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13 05:26최종 업데이트 22.12.1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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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왼쪽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2022.5.26 ⓒ 연합뉴스

 
이미 다들 안다. 세계 경제도 어렵고 한국 경제도 어렵다는 것을. 따라서 가계와 기업은 이미 씀씀이를 줄이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면 경제는 더욱 어려워진다. 이런 위기 상황일수록 유능한 정부가 필요한데 경제 사령탑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정부는 가계나 기업에 비해 파산 위험이 현저히 낮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윤석열 정부는 정부도 허리띠를 졸라매겠다고 한다. 초부자 감세 정책을 천명하고 재정건전성 강화를 위해 재정준칙 입법화를 예고했다. 기존 복지예산도 줄줄이 삭감하거나 폐지하고 있다. 대규모 감세 정책을 내걸며 대처 총리를 흉내내던 영국 트러스 총리가 취임 45일 만에 사임한 사실은 까마득히 잊은 걸까.


국민들의 마음을 모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총 매진해도 어려운 상황에서 대규모 감사와 검찰 수사로 전임 정부의 잘못을 들춰내기에 바쁘다. 하지만 '전 정부 탓'의 유효기간도 빠르게 끝나가고 있다. 이미 역대급 위기의 한복판에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위기에 봉착해 있다. IMF는 내년도 세계 평균 인플레이션율을 6.5%로 전망하며 전 세계 3분 1 이상 국가의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져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2024년에도 평균 4.5%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전망한다. 세계은행도 2008년 금융위기나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위기 때보다 위기의 진폭이 더 크고 길어 최소한 2024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장기전이 불가피하다.

핵심 원인은 전 세계적 수준의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심화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유로존 등 선진 경제권 중심으로 대규모 유동성 공급 정책이 추진되어 오다가 코로나로 더 막대한 천문학적인 돈이 풀렸다.

IMF 통계에 따르면 2021년 7월 말 현재 코로나 위기 대응을 위해 전 세계적으로 약 17조 달러의 돈이 풀렸다. 전 세계 GDP의 16.4%에 해당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반면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 생산과 공급량은 확 줄었다. 에너지 및 식량위기도 폭발했다. 고물가로 전 세계가 신음하는 이유다.

특히 선진국들 책임이 크다. G20 국가 중 한국 포함 상위 10개국들은 평균적으로 GDP 30.2%의 돈을 풀었다. 이 중 경제 규모 대비 가장 많이 돈을 푼 상위 3개국은 독일(46.2%), 이탈리아(45.1%), 프랑스(43.1%)다.

물론 금액으로는 미국의 유동성 공급이 제일 컸다. 미국 정부는 한국의 재난지원금과 같은 현금성 지출로 5.8조 달러(미 GDP의 약 28%)를 풀었고 이에 더해 연방준비은행도 5조 달러(한화 약 6530조 원)가 넘는 채권을 매입해 유동성 공급을 늘렸다.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도 돈을 풀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적었다. 재난지원금 등 현금성 지원으로 GDP의 6.4%, 금융기관들에 대한 지급보증 등을 통해 GDP의 10.1%의 유동성이 공급됐다. 이 현금성 지원은 선진국 평균(13.7%)의 반도 되지 않고 가난한 나라들을 포함한 전 세계 평균(6.2%)과 비슷한 수준이다. 정부 재정은 2년 연속 흑자였다. 2021년엔 20.6조 원이나 덜 썼다. 사실 좀 이해하기 힘든 재정 운용이다.

고통 분담 관련 갈등 폭증
   

13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입회장의 종목 시세판 밑에서 한 트레이더가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뉴욕 증시는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장기화할 것이란 공포 속에 추락했다.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각각 3.94%, 4.32% 폭락했고 나스닥 지수는 5.16% 폭락한 11,633.57에 각각 장을 마감했다. 2022.9.13 ⓒ 연합뉴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무분별한 확장 재정 정책이 비정상이었으니 바로 잡겠다고 한다. 정부 부채 문제가 가장 심각한 문제인 양 호도한다. 길게 봐서 정부 부채는 당연히 잘 관리해야 한다. 미래 재정 수요는 분명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연금개혁 등 할 일도 많다. 하지만 현재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정부 부채일까? 결코 동의하기 어렵다.

간단히 통계를 보자. 한국은행은 올해 들어 지난 11월까지 기준금리를 2.25%P 올렸다. 이에 따라 빚 부담이 확 늘었다. 지난 7월 발표된 한은의 국민대차대조표 통계에 따르면 2021년 말 현재 모든 경제 주체들의 금융부채 총액은 2경 291조 원에 달한다. 단순히 2.25%P 기준금리 인상만으로도 최소 456조 원의 부채상환 부담이 증가했다. 모두들 자금 경색으로 아우성인 이유다. 머지않아 이 아우성이 절규로 바뀔 것이다.

부동산 관련 대출도 마찬가지다. 주택담보 대출 금리는 이미 최고 8%를 넘어섰다. 빚 상환 부담도 급증하고 있다. 다들 알듯이 부동산 가격이 꺼지면 재앙 수준의 경제 참사가 불가피하다. 부동산(건물+토지)은 가계자산의 3분의 2, 국부(國富)의 약 75%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1년 말 주택 시가총액은 6534조 원이다. 흔히들 2017년 수준으로 집값이 다시 떨어져야 한다는 얘기를 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주택자산 감소액만 2220조 원을 넘는다. 2021년의 GDP보다 큰 금액이다.

설마 그런 일이 가능할까. 1990년대 일본은 더 참담했다. 1990년대 초 버블경제 붕괴 후 3~4년 사이에 부동산 가격이 50% 이상 하락했고, 이후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하락해서 2010년 전후의  부동산 가격은 1980년대 초반과 비슷한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물론 주식과 금융시장도 꺼졌다. 일본이 1990년대의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장기불황에 시달리는 핵심 이유다.

이런 위기 상황에선 고통 분담 관련 갈등이 폭증한다. 생존이 걸린 절박한 문제를 법과 힘을 동원해 찍어 누른다고 해결될 리도 만무하다. 다들 '선택할 자유'가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정된 국가 가용 자원으로 모두를 구제할 수도 없다. 결국 선택적 지원과 개입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경제 한파로 모두들 힘들 땐 오히려 더 따뜻한 공감과 통합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도덕적 해이와 시장 규율 강화 사이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 사회는 유기체와 같다. 발목의 작은 인대 부상 하나로 우리가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되듯, 경제위기로 가장 심하게 직격탄을 맞을 취약계층을 완전히 잘라내고 나아갈 수 없다.

장기적으로는 고통을 분담해 최대한 일자리를 유지하면서 서서히 경제 체질 개선을 도모하는 것이 승자독식, 각자도생의 생지옥보다 낫다. 결국 문제는 정치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 모두의 각성을 촉구한다.
 

강명구 / 뉴욕시립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 강명구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강명구 교수는 뉴욕시립대에서 국제정치경제 및 미국과 아시아 국제관계를 가르치고 있다. 일본 재무성 및 프린스턴의 고등과학연구소(Institute for Advanced Study)에서 방문학자를 역임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경제안보와 금융위기에 대한 정부의 정책 대응 문제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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