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인다"던 그 남자가 내 집 현관문 앞에 섰다

[주거침입 잔혹사 - 아우트로] 10세부터 85세까지, 49건 주거침입 피해가 의미하는 것

가장 안온해야 할 곳, '집'. 그러나 여자의 집은 자주 예외가 된다. 여성이 사는 집 담을, 문을, 창문을 넘어 침입했다는 뉴스는 끊임없이 새로고침 된다. 오마이뉴스는 그 실체를 들여다보기 위해 2021~2022년 '주거침입' 사건 판결문 200건을 분석했다. 거기엔 '성적목적'을 위해 타인의 주거에 침입한 가해자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8편의 주거침입 잔혹사를 공개한다.[편집자말]

두 살 딸 아이와 엄마, 단둘이 있던 집에 누군가 "물 한 잔 달라"며 초인종을 눌렀다. 보리차 한 잔의 호의를 받아 마신 그 남자는 잠기지 않은 현관문을 열고 다시 들어왔다. 돌연 엄마 목에 칼을 겨누었다. 엄마는 끓는 보리차 주전자를 들어 그 남자를 향해 던졌다. 남자는 도망갔고, 나는 망연히 울었다.

이것은 나의 경험담이다. 엄마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구전된 나의 첫 '주거침입 피해 기록'이다. 24세에도 한 번, 32세에도 한 번. 두 번의 주거침입 피해를 더 겪었다. 누군가가 여자의 집을 침입했다는 뉴스가 매일 새로고침 되는 와중에, 남은 생애 주기 동안 얼마나 더 많은 피해를 겪어내야 할까.

2021년과 2022년, 2년 동안의 주거침입 사건 판결문 200건을 찾아내고는 더욱 아득해졌다. 피해자의 나이가 명시된 판결문은 총 133건. 거기엔 10세부터 85세까지 전 생애에 걸친 주거침입 피해가 촘촘히 기록돼있었다. 나이별로 한명씩만 추려 나열해도 49건이다.

49건을 정리하며 생각했다. '이건, 우리의 이야기'라고. 다음은 그 주거침입 기록이다.

10세부터 85세까지, 우리의 주거침입 기록
20 이하 30 40 50 60 이상 알수없음 주거침입 피해 시간대 주거침입 피해여성 연령대 0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10세. 그 남자가 내 뒤를 쫓았다. 아파트 공동 현관문으로 따라 들어왔다.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그 남자는 나를 쫓아 내렸다. 엘레베이터 앞에서 나를 유사강간했다. 오후 5시 27분에 벌어진 일이다.

12세. 그 남자는 아파트 복도에 난 내 집 창문을 열고 손을 집어 넣었다. 휴대전화 카메라를 켜 내가 샤워하는 모습을 촬영하려 했다. 오후 6시 10분에 벌어진 일이다.

15세. 그 남자가 내 뒤를 쫓아왔다. 공동 현관문 안까지 들어온 그 남자는 내 다리를 만지고 스타킹을 잡아당겼다. 오후 4시 5분에 벌어진 일이다.

18세. 옆집 남자가 자꾸 "사귀자"고 치근덕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 남자가 내 집 초인종을 눌러댔다. 현관문을 두드리고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문을 열어주지 않자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쳤다. 오후 4시 30분에 벌어진 일이다.

19세. 집에 가던 내 뒤를 그 남자가 쫓아왔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간 순간, 잠금장치가 작동되지 않은 그 틈에 현관문을 비집고 그 남자가 들어왔다. 오후 10시 45분에 벌어진 일이다.

20세. 그 남자는 여성 전용 원룸 건물에 위치한 내집 다용도실까지 들어와 샤워하고 있는 나를 찍으려다 발각됐다. 오전 2시 35분에 벌어진 일이다.

21세. 그 남자가 나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탔다. 나는 OO층을 눌렀고, 그는 14층을 눌렀다. 내가 OO층에서 내리자 그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 남자는 14층을 취소하고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그는 이 건물에 사는 사람이 아니었고,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내 집에서 살지 못했다. 오후 5시에 벌어진 일이다.

22세. 공동주택 대문을 열고 들어와 창문 앞에 선 그 남자가 내 집 안을 훔쳐봤다. 오전 3시 10분에 벌어진 일이다.

23세. 빌라 공동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서는데 그 남자가 따라 들어왔다. 나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갑자기 내 엉덩이를 만졌다. 오후 10시 40분에 벌어진 일이다.

24세. 현관문을 통해 내 집에 침입한 그 남자는 내 속옷을 훔쳤다. 오후 5시에 벌어진 일이다.

25세. 그 남자는 내 뒤를 따라 오피스텔에 침입했다. 나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고 내 집 앞까지 따라와 "문 열어"라고 수차례 소리쳤다. 112에 신고하려는 내 휴대폰을 빼앗으려 했다. 오전 12시 8분에 일어난 일이다.

