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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도 가을 단풍이 절정이다. 아마 한국도 지금 한창 아름다울 것 같다. 올해는 유난히 늦게까지 날씨가 따뜻해서 단풍이 늦었는데, 늦어서 더 예쁜 것 같기도 하다. 굳이 산에 가지 않아도 여기저기 가로수들도 저마다 아름다운 잎을 뽐내고 있다.

며칠 전, 주유소에서 대기하면서 창밖을 내다보니 빨갛게 물든 나무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계속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빗속에서 그 붉은빛은 더욱 선명해 보였다.
 
주유소에서 내다보고 찍은 캐나다 거리의 가을 풍경
 주유소에서 내다보고 찍은 캐나다 거리의 가을 풍경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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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가면 단풍이 들고, 그러고 나면 잎이 진다. 그리고 겨울이 온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차가운 그 계절에는 수많은 생명이 잠에 빠져든다. 나무들은 잎을 떨구고 길고 추운 겨울 동안 에너지를 모으며 봄을 기다린다. 

추운 계절은 그래서 죽음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뭇잎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기도 하다. 물들고 나서 떨어지면 끝이니까. 그렇다면 그 직전의 아름다운 단풍은 마지막 화려한 파티일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학교에서 배워서 모두 알고 있다. 가을이 되면 날이 추워지고 낮이 짧아져 일조량이 줄어들면서, 광합성을 하는 엽록소의 양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배웠다.

그 엽록소가 잎을 녹색으로 보이게 하는데, 그게 줄어들면서, 잎에 있는 다른 색들이 보이게 되는 원리라고 한다. 세상 낭만 없는 이런 설명은 단풍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다.
 
서울 남산 공원에서 찍은 가을의 모습
 서울 남산 공원에서 찍은 가을의 모습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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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단풍은 식물에게만 드는 게 아니라 우리 인간들에게도 찾아온다. 우리의 머리카락도 나이를 들면서 멜라닌 색소의 생성이 줄어들면 색이 빠지면서 흰머리가 되어가기 때문이다. 나무도 상록수가 있듯이 머리카락도 늦게까지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삼십 대에 이미 백발이 되는 사람도 있다.

흰머리는 우리 집안의 내력이다. 아버지는 이미 20대 후반부터 염색을 하실 정도였고, 그만두시는 순간부터 백발이 되셨다. 그래서 어린 내 손을 잡고 버스에 타면, 무심한 차장 언니가 다짜고짜 경로우대증을 보여달라고 한 적도 있다. 아버지는 할인해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단풍은 그리도 예쁘다고 탄복하면서 바라보는데, 왜 흰머리는 늙음의 상징일 뿐 아름다운 색상으로 인정되지 못할까? 나도 일찍부터 머리가 세었는데, 염색하지 않는 나를 보고 "사는 게 힘들어 보인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염색하라는 충고이다.

"염색만 하면 십 년은 젊어 보일 텐데!"
 

이 말은 아직도 듣는다. 내가 십 년 젊어 보이면 어떨까? 나보다 열 살 이상 많은 남편이랑은 스무 살 차이 나 보여야 하는데, 그건 좀 너무할 거 같다.
 
한 7~8년 전쯤 찍힌 뒷모습 사진. 뒤에까지 이렇게 흰머리가 많은 줄 몰랐었다
 한 7~8년 전쯤 찍힌 뒷모습 사진. 뒤에까지 이렇게 흰머리가 많은 줄 몰랐었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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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미용실 갔더니, 90세 할머니도 결혼식에 가기 위해서 염색하러 왔더라. 날이 추워서 감기 걸리면 큰일 난다면서도 주름이 가득한 얼굴에 너무나 생뚱맞은 검은 머리로 염색 중이셨다. 어떻게 남의 결혼식에 염색도 안 하고 가냐는 말씀이었다.

놀라운 것은, 한국인들에게는 그리도 초라해 보이는 이 흰머리가, 이곳 캐나다인들에게는 예쁜 머리카락으로 흔히 인식된다는 것이다. 마치 단풍잎처럼, 마치 은행잎처럼 말이다. 친하게 지내는 퀼트 친구들은 나를 보면 늘 당부한다.

"절대 염색하지 마! 머리 색 너무 예뻐!"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이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것들을 그대로 아름답다고 봐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단풍잎을 보면서 문득 들었다. 가을이 되면 물든 나뭇잎을 기대하듯이, 사람의 모습도 그렇게 기대해주면 좋을 것 같다.

우리는 물든 나뭇잎을 서글프다 보지 않고 즐거이 바라보고,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어느 누구도, 물든 잎이 보기 싫으니 녹색으로 칠하면 좋겠다고 하지 않듯이, 우리도 억지로 보톡스를 넣어 얼굴을 팽팽하게 만들거나, 머리를 새까맣게 물들이지 않는 여유를 가지면 즐거울 것 같다.

사람의 삶에도 계절이 있다면, 가을을 마음껏 즐기고 싶다. 눈 가에 패인 주름도, 하얗게 센 머리도 그 나이에 맞는 아름다움으로 즐기면 삶이 더 다채롭지 않을까?

태그:#가을, #단풍,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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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많이 사랑하고, 때론 많이 무모한 황혼 청춘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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