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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해변을 뒤덮은 검은 띠를 벗어내고 깨끗한 바닷가로 다시 태어난 충남 태안 만리포해변. 이곳은 이제 희망의 성지가 됐다. 사진은 유류사고 15년을 3일 앞둔 지난 4일 만리포전망대에서 촬영한 모습.
▲ 청정 바다를 되찾은 만리포해수욕장 15년 전 해변을 뒤덮은 검은 띠를 벗어내고 깨끗한 바닷가로 다시 태어난 충남 태안 만리포해변. 이곳은 이제 희망의 성지가 됐다. 사진은 유류사고 15년을 3일 앞둔 지난 4일 만리포전망대에서 촬영한 모습.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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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고향 세종시를 떠나 충남 태안군에 전입했다. 부푼 희망을 품었다. '제2의 고향'에 동경심도 생겼다. 

그러나 전입신고 한 달도 안 된 2007년 12월 7일 태안원유유출사고가 터졌다. 허망했다. 태안군 근흥면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집을 짓고 있었고, 지역사회와 더불어 살기 위해 예비군 근흥면대 부중대장도 맡아 활동폭을 한참 넓혀가고 있을 즈음이었기 때문이다.

고민도 했다. 폐허로 변한 태안 땅을 떠나야 하나, 일말의 희망이라도 품고 버텨야 하나. 선택은 후자였다. 직업군인을 그만두고 받은 퇴직금을 털어 평생 살 계획으로 집을 짓고 있었기에 이대로 갈 수는 없었다.

누구할 것 없이 검은 바다로 달려가는 주민들의 틈에 끼어 무작정 바닷가로 향했다. 기름냄새가 코를 찔러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바다를 뒤덮은 검은 기름띠를 걷어 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손을 보탰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손길이 보태져 청정 태안 앞바다를 뒤덮었던 검은 기름띠가 걷혀지고 다시 예전의 활기찼던 바다로 완전히 회복됐다. 그리고 제2의 고향에서 살아보겠다던 필자도 15년이 넘도록 태안에 정착해 살아가고 있다.

15년 전 갈림길에 섰던 필자의 판단이 옳았던 것이다. 이제 태안은 절망이 아닌 희망의 성지로, 사상 유래 없는 기름유출사고를 극복한 상징적인 커뮤니티로 자리잡았다.

태안유류피해기금은 모두의 것이다

하지만 희망이 공동체 갈등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태안원유유출 사고의 원인제공자인 삼성중공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11개 피해지역에 내놓은 삼성지역발전기금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이다. 

유류 피해민들의 피와 땀이 일구어낸 삼성지역발전기금은 대한상사중재원이 결정한 배분비율에 따라 태안군에는 1503억 원의 기금이 배분됐고, 2018년 12월 수협통장을 통해 수탁받았다.

태안유류피해민들은 이 기금을 수탁받기 위해 서산시와 당진시, 서천군과 함께 허베이사회적협동조합(아래 허베이조합)을 만들어 2019년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허베이조합은 2019년 4월 9일부터 2021년 4월 8일까지 2년간을 조합원 가입 기간으로 제한했고, 조합원 가입 자격도 유류오염사고로 인한 제한채권 신고자만을 대상으로 부여했다. 

허베이조합의 일방적 조합원 가입 자격 부여는 제한채권을 신고하지 못한 유류피해민들의 반발을 샀다. '삼성지역발전기금은 피해지역을 위한 기금인만큼 제한채권 신고자만이 아닌 태안군민 전체가 조합원 가입 자격이 있다'는 요구가 나왔지만 조합은 이를 배척했다. 

해양수산부가 (사)한국법제발전연구소에 의뢰한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오염사고 관련 피해민 복리증진 및 지역공동체 복원사업 효율화 방안' 최종용역 보고서에서도 이 부분을 지적됐다.

연구소는 "허베이사회적협동조합에서는 '채권번호를 부여받은 자에 대해 2년 내 가입자로 가입자격을 한정한 것은 단기간에 조합원을 많이 모집해 수혜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설명하지만, 가입자격 자체를 박탈하는 것은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주민의 요건을 모두 갖춘 사람에게 조합가입시한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입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면서 "삼성지역발전기금은 모든 피해주민에게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야 하고 해양환경의 조속한 복원이 이루어질 것 등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조합원 자격박탈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조합원 자격을 규정한 허베이조합의 정관 제9조 제4항을 전면 삭제와 미가입자의 추가 가입을 받아주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소의 지적과 별개로 필자는 이런 제안을 한다. 허베이조합의 일방적인 조합원 자격요건을 폐기하고 2007년 12월 7일 기름사고 이후 정부로부터 긴급생계비를 지원받은 모든 유류피해민을 조합원 자격 범주에 포함해야 한다.

'제한채권신고자'라는 자격요건이 아닌 '긴급생계비'를 지원받은 실제 유류피해민들을 기준으로 조합원 자격을 부여해 그들에게 기금을 통한 실질적인 지원과 혜택을 줘야 한다. 조합원 가입기간도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태안유류 피해민들의 피와 땀으로 일궈낸 삼성지역발전기금의 진정한 가치가 빛을 발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태안원유유출사고 15주년을 맞아 다짐한다. 비록 고향이 태안인 토박이는 아니지만 7년간 추적해왔던 허베이조합의 정상화을 위해 감시자 역할에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을.

또한 당부한다. 유족들과의 협의가 전제조건이겠지만 태안원유유출사고 이후 희생된 영령들에 대한 추모공간도 마련되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태안신문에도 실립니다.


태그:#허베이사회적협동조합, #태안원유유출사고, #삼성지역발전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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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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