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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이스트 김도윤 타투유니온 지회장(왼쪽에서 두번째)이 21일 12시경 서울북부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타투이스트 김도윤 타투유니온 지회장(왼쪽에서 두번째)이 21일 12시경 서울북부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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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법 302호 법정, 피고인이 재판장에게 발언을 요청하며 종이 한 장을 들고 일어섰다. 왼쪽 팔에 타투를 한 배우 한예슬씨의 화보 사진이었다.

"한예슬씨가 제 사건 1심 재판의 자필 탄원서에 적은 것처럼, 한씨는 예술작품을 받기 위해 예술가를 찾았고, 그 예술품은 여러 화보와 광고 촬영에 쓰이고 있습니다. 타투가 의술의 결과물이라 생각하는 이는 없습니다."

지난해 12월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타투이스트 김도윤 타투유니온지회장이었다. 이어 4분 가량 계속된 김 지회장의 발언은 사법부에 책임을 묻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재판 종료 후 법정 밖에선 "괘씸죄가 적용되겠네"라는 한 방청객의 '웃픈' 농담이 나왔다. 재판장도 "오늘이 마지막이 아닌데, 최후진술을 하시냐"고 말했다. 김 지회장은 왜 판사 앞에서 판사 비판을 감행했을까.

그는 "기분 나쁠 수 있을 거란 걸 알지만, 더 이상 입법부를 이유로 판결을 미뤄선 안된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30여년 전 사법부가 일본 판례를 그대로 가져와 타투를 불법이라 해놓고, 지금도 결자해지하지 않고 입법부에 책임을 미룬다"는 것이다.

"국회 논의 보자? 사법부는 사법부가 할 일을 해야"
 
2021년 11월 3일 국회 의원회관 앞에서 열린 타투 오픈베타서비스 행사에 참여한 한 시민들이 타투 스티커를 보여주고 있다.
 2021년 11월 3일 국회 의원회관 앞에서 열린 타투 오픈베타서비스 행사에 참여한 한 시민들이 타투 스티커를 보여주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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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2부(부장판사 진상범, 배석판사 권원영·정우혁)의 심리로 연달아 재판을 받은 타투이스트 3명은 짧게는 11개월, 길게는 17개월 째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중 한 명은 캐나다 이주를 준비하다 기소돼 비자 발급을 중단했고 캐나다인인 남편과 2년 째 떨어져 생활하고 있다.

다음 기일이 다음해 1월 13일로 정해지면서 재판은 2023년까지도 계속될 예정이다. 타투를 합법화하는 법안만 6개가 발의돼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인데, 재판부는 이 논의를 지켜보자는 취지로 재판을 다음 해로 넘겼다.

김 지회장은 이에 피고인 진술에서 "1992년에 이 판례(타투가 의료행위라는 판례)를 만든 것, 정확히 이웃나라 일본 판례를 그대로 가져온 것은 사법부의 판단이었다"며 "2020년 일본의 최고재판소가 동일 판례를 폐기했던 것처럼 대한민국 사법부도 주체성을 가지고 시대에 맞는 판결을 내려 주시길 요청한다"고 밝혔다.

또 "같은 판례를 갖고 있었던 유럽, 미국 등 청교도 국가들이 후에 판례를 부끄러워했던 이유는 법의 존엄성을 보여야 할 사법부가 누군가의 취향과 의견, 종교적 소견을 보위하기 위해서 법을 재료로 소비했다는 사실 때문"이라며 "그렇기에 2020년 일본 사법부도 판례를 먼저 폐기하고 법을 만드는 순서를 택했다"고 강조했다.

지난 8월 타투 시술을 의료인만 할 수 있는 의료행위로 규정한 현행 의료법을 합헌이라 판단한 헌법재판소와 관련해, 김 지회장은 "이 소식이 수십만 팔로워를 보유한 각국의 유명 타투이스트들 SNS를 통해 전 세계에 퍼져, 수억 명의 사람들이 문화강국이라 일컬어지는 대한민국이 지닌 의외의 문화지체에 경악을 했다"며 "한 외국인은 이 판결이 남한의 판결인지 북한의 판결인지를 물었다"고 밝혔다.

김 지회장은 끝으로 "(타투가 의료행위라는 판례가) 너무 오래 너무 길게 살았다. 그 마지막이 우리(한국)라는 사실이 부끄럽다"고 말하며 진술을 마쳤다.

최근 반영구화장 문신사 무죄 "희망 보여"

한편 지난 19일 청주지법에선 반영구화장 시술자 2명의 의료법 위반 혐의에 대한 무죄 선고가 연달아 나와 타투이스트들의 주목을 끌었다. 이들 재판부는 "반영구 화장 시술은 고도의 의학적 지식·기술이 필요해 보이지 않고 시술을 받은 이들도 화장 행위로 인지한데다, 보건위생상 지식뿐 아니라 화장기법 지식도 상당히 요구되는 행위"라며 의료법상 의료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김 지회장은 재판 후 기자회견에서 "2018년 타투이스트가 1심에서 무죄를 받은 판결에 또 상식적인 판결이 더해져 희망이 생긴다"며 "현재 (타투유니온이 파악한 범위 내에서만) 9명이 징역형 위기에 처해있고, 벌금형 선고를 기다리는 이들은 셀 수 없이 많다"고 말했다.

아래는 21일 김 지회장이 피고인 진술에서 낭독한 발언문 전문.
 
