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팀 지난 3일 포르투갈전에서 2-1 승리를 거둔 한국 대표팀이 경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한국 대표팀 지난 3일 포르투갈전에서 2-1 승리를 거둔 한국 대표팀이 경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대한축구협회

 
 
4년 4개월의 여정이 막을 내렸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지난 6일(한국시간) 2022 카타르 월드컵 브라질과의 16강전 이후 "오늘이 한국 대표팀과의 마지막 날이다. 4년 4개월 동안 함께 했던 선수들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불과 몇 개월전만 해도 벤투호를 바라보는 시선은 부정적이었다. 벤투 감독의 축구 철학에 대해 '고집'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며 비판론이 제기됐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꿋꿋하게 '마이 웨이(my way)'를 걸으며, 12년 만에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만들었다. 
 
벤투 감독 선임, 핵심은 능동적인 축구
 
지난 2014 브라질, 2018 러시아 월드컵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잦은 감독 교체였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한 명의 감독에게 4년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감대를 형성했다.

당초 빅네임들의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결국 대한축구협회는 2018년 8월 벤투 감독을 낙점했다. 스포르팅 리스본, 포르투갈 대표팀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낸 것에 반해 이후 브라질 크루제이루, 그리스 올림피아코스, 중국 충칭에서 경질 당하며 내리막을 걷고 있는 것은 우려스러웠다.   
 
대한축구협회가 벤투 감독을 선임한 배경에는 상대에 주도권을 주면서 수비 중심의 수동적인 축구(RE-Active)가 아닌 스스로 경기를 컨트롤하고 지배할 수 있는, 이른 바 능동적인 축구(PRO-Active)를 선호하는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수동적인 축구로 강팀을 잡는 것은 가능하지만 결국 발전 없이 한계점이 명확하다는 단점이 존재했다. 선진 축구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전문성이 높은 코칭 스태프와 우수한 훈련 프로그램도 빼놓을 수 없다. 
 
일각에서는 벤투의 축구 전술을 '빌드업 축구'로 지칭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축구에서 '빌드업'이란 득점을 위해 만들어가는 과정을 뜻한다. 즉, 모든 팀이 이러한 빌드업을 시도한다. 상대 골문으로 한 번에 넘어가는 롱패스도 빌드업의 한 종류다. 

벤투 감독은 지난 2018년 말 KFA 기술 컨퍼런스에서 밝힌 자신의 축구 철학에 대해 '경기를 지배하는 축구'라고 설명했다. 맹목적으로 점유율만 높이는 축구가 아닌 공격을 하기 위해 공을 소유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골키퍼부터 센터백을 거쳐 3선 미드필더에게 안전하게 공을 운반한다. 1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는 센터백 2명 사이 공간으로 내려와서 빌드업에 참여하며, 좌우 풀백들은 높은 지점까지 최대한 전진한다. 수비와 공격의 간격이 벌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상대팀들은 수동적으로 라인을 뒤로 내려야 하는 상황이 조성된다. 이후 좌우 측면 수비 배후 공간을 향해 중앙 미드필더들이 오픈 롱패스를 전개하면서 속도감 있는 전환을 시도한다.
 
그렇다고 벤투 감독의 전술이 무조건 짧은 패스가 밑바탕이 된 것은 아니다. 상대의 압박이 거셀 경우 미드필드를 생략하고, 공격수를 겨냥한 롱패스 패턴을 구사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핵심포인트는 압박에 있다. 공중볼 경합 이후 세컨볼을 따기 위해 빠르게 접근해 공을 쟁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강한 전방 압박으로 최대한 상대의 위험지역에서 탈취하고, 공격으로의 빠른 전환으로 슈팅까지 마무리 짓는다.
 
파울루 벤투 감독 벤투 감독은 지난 4년 동안 자신의 철학을 굽히지 않는 뚝심으로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뤄냈다.

▲ 파울루 벤투 감독 벤투 감독은 지난 4년 동안 자신의 철학을 굽히지 않는 뚝심으로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뤄냈다. ⓒ 대한축구협회

 
 
시행착오 끝에 아시아 최종예선 손쉽게 통과
 
벤투호는 2018년 북중미-남미팀들과의 평가전에서 무패 행진을 내달리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그러나 2019 아시안컵에서 다소 약점을 드러냈다. 밀집 수비를 형성하는 아시아 약체팀들과의 경기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결국 벤투호는 카타르에 패하며 8강에 머물렀다.
 