26세. 길거리에서 갑자기 나를 끌어안은 그 남자는 내 집 앞까지 따라왔다.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는 사이 재빨리 나를 따라 건물에 들어왔다. 뒤따라오는 그가 무서워 계단 옆으로 몸을 비켰다. 그 남자는 먼저 올라가는 척하더니 뒤돌아 나를 또 껴안았다. 오후 10시 10분에 벌어진 일이다.

27세. 그 남자는 내 뒤를 쫓아 공동 현관문으로 따라 들어왔다. 그는 다른 층에 사는 것처럼 20층을 눌렀으나 내가 내리자 문이 닫히기 직전 몰래 따라내렸다. 현관문을 열려던 나를 계단으로 끌고 가 성추행했다. 오전 1시 48분에 벌어진 일이다.

28세. 내 집을 알아낸 그 남자는 현관문 앞에 놓인 블랙박스에 카메라를 설치해 집 비밀번호를 알아냈다. 집에 들어와 옷방 안 화장실에 숨어 있었다. 오전 12시 20분경 벌어진 일이다.

30세. 그 남자는 집에 가는 내 뒤를 쫓아 같은 버스에 타 25분간 나를 미행했다. 내 집에 따라 들어온 그 남자는 나를 폭행했고 성폭행하려 했다. 오전 7시에 벌어진 일이다.

31세. 그 남자는 자신의 화물차를 내가 사는 빌라 옆에 세웠다. 화물차 지붕을 밟고 올라가 내 집 창문을 열고 머리를 안으로 들이밀었다. 그 남자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었다. 오전 10시 25분에 벌어진 일이다.

32세. 전 남편인 그는 화가 난다는 이유로 내 집 복도 창문을 벽돌로 내리쳐 깨트린 후 집에 침입했다. 오후 8시 5분에 벌어진 일이다.

33세. 그 남자는 내 몸을 훔쳐보기 위해 내 집 창문 앞까지 침입했다. 오후 12시 59분에 벌어진 일이다.

34세. 일하다가 알게 된 그 남자는 내가 잠든 틈을 타 내 집 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성추행했다. 오전 4시에 벌어진 일이다.

35세. 그 남자는 집 울타리를 넘어 화장실과 연결된 통로 출입문을 열고 창문 앞까지 들어왔다. 내가 화장실에 있는 모습을 불법 촬영했다. 오후 8시 49분에 벌어진 일이다.

36세. '아는 사람'일 뿐이었던 그 남자는 내게 음란물을 보냈다. 그 날 내 집 앞까지 찾아와 출입문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초인종을 눌렀다. 오전 7시 30분에 벌어진 일이다.

37세. 그 남자에게 결별을 통보했다. 내 집에 있던 그 남자는 흉기를 들고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112에 신고 했다. 내 집에서 나간 그 남자는 새벽에 다시 돌아왔다. 현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오전 4시 55분에 벌어진 일이다.

39세. 내 뒤를 따라 함께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탄 그 남자는 현관문을 여는 나를 밀치며 집 안까지 들어왔다. 그 때 집안에 있던 남편이 나왔고 그 남자는 도주했다. 오전 7시 38분에 벌어진 일이다.

40세. 전 남편인 그는 내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 집 초인종을 눌렀다. 그래도 내가 나오지 않자 화재경보기 스위치를 눌렀다. 오전 5시에 벌어진 일이다.

41세. 같은 다세대주택에 사는 이웃인 그 남자는 내가 택배 박스를 훔쳐갔다고 따져댔다. 한국말이 서툰 나는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남자의 행동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남자는 자신의 택배를 확인해야 한다며 집 안으로 침입했다. 이후 성폭행했다. 오후 7시에 벌어진 일이다.

42세. 미리 준비한 절단기로 창문을 뜯어낸 후 내 집에 침입한 그 남자는 금붙이를 훔친 후 옆 방에 있던 나를 성폭행했다. 오전 4시 30분에 벌어진 일이다.

43세. 뒷집에 거주하는 그 남자는 담을 넘어 내 집 안방까지 침입해 내 속옷에 사정을 했다. 오전 9시 40분에 벌어진 일이다.

45세. 전 연인이었던 그 남자는 이미 알고 있던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내 집에 침입했다. 내가 집에 들어오자 나를 폭행하고 가뒀다. 오후 4시에 벌어진 일이다.

46세. 깜빡하고 열쇠를 현관문에 꽂아둔 채 외출했다. 이웃의 그 남자는 열쇠를 가져가 무단 복제했다. 며칠 후 그 남자는 내 집에 침입했고 내가 소리지르자 도망쳤다. 오후 11시 56분에 벌어진 일이다.

47세. 내 집 앞에 설치한 울타리를 두고 시비를 걸던 이웃집 남자는 수차례 협박한 것도 모자라 집 마당에 돌을 던졌다. 그래도 반응하지 않자 마당을 통해 거실 창문 앞까지 들어왔다. 오후 7시 10분에 벌어진 일이다.