배우 한예슬 씨는 지난 1심 재판의 자필 탄원서에 적은 것처럼 예술작품을 받기 위해 예술가를 찾았고, 그 예술품은 여러 화보와 광고 촬영에 쓰이고 있습니다. 이 타투가 의술의 결과물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올해 3월과 7월 헌법재판소는 92년 판례에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입법부의 역할을 언급했습니다. 또 타투 관련 사건이 재판 중인 여러 법정에서 국회의 입법 진행 상황을 고려하여 판결을 미뤄주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난감한 상황에 처한 타투이스트들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겠지만, 당사자인 저희들의 바람은 다릅니다. 판사님, 타투가 의료라고 말하는 비상식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입법과 행정부의 규제 개혁도 방법이 될 수는 있겠지만, 저희가 간절히 원하는 단 한가지는 사법부의 판단입니다.

국회가 타투 법제화와 관련한 첫 법안을 발의한 지 12년이 되었고 이후 매 회기마다 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라는 정치조직의 특성상 의사협회의 눈치를 보며 법안을 심사조차 하지 않고 회기를 마감하는 방식으로 12년째 직무를 유기하고 있습니다. 타투가 의료행위라는 궤변이 판례로 존재한 30년간 병/의원들은 손재주가 좋은 비의료인들을 고용하고 불법 영업을 하는 방식으로 타투를 통해 이득을 취해왔고, 이제는 포기 못할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었습니다. 의사협회가 이 판례를 지켜야할 이해 당사자가 되었고, 이는 궤변 위에 쌓아올린 거대한 욕심입니다. 입법부에는 입법 요청이 아니라, 그들의 직무유기에 대한 행정소송이 필요합니다. 입법부에 맡긴다는 판결은 사법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어떤 변화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1992년에 이 판례를 만든 것, 정확히 이웃 나라 일본의 판례를 그대로 가져온 것은 사법부의 판단이었습니다. 2020년 일본의 최고재판소가 동일 판례를 폐기했던 것처럼 대한민국 사법부도 주체성을 가지고 시대에 맞는 판결을 내려 주시길 요청드립니다. 타투가 의료행위라는 과거의 판례는 타투와 의료에 대한 학술적 판단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일본을 비롯한 유럽과 미국 등 청교도 국가들 역시 동일한 판례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목적은 타투라는 행위 자체를 막으려는 것이었습니다. 후에 이 나라들이 해당 판례를 부끄러워했던 이유는 법의 존엄성을 보여야 할 사법부가 누군가의 취향과 의견, 종교적 소견을 보위하기 위해서 법을 재료로 소비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020년 일본 사법부도 판례를 먼저 폐기하고 법을 만드는 순서를 택했습니다. 법의 존엄성을 회복해야 새로 만들어지는 법의 존엄성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22년 현재, 타투가 의료 행위이고 불법이라 말하는 '세계 유일의 국가'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당사자는 대한민국의 사법부입니다. 판사님, 그래서 사법부의 책임 있고 상식적인 판결을 간절히 요청드립니다.

세계인이 타투를 받기 위해 한국을 찾는 이유는 이런 그림을 가지기 위해서입니다. 의사가 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닙니다. 

판사님, 약식명령을 받아 벌금만 내고 끝낼 수 있는 제가 이 자리까지 서게 된 이유를 봐주십시오. 타투를 작업하면 전과자가 되는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가들은 서울을 세계 타투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어냈습니다. 브래드 피트가 한국의 타투이스트를 찾고, 일론 머스크의 전용기가 저희를 태우러 옵니다. 그리고 한국에 되돌아오면 이렇게 법정에 서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 산업 안에서 가장 크게 사랑받아왔고 가장 많이 주목받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사람으로서 이 부끄럽고 황망한 상황 속에 후배와 동료들을 놓고 마음이 편할 수 없었습니다. 외국에서 편히 살 수 있지만, 그것은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을 정상화 시키 후에 하기로 했습니다.

지금도 제 동료들이 미대를 졸업하고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재판정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있는데, 이 황당한 억울함에 아무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 스스로 약식명령을 거부하고 재판정에 걸어들어왔습니다. 대한민국 법정에서 선포되는 판결이 대한민국 밖에서 어떻게 읽히는지 알리는 방법으로 제 자신의 재판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 8월 1일, '타투가 의료행위'라 판결한 한국의 헌법재판관 5인을 사족보행하는 유인원으로 표현한 이미지가 수십만 팔로우를 보유한 각국의 유명 타투이스트들을 통해 전 세계에 퍼졌고, 수억의 사람들이 이 글을 보고 문화강국이라 일컬어지는 대한민국이 지닌 의외의 문화지체에 경악을 했습니다. 한 외국인은 이 판결이 남한의 판결인지 북한의 판결인지를 묻는 질문을 남겼습니다. 신성한 법정에서 내려진 판결이 세계인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법부가 결자해지 하기를 바라고, 이를 통해 법의 존엄함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판사님,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한국의 한구석이 아닌 세계를 향해 당당히 외칠 수 있는 판결을 내려주십시오. 이제 대한민국이 92년의 판례를 폐기한다면, 수십년 전 청교도 국가를 시작으로 세계를 유랑했던 '타투가 의료'라는 큰 궤변의 흐름이 그 불편한 생을 온전히 마치게 됩니다. 너무 오래 너무 길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이 우리라는 사실이 부끄럽습니다.

태그:#타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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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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