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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국토종주 첫날 아침, 해가 뜨기 직전 잠수교 위.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자전거 국토종주 첫날 아침, 해가 뜨기 직전 잠수교 위.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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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처음 미니벨로를 타고 국토종주에 나섰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로부터 그 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그때 있었던 일들이 언뜻 언뜻 떠오를 때가 많다. 두 번째 국토종주를 계획하면서부터는 더 자주 당시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국토종주는 준비 과정부터가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어떤 경로로 이동할지를 탐색하느라 꽤 고생을 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국토종주는 '시작이 절반'이 아니라, '준비가 절반'이었다. 철저한 준비 없이 떠난 국토종주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위험한 상황과 맞닥뜨릴 가능성이 컸다. 그때는 자전거 국토종주를 하려면 일반도로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도를 보면서 가장 빠르고 안전한 길을 찾아야 했는데, 그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지도 위에 그려진 선 하나로 도로 상태를 확인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길로 자전거 통행이 가능한지도 알 수 없었다. 직접 가서 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자전거 국토종주는 일종의 '모험'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서 정보를 얻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국토종주 유경험자는 물론, 바퀴 지름이 20인치 이하인 미니벨로를 타고 국토종주를 다녀온 사례는 더 더욱 귀했다. 나는 결국 그동안 내가 겪은 도로 주행 경험을 토대로, 내가 가야 할 길을 스스로 개척해야 했다. 자동차도로를 피하고, 긴 터널과 높은 고갯길을 지나가는 경우 등을 최소화하면서 길을 찾는 데 상당한 공을 들여야 했다.

4대강 사업이 만든 '국토종주 자전거길'
 
성남 탄천 자전거도로. 붉게 물들어가는 가을 풍경.
 성남 탄천 자전거도로. 붉게 물들어가는 가을 풍경.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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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그래도 형편이 나아진 편이다. 자전거에도 내비게이션을 달 수 있어서, 이제는 자전거로 이동 가능한 길을 찾느라 굳이 많은 시간을 들여 지도를 들여다볼 이유가 없게 됐다. '자전거 길'에도 일정한 변화가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벌이면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줄곧 강줄기를 따라가는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만들었다. 이후, 국토종주가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만은 아니게 됐다.

국토종주 자전거길에 여전히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이 길이 생겨나게 된 배경에 아직도 여러 가지 의문이 남아 있다. 2008년 4대강 사업이 시작된 이후,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여론 못지않게 '국토종주 자전거길' 역시 많은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자전거길'을 4대강 사업을 미화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그런 비판에는 사람들이 접근하기 힘든 4대강에 자전거길을 만드는 데 쓸 예산으로,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에 자전거도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런 비판을 귀담아 들었다면, 국토종주 자전거길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자전거 내비게이션만으로도 도로 위에서 길을 잃고 헤맬 염려 같은 건 더 이상 하지 않아도 좋게 됐다. 12년 전 지도를 들여다보며 골머리를 앓았던 내게 내비게이션은 축복이나 다름없다. 남은 문제가 있다면, 그건 '근력'이었다. 변화는 '지도'와 '길'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었다. 12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내 몸에도 적잖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번 국토종주에는 특히 예전 같지 않은 체력이 가장 큰 장애로 작용할 게 분명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왜 그 힘든 걸 하려고 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이도 있고 이제 그만두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려운 질문이다. 그걸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경우, 그 질문 자체에 답이 있을 수도 있다. 거기에는 아마도 이 나이에 그 힘든 걸 해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내 스스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 같은 게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종주는 10월 12일에 시작해, 10월 16일에 끝마쳤다. 5일이 걸렸다. 애초 4일 예정으로 떠났는데, 도중에 '하루'가 더 늘었다. 자전거는 이번에도 미니벨로를 택했다. 12년 전 처음 국토종주에 나섰을 때, 나와 풍상과 고초를 함께 했던 그 자전거다. 그동안 같은 일을 겪으면서 같이 늙어가다 보니 강한 동지애가 느껴졌다. 변속 기어가 겨우 8단에 불과해 언덕을 오를 때 힘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떠나기 전 날... 카카오맵을 선택하다 
 