48세. 그 남자는 가스배관을 타고 올라와 베란다 창문을 통해 내 집 안방까지 침입했다. 오후 9시 20분에 벌어진 일이다.

49세. 편의점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 남자는 나를 뒤쫓아 빌라 안으로 들어와 내 집 현관 신발장까지 침입했다. 오후 10시 30분에 벌어진 일이다.

50세. 그 남자는 대문을 열고 들어와 2층 계단 빨래 건조대 위에 놓인 내 속옷과 두 딸의 속옷을 훔쳐갔다. 그 남자는 두 번이나 내 집에 침입했다. 오전 6시에 벌어진 일이다.

51세. "회칼 가져가 죽인다"던 그 남자가 정말로 칼을 들고 내 집 앞에 왔다. 현관문을 발로 차고 손잡이를 돌려봤다. 오전 11시 32분에 벌어진 일이다.

53세. 집에 가는 내 뒤를 따라 온 그 남자는 현관문으로 통하는 계단 앞까지 들어왔다. 오전 3시 35분에 벌어진 일이다.

54세. 집에 가는 내 뒤를 쫓은 그 남자는 함께 건물 엘리베이터에 탔다. 내가 8층을 누르자 7층을 누른 그 남자는 먼저 내려 재빨리 계단으로 8층까지 올라왔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그는 과도를 목에 대며 성추행하려 했다. 나는 큰 소리로 남편을 불렀고, 그는 도망쳤다. 오후 10시 30분에 벌어진 일이다.

56세. 전 연인이었던 그 남자가 집 앞으로 찾아왔다. "집에 있는 줄 아는데 문을 왜 안 여냐"며 출입문을 두드리고 잡아당겼다. 오후 10시 9분에 벌어진 일이다. 그 후로도 "네 이빨 부시고 2000만 원 공탁 걸겠다"며 협박하고 목을 조르는 폭행을 일삼던 그 남자는 한 달 후 또 내 집에 찾아왔다. 도어록 비밀번호를 수회 누르고 문을 두드렸다.

58세. 그 남자가 내 집에 침입해 속옷을 훔쳐갔다. 나 외에도 46세, 47세, 53세, 57세, 70세 여성들이 속옷을 절도 당했다. 오후 7시 52분에 벌어진 일이다.

59세. 동네 이웃인 그 남자는 나를 성추행했고 폭행했다. 두 달 뒤 내 집 안방까지 들어와 침입했다. 오후 10시 30분에 벌어진 일이다.

61세. 내가 외출한 틈을 타 그 남자가 집에 침임했다. 내 옷과 속옷을 훔쳐갔다. 오전 8시에 벌어진 일이다.

63세. 그 남자는 돌을 던져 내 집 창문유리를 깨트렸다. 깨진 창문을 통해 집안에 침입했다. 오후 11시 50분에 벌어진 일이다.

64세. 이웃주민인 그 남자는 내 집 문을 열고 거실까지 들어왔다. 집에 들어온 그는 가만히 앉아있었다. 오전 11시에 벌어진 일이다.

66세. 같은 아파트 주민인 그 남자는 내 집 안방에 들어왔다. 돈을 빌려달라고 하더니 나를 때리고 성폭행했다. 내 통장을 들고가 현금을 빼낸 그는 내 집으로 다시 돌아와 나를 죽였다. 오전 10시 30분에 벌어진 일이다.

67세. 전 연인인 그 남자는 내가 만나주지 않고 연락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 집 앞까지 찾아왔다. 문을 두드리고 강하게 흔들어 대문을 망가뜨렸다. 현관문 앞까지 들어와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발로 찼다. 오후 5시에 벌어진 일이다.

72세. 그 남자는 현관문으로 들어와 나를 성추행하고 폭행했다. 오후 10시 20분에 벌어진 일이다.

74세. 다른 여자를 쫓아 빌라에 들어온 그 남자는 내 집 문을 두드리고 도어록을 잡아당겼다. 오후 11시 43분에 벌어진 일이다.

82세. 그 남자는 내 집 앞마당에 3번 침입해 속옷을 훔쳐갔다. 그 남자는 36회 속옷을 훔쳤고, 19번 주거침입 했으며 피해자만 13명이었다. (범행 시각 불상)

83세. 그 남자는 내 집에 침입해 나를 성폭행했다. 오후 6시에 벌어진 일이다.

85세. 그 남자는 내 집 거실까지 침입했다. 오전 12시 30분에 벌어진 일이다.

전 생에 걸쳐 여성의 집은 침입 당한다. 새벽, 낮, 밤을 가리지 않고. 성적목적을 지닌 가해자들이 침입을 반복하는 이상, 그리고 이들의 범죄를 온갖 이유를 들어 양해해주는 이상, 여성의 집은 안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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