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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세상에서 잠시 기분전환 할 수 있는 재미난 곤충기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보통 사람의 눈높이에 맞춘 흥미로운 이야기이므로 얘깃거리로 좋습니다. [기자말]
신록의 푸르름은 오랫동안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다. 녹색은 자연의 색, 안정감을 주며 눈이 피로하지 않으므로 학교의 칠판은 모두 진녹색을 갖고 있다. 녹음에 대한 선호는 인간의 정서에 반영되어 여러 분야에 이입되고 있다.

늘상 푸른 나무를 상록수라고 하며 라디오에서 종종 흘러나오는 옛 팝송 중에 에버그린(Evergreen)이 있다. 원곡은 로이 오비슨(Roy Orbison)이 1960년대에 발표했는데, 수전 잭스(Susan Jacks)가 리메이크해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다들 한 번쯤은 불러봤던 김민기의 상록수 첫구절은 "저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로 시작한다. 1980년대 민주화 항쟁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잭스의 노래가 남녀간의 사랑을 포크송으로 표현하고 있다면 김민기의 가사는 시대상이 녹아있다.

상록수라고 해서 늘 푸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수명이 다한 잎을 떨구며 새로운 잎을 만들어 내기에 우리가 보기에는 언제나 초록색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상록수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크게는 상록침엽수(소나무, 구상나무, 가문비나무, 전나무, 잣나무 등)와 사철나무, 동백나무, 회양목 같은 상록활엽수가 있다.
 
계절과 관계없이 늘상 신록을 간직하고 있다.
▲ 사철나무. 계절과 관계없이 늘상 신록을 간직하고 있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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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는 큰 키 나무라서 20~40m 정도까지 자라며 후자는 가장 높이 자라는 동백나무가 7m 정도다. 사철나무와 회양목은 적당한 높이로 성장하기에 예로부터 담장이나 울타리 용도로 쓰인다. 안채의 사생활도 어느 정도 가려주고 항상 푸르름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사철나무는 그늘진 곳에서도 잘 자라고 토질도 가리지 않기에 이식도 자유롭다.

노랑털이 가을볕을 눈부시게 반사

가을 햇볕이 낮게 깔리면 노랑털을 반짝이며 사철나무를 찾는 곤충이 있다. 9월~11월까지 볼 수 있는 노랑털알락나방이다. 날개를 포함한 몸 길이는 30mm 정도이며 온몸에 진노랑과 흑갈색 털이 수북하게 나 있다. 대가리와 가슴까지는 까맣고 배마디는 노랑색이다.
 
사철나무에 산란하며 자기 몸의 털을 뽑아 알을 덮는다.
▲ 노랑털알락나방 암수. 사철나무에 산란하며 자기 몸의 털을 뽑아 알을 덮는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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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털알락나방은 노박덩굴과(사철나무, 화살나무, 회잎나무 등) 잎을 먹고 자란다. 볕이 좋은 10월이면 수십여 마리의 암수가 춤을 추며 사철나무에 모여 짝짓기를 한다. 암놈은 노랑색의 알을 낳으며 보온을 위해 자기몸의 털을 뽑아 덮는다. 후대를 남기려는 노력은 주변의 위험에는 아랑곳하지 않으므로 느긋하게 지켜볼 수 있다.

수컷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암놈이 산란하는 광경을 지키고 있다. 다른 수놈과의 짝짓기를 막아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려는 이기적인 행위다. 암수의 차이는 거의 없으며 수컷의 더듬이는 암놈이 풍기는 페로몬을 쉽게 탐지하기 위해 생선뼈 모양으로 크고 화려하다. 산란이 끝나면 어미는 볼품없이 서서히 말라 죽어간다.

염기성 독극물을 먹는 뒤흰띠알락나방

검푸른 날개 중간쯤에 흰색의 줄무늬가 있는 뒤흰띠알락나방은 한 여름에 성충이 된다. 애벌레의 먹이식물은 노린재나무인데 잎을 태워 만든 '잿물이 노랗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로는 황회(黃灰)라고 적었으며 예로부터 옷감을 염색하는 용매로 쓰였다.

잿물은 말 그대로 '재에 물을 부어 나트륨이나 칼륨 같은 알칼리성 성분을 녹여낸 것'을 말한다. 우리 조상님들은 잿물을 졸여서 여러 가지 용도로 활용했다. 서양식 비누가 대중화 되기 전에는 집집마다 세제를 만들어 썼다. 잿물을 가마솥에 끓이면 시커먼 덩어리로 뭉쳐지는데 이것을 말려서 비누 대용으로 이용했다.

또한 도자기를 빚을 때 유약으로 사용했으며 옷감을 염색할 때에도 써먹었다. 시멘트의 옛말이 '양회'이듯이 서양에서 들어온 잿물을 양잿물(수산화 나트륨)이라고 부르며 독성이 강해 살갗에 닿으면 물집이 생기고 옷감을 손상시킨다.
 
애벌레 시절에 노린재나무의 알칼리성분을 독으로 쓴다.
▲ 목덜미에 빨간 스카프를 두른 뒤흰띠알락나방. 애벌레 시절에 노린재나무의 알칼리성분을 독으로 쓴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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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린재나무는 잎을 갉아먹는 애벌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독성 있는 알칼리성 화합물을 만든다. 그러나 뒤흰띠알락나방만큼은 다른 종과의 먹이 경쟁을 피해서 이에 적응했다. 오로지 노린재나뭇잎만을 먹는 지독한 편식쟁이다. 바꿔말해, 노린재나무가 사라지면 뒤흰띠알락나방도 살아남을 수 없다.

애벌레는 노랑색 바탕에 검은줄이 바둑판처럼 칸을 나누고 있으며 옆구리에는 빨간점이 박혀 있고 털이 듬성듬성 나 있다. 위협을 느끼면 반사출혈로 물방울 같은 독액을 낸다. 다 자라면 명주실로 노린재나무 잎사귀를 엮어 반으로 접어서 고치를 만들고 번데기가 된다. 성충은 거무스름한 바탕이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서 파랑색이 비치고 목덜미에는 빨간색 스카프를 두른 패셔니스트다.

태그:#노랑털알락나방, #뒤흰띠알락나방, #사철나무, #잿물, #노린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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