카카오맵 자전거내비게이션. 왼쪽이 일반도로 위주로 된 경로이고, 오른쪽이 자전거도로 99%인 4대강 자전거길(일부 도로 위에 표시된 자전거도로를 포함)이다. 일단 거리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파란색 선은 일반도로, 빨간색 선은 자전거도로를 의미한다. 나는 왼쪽 경로를 선택했다. 다만, 밀양을 떠나 부산에 가까워지면서부터는 낙동강 자전거길을 이용했다.
 카카오맵 자전거내비게이션. 왼쪽이 일반도로 위주로 된 경로이고, 오른쪽이 자전거도로 99%인 4대강 자전거길(일부 도로 위에 표시된 자전거도로를 포함)이다. 일단 거리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파란색 선은 일반도로, 빨간색 선은 자전거도로를 의미한다. 나는 왼쪽 경로를 선택했다. 다만, 밀양을 떠나 부산에 가까워지면서부터는 낙동강 자전거길을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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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전 날까지 계속 내비게이션을 만지작거렸다. 내비게이션은 카카오맵을 선택했다. 무료인데다, 유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내비게이션들 못지않게 쓸모가 있다고 판단했다. 카카오맵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길을 검색했는데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길로 3가지 경로가 제공됐다. 첫 번째와 세 번째 길은 4대강 자전거길을 따라가는 길로, 경로 상 큰 차이가 없었다. 둘 다 같은 길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나머지 하나는 대부분 일반도로를 타고 가다 중간 중간 자전거도로와 연결되는 길이었다. 예전에 내가 갔던 길의 변형이었다.

결국 두 가지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런데 두 가지 길이 장단점이 너무 명확해, 선택이 쉽지 않았다. 4대강 자전거길은 거리가 550여 km이고, 일반도로 길은 400여 km였다. 거리상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4대강 자전거길은 언덕이 적고 낮은 데 비해, 일반도로 길은 언덕이 많고 높았다. '길지만 상대적으로 안전한 길'과 '짧지만 상대적으로 덜 안전한 길' 사이에서 헤맸다.

그로 인해 떠나기 전 날까지 고민에 빠졌다. 막판에, 4대강 자전거길은 내내 강줄기를 따라가야 해서 중간에 식사를 하거나 숙소를 찾아 들어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런 면에서는 일반도로가 유리했다. 결국엔 짧고 험한 길을 택했다. 예전에 내가 갔던 그 길에서 보았던 풍경들이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 그것도 궁금했다. 장고 끝에 또 다시 '모험'을 선택한 것이다.

경로를 선택하고 나자, 하루에 100여km 씩 나흘을 달리면 종주를 끝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수요일에 떠나 토요일에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걸로 일정을 잡았다. 만약에 예상이 빗나가 하루 정도 일정을 늦춰야 하는 경우, 일요일에 돌아올 수도 있었다. 어쨌든 이번 주말 안에 모든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국토종주'를 표시한 자전거도로
 "국토종주"를 표시한 자전거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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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 서울시 마포구 - 음성군 금왕읍 (102km)

서울을 벗어나는 일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서울을 벗어나느라 자동차 물결 속에서 이리저리 길을 헤맸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내비게이션은 정확하게 작동했다. 몇 가지 단점이 눈에 띄긴 했지만, 무시할만했다. 안전을 먼저 고려해서인지, 좌회전 길에서 무조건 횡단보도를 건너 이동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서울을 벗어나면서 첫 번째 고개를 넘었다. '달래내고개'였다. 이어서 '효자고개'와 '곱등고개'를 넘었다. 평지나 낮은 언덕을 달릴 때는 잘 몰랐는데, 높고 긴 언덕에서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걸 감지했다. 미니벨로 자체가 언덕을 넘는 데 적합은 차종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빨리 체력이 떨어진다고? 고갯길 중간에 멈춰 서서, 앞으로 내가 마주하게 될 수많은 고개들을 떠올렸다. 이후 얼마나 더 많은 난관을 넘어야 할지 다소 막막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추수를 기다리는 황금빛 가을 들판
 추수를 기다리는 황금빛 가을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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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괴산군까지 가는 게 목표였다. 130km에 해당하는 거리였다. 첫날 갈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멀리 가야 다음 일정을 순조롭게 마무리할 수 있겠다 판단했다. 하지만 이날 가까스로 100km를 달리는 데 그쳤다. 마지막으로 '생음대로'를 달렸다. 대형 차량이 유난히 많이 오가는 국도였다. 서쪽하늘로 해가 떨어지는 순간, 이 도로 위에서는 더 이상 주행이 힘들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때마침 도시의 환한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곧바로 핸들을 꺾어 국도를 벗어났다. 음성군 금왕읍이었다.

