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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1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노동조합법 개정안 관련 입법공청회에서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가 발표한 진술서입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그 내용을 그대로 싣습니다. [편집자말]
공청회에서 발언하는 윤지영 변호사.
 공청회에서 발언하는 윤지영 변호사.
ⓒ 국회방송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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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 없다'는 하청, '책임 없다'는 원청

20년 만에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노동조합법 개정 논의가 이론 논쟁으로만 흘러가지 않기를 바라며 진술을 시작하겠습니다.

올해 8월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가 사상 최대라고 합니다.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54%인 188만 원입니다. 딱 최저임금 수준입니다. 임금 격차가 커지고 비정규직의 임금이 최저임금으로 수렴하는 데에는 노동조합법이 한몫합니다.

아시다시피 헌법에는 노동3권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사용자에 비하여 경제적으로 약한 지위에 있는 근로자로 하여금 사용자와 대등한 지위를 갖추도록 하기 위하여 노동3권을 부여하고, 근로자가 이를 무기로 하여 사용자에 맞서서 생존권을 보장하고 근로조건을 개선하도록"하는 것이 헌법이 정한 노동3권의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말대로라면 경제적 약자인 비정규직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임금을 실제로 결정하는 회사를 상대로 쟁의행위를 하고 교섭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25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했습니다. 노동시간을 좌우하는 간선차 배차 문제, 터미널 작업환경 등을 원청인 CJ대한통운이 결정하기 때문에 하청 노조로서는 원청을 상대로 교섭하지 않으면 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습니다.

심지어 2021년 중앙노동위원회의 원청 교섭의무 인정 결정이 있었음에도 CJ대한통운은 불복했습니다. 올해 쟁의행위 사업장으로 널리 알려진 대우조선해양, 하이트진로, 연세대학교 청소노동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청업체에 이야기하면 하청업체는 우리는 결정 권한이 없다고 하고, 원청에 이야기하면 원청은 '당신은 노동자가 아니다, 우리는 사용자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정규직이 우선 선택할 수 있는 건 법적 대응입니다. 그런데 법적 대응은 결과가 나오기까지 한참 걸립니다. 재능교육 학습지교사들이 노동조합 설립 신고를 하고 대법원 판결을 받기까지 20년이 걸렸습니다. 근로자라는 판결이 있었음에도 대리기사가 전국단위노조를 인정 받기까지 14년이 걸렸습니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대법원에서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인정 받기까지 12년이 걸렸습니다. 심지어 대법원 판결이 났는데도 지금 현대차는 단체교섭이 아니라 협의회를 꾸려 논의하자고 합니다.

CJ대한통운의 교섭거부에 대해 하청노조가 구제신청을 한 지 3년이 되어 가지만 아직 1심 판결도 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노동3권은 법률이 없더라도 헌법의 규정만으로 직접 법규범으로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체적 권리라고 했지만, 지금의 노동조합법 하에서 노동3권은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기 전까지 그림의 떡입니다. 지연된 권리는 권리가 아닙니다.

법을 교란하는 기업들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6월 22일,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 바닥에 가로세로 1미터 크기의 철판을 붙여 만든 공간 안에서 농성하고 있다.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6월 22일,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 바닥에 가로세로 1미터 크기의 철판을 붙여 만든 공간 안에서 농성하고 있다.
ⓒ 금속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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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 노동자들이 처음부터 철제 감옥을 만들고 싸운 건 아니었습니다. 1년 넘게 소위 합법 파업을 벌였지만 하청업체는 결정 권한이 없다고 했고, 어렵게 하청업체와 교섭을 하면 갑자기 폐업을 해버렸습니다. 하이트진로 노동자들도 소위 합법 파업에서 시작했습니다. CJ대한통운 노동자들도 대리점주들에게 먼저 교섭을 요구했습니다.