아시안컵 실패 이후 벤투 감독은 기존의 4-2-3-1만을 고집하지 않고, 4-1-3-2와 같은 투톱 중심의 포메이션을 가다듬었다. 좀더 공격적인 구성으로 아시아팀 맞춤 전략을 꺼내든 것이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에서의 답답한 경기력, 지난해 3월 일본과의 평가전 0-3 대패는 벤투호를 향한 비난 여론의 불을 더욱 지폈다. 3년 동안 팀을 이끌었지만 자신의 입맛에 맞는 선수 선발, 후방에서의 세밀한 빌드업 전술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정작 선수들은 벤투 감독의 훈련 방식과 축구 철학에 만족감을 드러내며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벤투 감독은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으로 돌입하면서 서서히 정상궤도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4-3-3과 4-1-3-2를 혼용하며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UAE, 이란 등 중동세에 맞서 7승 2무 1패, A조 2위로 10회 연속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11년 동안 이어진 이란전 무승 징크스를 깼음은 물론이고, 최종예선 2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조기 통과를 확정지을만큼 앞선 두 번의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고전한 것과 비교해 안정적인 레이스였다.
 
이후 벤투호가 순항한 것은 아니다. 지난 6월과 9월 A매치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타 대륙 강팀과의 경기에서 벤투호의 민낯이 크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상대의 전방 압박이 거세질수록 후방에서의 빌드업 실수가 여러 차례 나타났으며, 넓은 공수 간격으로 인해 공 소유권을 내주는 즉시 수비 숫자 부족 현상을 드러냈다. 측면 풀백에 대한 불안감과 뒷공간 공략에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도 미해결 과제로 남았다. 

비유럽파가 주축이 된 2022 동아시안컵 한일전 0-3 패배도 축구팬들의 원성을 샀다. 지난 9월 카메룬과의 평가전에서는 라 리가에서 활약중인 이강인을 출전시키지 않자 벤투 감독을 향한 비난이 절정에 달했다.
 
엎친 데 덮친격으로 월드컵 본선을 3주 남겨두고 에이스 손흥민의 안와 골절 부상 소식까지 겹치며 암울한 전망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국 대표팀 2022 카타르 월드컵 포르투갈전에서 김영권의 득점 이후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는 한국 대표팀 선수들

▲ 한국 대표팀 2022 카타르 월드컵 포르투갈전에서 김영권의 득점 이후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는 한국 대표팀 선수들 ⓒ 대한축구협회

 
내용과 결과 두 마리 토끼 잡은 벤투호
 
그럼에도 12년 만에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좋은 결과를 만들었지만 4년의 긴 시간 동안 일관된 목표와 콘셉트로 매 경기 상대에게 밀리지 않는 내용을 선보인 것은 처음이다. 약팀은 강팀을 상대로 최대한 후방으로 내려앉으며 선수비 후역습을 시도하는 것이 해답이라는 편견을 보기좋게 깨뜨렸다.
 
첫 경기 우루과이전에서 무승부를 거두고, 가능성을 확인한 벤투호는 가나를 맞아 슈팅수 22-7의 일방적인 우세에도 패배를 당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1무 1패의 성적은 당초 예상한 시나리오와는 완전히 어긋났지만 훌륭한 경기력을 두고 축구팬들로의 찬사가 쏟아졌다.
 
탈락이 유력할 것이란 전망을 뒤엎고, 우승후보 포르투갈과의 최종전에서는 극적인 2-1 승리를 거두며, 도하의 기적을 만들었다. 손흥민의 마스크 투혼, 핵심 수비수 김민재의 부상 결장, 가나전 퇴장으로 벤투 감독이 벤치에 앉지 못하는 여러가지 악재를 극복하고 일궈낸 승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뜻깊었다.

비록 카타르에서의 여정은 16강에서 막을 내렸지만 세계 최강 브라질을 상대로 물러서지 않은 채 맞불을 놓으며, 원래의 기조를 유지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황인범, 나상호, 김문환, 조규성 등을 일찌감치 발굴해 A대표팀의 주축으로 올려놓은 것 또한 벤투 감독의 작품이다. 스쿼드 운영에서는 보수적이라는 당초의 평가와 달리 이번 대회에서는 유연함이 돋보였다. 황희찬과 김민재의 부상으로 인한 공백은 나상호, 정우영, 권경원으로 대체했다.

주전 공격수 황의조가 부진하자 가나와의 2차전부터 조규성을 과감하게 선발로 기용한 선택은 적중했다. 1년 10개월 만에 벤투 감독으로부터 출전 기회를 부여 받은 이강인은 선발과 조커를 오가며 창의적인 플레이를 선보였다.

이번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은 한 명의 감독 체제로 내용과 결과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다. 벤투 감독은 역대 한국 대표팀의 최장수 감독이자 4년 임기를 채운 유일한 감독이다. 높은 볼 점유율, 빠른 반대 전환, 강한 전방 압박, 능동적으로 경기를 주도하는 방향성을 월드컵 본선에서도 실현시킨 것이다. 꿋꿋하게 신념과 철학을 유지한 벤투 감독은 결국 결과로 증명하며, 4년 4개월의 여정을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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