국도에서 내려와 가까운 모텔로 들어갔다. 자전거에서 내려 모텔 계단을 올라서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허벅지가 팽팽하게 부풀어 올라 돌처럼 단단했다. 통증마저 무겁게 느껴졌다. 계단을 오르면서, 내일 아침 다시 이 계단을 내려올 수 있을까, 이런 상태로 종주를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뒤덮었다. 이제 겨우 국토종주 첫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음성읍에서 맞이한 아침, 안개가 짙게 깔린 도로.
 음성읍에서 맞이한 아침, 안개가 짙게 깔린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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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 음성군 금왕읍 - 상주군 화서면 (80km)

아침 6시에 눈을 떴다. 어제 손해 본 거리를 만회하려면, 오늘 좀 더 긴 거리를 달려야 했다. 하지만 자신이 서지 않았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여기 저기 몸 상태를 확인했다. 온몸이 뻐근했다. 그래도 다리가 완전히 고장이 난 것 같지는 않았다. 다리가 무거운 것 말고는 다행히도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다.

아침 7시, 숙소 현관을 나서면서 온 세상이 희뿌옇게 안개가 내려앉아 있는 걸 보았다. 100미터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였다.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도로 위로 올라서는데 영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나마 차량이 많이 오가지 않는 지방도로여서 크게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언덕이 연이어 나타났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어제처럼 힘들지는 않았다. 다리 근육이 장거리 주행에 조금씩 적응해 가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안개는 쉽게 걷히지 않았다. 그 길에서 뜻밖의 풍경과 마주했다. '사정저수지'를 둘러싼 산등성이로 안개가 덮여 있고, 저수지 수면 위로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침 햇살이 비치기 시작해 산천이 모두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황홀했다. 갈 길이 바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저수지 둑 위에 올라서서 그 광경을 한참 바라보았다.
  
음성읍 사정저수지의 아침 풍경.
 음성읍 사정저수지의 아침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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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면터널. 이번 종주 길에서 지나간 가장 긴 터널.
 송면터널. 이번 종주 길에서 지나간 가장 긴 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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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도 어김없이 높은 긴 고갯길을 기어올라 차례대로 '치재터널'과 '송면터널'을 통과했다. 송면터널은 구간이 705미터에 달했다. 이번 종주에서 가장 긴 터널이었다. 오전에 잠깐 생기가 돌았던 것과는 다르게, 오후가 되면서 체력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낮은 언덕을 오르는데도 있는 힘을 다해 페달을 밟아야 했다. 속도가 떨어지는 것에 반해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흘러갔다.

절반도 가지 못했는데 오후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일정상 목표로 했던 거리에 도달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졌다. 마지막으로 '늘재'를 넘었다. 그 고개 정상 위에 거대한 백두대간 표지석이 박혀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반도의 등줄기, 백두대간 위에 올라서 있었던 것이다. 백두대간을 이렇게까지 빨리 넘어서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그 육중한 표지석을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내 등줄기에까지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날은 겨우 70여 km를 달렸다. 하루 사이에 30km가 줄었다. 이날 저녁, 이후 계획을 모두 수정했다. 전체 일정에 하루를 더 추가하고, 중간 목적지를 전부 변경했다. 매일 조금씩 쉬어가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2년 전 국토종주 때도 애초 계획했던 3일에서 하루가 더 추가돼 낙담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같은 일이 되풀이 됐다. 그때는 도로 위에서 길을 잃고 헤매느라 늦을 수밖에 없었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럴 수도 없었다. 다만 오늘 추가한 하루가 이틀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늘재, 고갯길 정상에 서 있는 거대한 백두대간 표지석.
 늘재, 고갯길 정상에 서 있는 거대한 백두대간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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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종주를 2번씩이나 함께 한 내 자전거. 바퀴 지름 20인치, 기어가 8단인 접이식 미니벨로다. 종주 마지막 날, 구포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찍은 사진. 현재 KTX에 실을 수 있는 자전거로는 접이식일 경우에만 가능하다.
 국토종주를 2번씩이나 함께 한 내 자전거. 바퀴 지름 20인치, 기어가 8단인 접이식 미니벨로다. 종주 마지막 날, 구포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찍은 사진. 현재 KTX에 실을 수 있는 자전거로는 접이식일 경우에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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