만약 결정 권한을 가진 원청이 교섭에 임했더라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조용히 교섭으로 끝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체교섭 권한이 없다는 원청이 오히려 대체인력 투입, 조합원 해고에 개입하는 불법을 저지르며 합법 파업을 무력화했습니다. 노조가 이를 저지하자, 원청은 불법 폭력‧파괴행위라며 노동자 개개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사실 노동조합 입장에서 물리적인 투쟁을 한다는 것,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임금과 해고 위험을 감수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먼저 대화로 해결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입니다. 문제는 노동 조건을 결정하는 상대가 대화에 응하지 않고 대화로 해결해야 할 사항들을 자꾸 법정으로 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노동조합법은 자율적 교섭 메커니즘을 활성화하기 위한 법입니다. 그러나 현재 경영계는 이 자율적 교섭 메커니즘을 깨고 법을 교란하고 있습니다.

자율적 교섭 메커니즘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교섭의 상대방이 교섭에 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지금 노동조합법 제2조는 너무나 무력합니다. 직장갑질119가 의뢰하여 대한민국 3대 여론기관이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86.6%의 직장인이 원청회사에게 교섭 참가를 의무화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참고로 이 실태조사에서 직장인의 93%는 '하청노동자가 받는 처우가 정당하지 않다'고 응답했고, 90.5%는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사측의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법안에 대해 79.0%가 동의했습니다. 재계와 보수 언론의 호도에도 민심은 노동조합법 개정을 지지합니다. 현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에 대해 주로 말했지만 정규직 노동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노동조합법 하에서는 사실상 임금과 노동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에 대해서는 파업이 불가능합니다. 회사가 단체협약을 어겨도 파업이 불가능합니다. 외국에서는 대체로 허용되는 정리해고 반대 파업이 한국에서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노동3권 행사에 '불법 딱지' 붙이지 마라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SPC 본사 앞에서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이 SPC그룹의 계열사인 SPL평택 공장에서 끼임사고로 사망한 노동자의 추모 행사를 하고 있다.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SPC 본사 앞에서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이 SPC그룹의 계열사인 SPL평택 공장에서 끼임사고로 사망한 노동자의 추모 행사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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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SPC 계열사 노동자가 작업 도중 사망했습니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작업은 중지되지 않았고 다른 노동자들은 사람이 죽은 그곳에서 계속 일을 해야 했습니다. 지금 노동조합법에서는 이런 상황에서도 노동조합이 작업 중지를 요구하며 파업을 할 수 없습니다. 만약 파업을 하면 불법 파업이 됩니다. 그리고 손해배상을 해야 합니다.

사실 쟁의행위는 본질적으로 위협적이고 손해를 유발하는 것입니다. 쟁의행위가 헌법상 기본권이라는 것은 사용자에게 손해를 끼쳐도 괜찮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법의 불법행위책임 법리에 반하는 노동조합법 제3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면책이 원칙이고, 손해배상이 예외인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회사가 모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노조 파괴의 수단으로 손배가압류를 남발하는 것입니다. 소를 제기하고, 가압류 신청만 해도 노동자들이 위축될 것을 알기 때문에 일부러 소송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노조를 탈퇴하고 권리를 포기한 자에 한하여 선택적으로 소를 취하하는 것입니다.

재계와 정부는 불법을 운운하지만 불법이라는 딱지는 노동조합법이 합법의 가능성을 극히 좁혀 놓았기 때문입니다. 헌법상 권리를 법률로 좁혀서는 안 됩니다. 노동조합법은 헌법상 권리가 제대로 실현되도록 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노동자들의 요구 사항은 단지 갚아야 할 손해배상액을 줄여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발적인 교섭 메커니즘을 복원해 달라는 것, 힘없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 헌법의 노동3권의 행사에 불법 딱지를 붙이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잘 살피시어 노동조합법을 꼭 개정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국회 공청회에 온 현장 당사자들과 활동가들의 모습.
 국회 공청회에 온 현장 당사자들과 활동가들의 모습.
ⓒ 윤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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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노동계 추천 진술인으로 출석했지만 사실 제가 아니라 현장의 노동자가 있어야 할 자리였지요. 그래서 더 무거운 마음으로, 진술서에는 담지 못했지만 많은 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공청회에 임했습니다.

태그:#노조법, #노조법 2, 3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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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일하는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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