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중 내 집 문 열려던 그 남자,
CCTV에 찍힌 소름끼치는 장면

[주거침입 잔혹사 ②] 주거침입 고소부터 합의까지...
그녀는 결국 이사를 택했다

가장 안온해야 할 곳, '집'. 그러나 여자의 집은 자주 예외가 된다. 여성이 사는 집 담을, 문을, 창문을 넘어 침입했다는 뉴스는 끊임없이 새로고침 된다. 오마이뉴스는 그 실체를 들여다보기 위해 2021~2022년 '주거침입' 사건 판결문 200건을 분석했다. 거기엔 '성적목적'을 위해 타인의 주거에 침입한 가해자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8편의 주거침입 잔혹사를 공개한다.[편집자말]

2021년 8월, 여름이었다. 김서연(42·가명)씨는 그 날을 "어쩌다가 레이스 치마를 꺼내 입은 날"로 기억했다. 사놓고 내내 입지 않아 아까웠던 살랑거리는 치마를 입은 날, 그 일이 발생했기에 잊을 수 없다고도 했다.

초저녁, 집에 들어가는 길. 오가며 마주친 적 있는 윗집 남자가 가로등 아래에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고 했다. 유독 뚫어지게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이 거북했다. 애써 외면한 채 서둘러 집으로 들어갔다. 공동 출입문으로 들어서는 순간까지, 그 남자의 시선이 치맛자락에 따라 붙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 날 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달칵 달칵 대문 손잡이를 열려는 소리도 이어졌다. 서연씨 집에는 올 사람이 없었다. 서연씨가 살던 다세대 빌라는 한 층에 세 집이 마주보고 있는 구조였다. 나머지 두 집 모두 여성이 거주하고 있어 그 점이 마음에 들어 계약한 집이었다고 했다. 다른 집과 대문을 마주 보고 있기에, 서연씨는 '옆집에 누가 왔겠지'라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애써 귀를 막았다고 했다. 음악을 크게 틀어 문 밖의 소리를 밀어냈다. 그렇게 그 날 밤이 지나갔다.

아무래도 찝찝했다. 겨우 용기를 냈다고 했다. 이틀이 지나고 나서 집 문 앞에 달아놓은 CCTV를 돌려봤다. 그 날 밤 12시, 눈이 마주쳤던 윗집 남자가 서연씨 집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도어록 비밀번호를 눌러대고 현관문 손잡이를 열어보려한 장면이 고스란히 찍혔다. 그 남자는 1시간 반 동안 서연씨가 사는 층을 들락거리며 계속해서 '침입'하려 했다.


CCTV에 찍힌 윗층 남자
▲ 2021년 8월 밤, 김서연(42, 가명)씨 집 앞에 윗 집 남자가 찾아와 1시간 반 동안 들낙거리며 서연씨 집 문을 두드려댔다. 이틀 뒤 CCTV로 이 장면을 확인한 서연씨는 결국 그 집을 떠나 이사했다. ⓒ 유튜브 '수선화' 채널 갈무리

그렇게 CCTV를 확인하고도, 뭘 할 수 없었다.

"경찰에 신고하면 제가 한 걸 바로 알 거잖아요. 오히려 해코지 당할 거 같은데 전 혼자 사니까, 고민이 됐어요."

하루가 다르게 불안이 쌓여갔지만 윗집 남자는 태연했다. 엘리베이터 등에서 눈이 마주치면 도리어 눈을 부라렸다.

"술 먹고 실수했으면, 절 봤을 때 '시끄럽게 해서 죄송하다' 그래야 하는 거 아닐까요. 안 그랬어요. 그래서 더 불편했어요. 오히려 눈을 희뜨니까... '또 그러면 어쩌지' 불안감이 커졌죠. 창문 여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집에서 인기척이 나면 '내가 집에 있는 걸 윗집 남자가 알게 되면 어쩌지' 싶었어요. '1인 여성가구 창문 통해 침입' 이런 영상들을 보니 더 걱정됐죠."

30대 초반까지 가족과 함께 살던 때 서연씨에게 집은 "완벽히 안전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대세대 빌라에서 혼자 살기 시작하며 "집이 범죄의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완벽히 안전한 공간'이 아닌, 더군다나 내 집에 침입하려던 남자가 윗집에 사는 그 빌라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었다. 결국 그녀가 빌라를 떠났다. 2021년 9월의 일이다.

본래 계약은 2022년 8월까지였다고 했다. 계약 만료 전 집을 떠나며 새로운 세입자를 알아보는 일도, 이사할 집을 알아보는 일도, 이삿짐을 싸는 일도, 이사비용을 대는 일도 고스란히 서연씨 몫이 됐다.

