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회 여자기숙사에 침입한 그 사람,
직장 동료였다

[주거침입 잔혹사①] 누구든, 언제봤든 침입...
판결문 속 성적 목적 주거침입자들

가장 안온해야 할 곳, '집'. 그러나 여자의 집은 자주 예외가 된다. 여성이 사는 집 담을, 문을, 창문을 넘어 침입했다는 뉴스는 끊임없이 새로고침 된다. 오마이뉴스는 그 실체를 들여다보기 위해 2021~2022년 '주거침입' 사건 판결문 200건을 분석했다. 거기엔 '성적목적'을 위해 타인의 주거에 침입한 가해자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8편의 주거침입 잔혹사를 공개한다.[편집자말]

초면이든 구면이든, 일로 만났든 스치듯 지나갔든, 침입한다. 2021~2022년 2년 치 여성 주거침입 판결문 200건을 분석해 마주한 가해자들은 지극히 평범했다. 그들은 기괴한 도시괴담 속 괴물이 아닌, 언제든 마주칠 수 있는 주변 사람이었다.

비상열쇠

전남 영암군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실. 2021년 2월과 3월, 한 회사의 여성 직원용 기숙사 비상열쇠 35개가 몽땅 사라졌다. 그리고 여성 직원들의 방이 털렸다. 2020년 5월 15일부터 2021년 3월 30일까지, 총 103회. 피해자만 8명이었다.

CCTV 등 증거조사를 통해 밝혀진 범인은 같은 회사 남성 직원 A씨. 여성 직원들이 출근한 틈을 타 오전 시간 대 빈집에 들어가 피해자들의 속옷을 촬영했다. 오후 6시, 관리소 직원들이 저녁 식사를 위해 사무실을 모두 떠난 시각, 가해자는 아주 쉽게 비상 열쇠를 손에 넣었다. 열쇠를 보관하는 캐비닛은 별다른 잠금장치 없이 열려 있었다.

A는 피해자 8명 중 5명과 합의하지 못했다. 2021년 7월 19일 열린 1심 판결문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정신적 충격이 크고, 엄벌을 원한다"고 했다. 재판 결과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었다.

▲ 주거침입 잔혹사 ⓒ DALL·E
마스터키

건물 내 모든 집의 문을 열 수 있는 도어록 마스터 비밀번호가 전과자의 손에 쥐어진다면. 그에게 주거침입 강간 포함 주거침입 동종 범죄 5건의 전과가 있다면. 결과는 빤했다. 26세, 19세 여성 피해자들의 속옷이 도난당했다. 2021년 2월, 대전 동구의 한 건물에서 벌어진 일이다. 범인은 해당 건물 관리 업체 직원이었다. 2020년 11월 취업한 후 3개월 만에 벌인 일이었다.

첫 범행 땐 요가매트에 자신의 발자국이 찍혀 있을 것을 우려해 두 번 침입했다. 세탁기 위에 놓인 피해자의 속옷을 자신의 차에 가져다 두고, 다시 피해자의 집에 들어가 발자국을 지웠다. 두 번째 범행은 피해자와 함께 있을 때 벌어졌다. 의뢰받은 주방 선반 설치 작업을 하던 중 속옷을 훔쳤다.

판결문에 그의 전력이 나열됐다. ▲절도죄 ▲주거침입죄 ▲야간주거침입 절도죄 ▲상습주거침입죄 ▲주거침입강간죄 ▲야간주거침입절도죄. 가해자는 실형 포함 5회 처벌 전력이 있었다. 재판부는 "굳이 건물 관리 업체에 취업한 것은 범행 중단을 위한 피고인의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가해자에게 징역 1년 6개월형이 선고됐다.

