행진’이 지난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참사 현장 부근에서 이태원참사청년추모행동 주최로 열려 참가자들이 용산 대통령실앞까지 침묵행진을 벌이는 모습. ‘6:34’는 이태원 참사 첫 경찰 신고 시각인 10월 29일 오후 6시 34분을 의미한다.
 ‘6:34 우리에게 국가는 없었다 : 이태원참사 추모 청년 국화행진’이 지난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참사 현장 부근에서 이태원참사청년추모행동 주최로 열려 참가자들이 용산 대통령실앞까지 침묵행진을 벌이는 모습. ‘6:34’는 이태원 참사 첫 경찰 신고 시각인 10월 29일 오후 6시 34분을 의미한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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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애도할 자격이 없다. 정치가 이재명 특검과 김건희 특검으로 소모적인 정쟁을 거듭하는 동안에 158명의 희생자들이 비극을 맞았다. 참사 이후에도 양당은 법무부 장관이 청담동 술자리에 갔느니 마느니, 캄보디아에서 영부인이 조명을 썼는지 아닌지를 가지고 진실 공방을 하고 있었다. 무책임한 국가에 더 이상 추모와 애도를 맡길 수 없는 이유다.

'10.29 이태원 참사 청년추모행동'은 당시 오후 6시 34분이라는 최초 신고시각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시민사회의 청년단체들과 각 정당의 청년조직들이 모여 함께 만들었다. 지난 11월 2일부터 시작해 처음 1주일간은 매일매일 6시34분 이태원역에서 침묵시위를 진행했고, 요즘은 매주 목요일마다 이태원역에서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토요일에는 이태원역에서부터 용산 대통령 집무실까지 침묵행진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태원 참사의 비극을 기억하고, 함께 추모하며 행동하자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가가 강요하는 방식의 애도를 거부하고 청년들이 직접 추모 행동에 나서는 것을 통해, 국가가 없었던 그 자리를 청년들이 지키겠다는 것이다.

늦었지만, 첫 단추부터 다시 채워야 한다. 사회적 애도를 시작하자. 물론 그 과정은 슬퍼만 하자는 것이 아니다. 유가족들 곁에 서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비롯한 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한 요구를 외쳐야 한다. 안전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것은 욕심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라는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추모'로 '행동'하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10.29 이태원 참사 청년추모행동 공동집행위원장, 청년정의당 대표입니다.


태그:#이태원참사, #청년추모행동, #10.29이태원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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