결국 선택한 이사, 그제야 신고했다

이사하고 3개월 후, 서연씨는 경찰에 2021년 여름의 일을 신고했다. "문을 두드린 것만으로는 상대가 '실수했다'하면 넘어갈 줄 알았다"는 그녀에게 경찰이 '주거침입 미수' 범죄임을 알려줬다고 했다.

"오피스텔로 이사했는데, 전 주인이 옷장을 놓고가서 중고 판매 사이트에 옷장을 판다고 올렸어요. 한참 후에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어요. 옷장을 가지러 왔는데 갑자기 제 집 화장실을 쓰겠다는 거예요. 안 된다고 해도 계속 끈질기게 졸랐어요. 그랬더니 옷장 안 가져간다고 입금한 돈을 돌려 달래요. 실랑이 끝에 결국 경찰이 왔어요. 그 남자는 옷장을 가져가고, 그렇게 일단락됐어요. 경찰이 '여자 혼자 살면 이런 일이 좀 있다'더라고요. 그래서 빌라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 드렸더니 '주거침입 미수'라고 신고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얼굴이 또렷이 찍힌 CCTV 화면을 경찰에 넘겼다. 경찰 수사를 지나 검찰로 사건이 넘어갔다. 한 달 후 검찰에서 연락이 왔다. '합의하라'고 했다. 서연씨는 "검찰 쪽에서 계속 '합의를 하는 게 가장 편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합의를 하려면 그 남자를 마주해야 하는 줄 알았던 서연씨는 한 달 동안 합의를 거부했다.

"검찰에서 '이 사람은 직업도 있고 여자친구도 있고 멀쩡하다, 술 취해서 잠깐 그런 거 같다'고 말하더라고요.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계속 '상대가 죄송하다'고 얘기했다고 전해줬어요. 검찰에서 재차 연락이 오고, 합의는 얼굴 안 보고 해도 된다고 하니까... 합의하고 끝내자, 싶었어요."

2022년 4월, 합의 조정이 마무리됐다. 합의금으로 300만 원을 받았다. 8개월 만에 자의·타의로 '주거침입 범죄'에 종지부가 찍혔다. 서연씨는 이 같은 사건을 수사·조사하는 담당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주거침입 미수도 처벌되니, 법은 마련이 돼있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사건을 조사하시는 분들이 조금 더 피해자 입장을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술에 취해서 그럴 수도 있지' 그런 말들이 상처를 줍니다. 핑계가 될 수 없어요. 만약 제가 그날 문을 안 잠갔다면요? 그 남자가 제 방에 들어올 수 있는... 심각한 문제예요. 제발 그 점 잊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녀에게 기댈 곳은 '공권력'이 아니었다
▲ 40대 여성 1인가구. 그녀에게 기댈 곳은 '공권력'이 아니었다. 그녀는 "CCTV를 믿게 된다"고 했다. ⓒ DALL·E

서연씨는 경험담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소개하기도 했다. 영상에는 같은 두려움을 공감하는 여성 1인가구 등이 CCTV 설치 방법·비용을 문의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리기도 했다. 서연씨에게 직접 '1인 여성 가구'의 안전을 위한 방안을 물었을 때에도 공권력이 해결책은 아니었다. 그녀는 "CCTV를 믿게 된다"고 했다.

"혼자 사시면 개인용 CCTV를 문 앞에 다세요. 꼭이요. 1인 여성 가구는 범죄 노출 빈도가 높아요. 저도 이런 일 생길 줄 몰랐는데 겪었네요... 건물에 달린 CCTV는 번지르르해도 정작 내 집 앞은 안 비추고 있을 수 있어요. 사설 CCTV 설치하면서 통신사 할인 결합했고, 월 1만 5000원 정도 내고 있어요. 제가 드리는 안전 팁은 CCTV, 그거 하나인 것 같아요."

이미 그 집을 떠났고, 이사한 집에도 CCTV를 달았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여름날 밤 한 남자가 집 문 앞을 서성였을 뿐이다. 대문을 두드렸고, 도어록 비밀번호를 눌렀을 뿐이다. 술 취해서 실수로 그런 것일 뿐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일상이 달라졌다. 불안은 '현재진행형'이라고 했다.

"내가 문을 잠갔나? 굉장히 여러 번 확인하게 되더라고요. 누군가 제 집에 들어오면 안 되니까요. CCTV도 되게 자주 확인해요. CCTV에 더 의존하고 있고요. 그리고 오히려 집 밖에 안 나가게 됐어요. 내가 나가지 않으면 마주칠 일도 없고, 누가 따라 들어올 일도 없으니까요. 더 집순이가 됐어요."

이런데도 '술 취해서 그럴 수 있는 일'일까. 그녀는 되묻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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