가해자는 형이 너무 무겁다고 했다. 항소심에서 자신이 속옷에 집착하는 '성 선호 장애'이므로 심신미약을 고려해달라 요구했다. 그러나 기각됐다. "충동적으로 집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일하며 알게 된 마스터 비밀번호를 이용해 치밀한 계획 하에 이성 혼자 사는 집에 침입, 속옷을 훔쳐 나온 점, 적발되지 않기 위해 요가매트에 찍힌 발자국을 지우고 나오는 치밀함"을 봤을 때, 심신미약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언제 어떻게 들어올지 모른다... 어디에나 있는 침입자들

▲ 언제 어떻게 들어올지 모른다... 어디에나 있는 침입자들 ⓒ 한승호

아주 잠시, 무방비로 집이 열리는 '평범한 순간'도 성적목적 주거침입 범죄의 주요한 미끼가 됐다. 2021년 10월 오전 9시 10분경, 충남 보령시의 한 아파트에선 열리지 않는 문을 억지로 '쾅쾅' 잡아 당기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댔다. 문고리를 잡은 침입자의 정체는 두 달 전 피해자의 집 장판과 도배 공사를 한 작업자였다.

공사 중 '여성이 혼자 사는 집'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가해자는 도배 전 받아둔 비밀번호로 침입을 시도했다. 출근 이후 시간대라 빈집일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일까. 집에 있던 피해자와 눈을 마주친 순간, 가해자는 그대로 문을 닫았다. 뒤돌아 가는 듯하더니, 다시 피해자 집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재침입을 시도했다.

다행히 피해자가 가해자와 눈이 마주친 직후 안전걸쇠를 걸어뒀기에 문은 완전히 열리지 않았다. 가해자는 열리지 않는 문을 붙들고 침입을 포기하지 않았다. 걸쇠 사이를 잡아당기며 발을 밀어 넣었다. 재판부는 가해자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피해자가 느꼈을 공포심"이 판결문에 언급됐다.

판결일 기준으로 2021~2022 2년치 여성 대상 주거침입 판결문을 취합해 분석한 결과, 200건의 사건 중 130건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초면인 사이였다. 한 번 이상 본 얼굴들은 이웃(25건)이거나, 전 연인·이혼한 부부(24건)인 경우가 많았다.

초면이든 구면이든, 평범한 얼굴 뒤 낯선 의도를 숨긴 침입자들은 수시로 침입했다. 세무공무원을 준비하는 고시반 실장이 마스터키를 훔쳐 여자 기숙사를 드나들었다. 전 세입자가 집 마스터키 하나를 따로 보관해 두었다가, 늦은 밤 출입문을 열고 들어왔다. 집주인이 세입자의 원룸 마스터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와 빨래바구니를 뒤졌다. 청소업체 직원이 도어록 비밀번호를 눌러댔다. 음식 배달부가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침입했다. 피해자가 주문한 소파를 배송한 기사가 베란다에 놓인 피해자 속옷을 훔쳤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마주치면 이상한 낌새를 느끼기 때문에 바로 성범죄자 인줄 알 거다'라는 생각하는데 이건 신화에 가깝다"면서 "가해자는 평범한, 어쩌면 선한 얼굴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을지 모른다"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러나 타인의 집 문을 열었다는 행위는 '큰 범죄를 저지르겠다'는 포문을 연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을 연 것은, 누군가 나오길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적극적인 행동입니다. 범죄 의도를 명확히 갖고 있음을 침입의 행위로,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가벼운 범죄일까요?"

지난 2월 23일, 헌법재판소는 '주거침입 강제추행죄'를 징역 7년 이상으로 처벌하게 한 성폭력처벌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이 조항은 법정형의 하한을 '징역 7년'으로 정해 주거침입의 기회에 행해진 강제추행·준강제추행은 정상을 참작해 감경하더라도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도록 했다"며 "경미한 강제추행·준강제추행까지 엄하게 처벌하는 것은 책임주의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타인의 주거에 침입했을 뿐 아니라 강제추행까지 저질렀다. 평범한 얼굴을 한 침입자에게 집을 침범 당하는 여성들에게 추행은 과연 '경미'할까. '경미한 추행'을 이유로 가해자들이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상황에서 여자의 집은 안온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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