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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인 필자는 의사를 비롯한 정신보건 전문가들이 '사회적 처지의 다름'을 자주 간과한 채 환자를 만난다는 심증을 갖고 있다. 의대생 시절 '최신정신의학'이라는 교과서에서 '편집성 인격장애- 동성애자, 청각장애인, 이민해 온 자들에게 많다'는 구절을 발견하고 교수님께 혹시 연구자나, 임상의의 사회적 편견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없는지 질문을 했다. 어떤 남학생들의 야유 섞인 반응이 나오기도 했지만, 교수님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질문이야"라고 그들의 반응을 일축했다.

정신과적 진단은 임상가 개인적 편견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은데, 그중 하나가 사회문화적인 편견이다. 적지 않은 환자들 역시 내심 그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여성 성폭력 생존자는 '대가'인 이전 치료자를 마다하고 필자에게 오기도 하며, 주변의 사회단체나 노조 활동가들이 적절한 치료자를 아는지 필자에게 물어오기도 한다. 치료자와 환자의 성별과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 및 이에 대한 태도와 신념이 정신의학적 진단에 작용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정신보건 전문가들은 서로의 젠더가 사회적 맥락 하에서 진단과 치료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끊임없이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정신과적 진단은 의사나 환자의 사회문화적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신과적 진단은 의사나 환자의 사회문화적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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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식을 가져야 하는 이유

신체질환의 진단 편향에 관하여서는 적지 않은 근거들이 쌓이는 중이다. 예컨대, 여러 만성 통증에 관한 연구들은 여성과 남성의 통증 경험에 있어서 젠더화된 규범을 보고하고 있다. 1) 즉, 남성은 웬만한 통증을 견뎌야 하며, 여성은 통증에 대해 자유롭게 호소할 수 있다. 그로 인해 남성의 통증은 축소 보고되며, 임상가들이 여성의 통증 호소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또한 관상동맥 질환은 성별 편견으로 인해 여성 환자의 치료가 지연되는 경향이 있는 데다2), 심리적 문제가 있는 여성 환자의 경우 임상가들이 그 위험을 낮게 여긴다는 보고도 있다.3)

정신과적 진단에서의 젠더 편향은 적절하지 않은 치료로 귀결될 위험이 존재함과 동시에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재생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같은 정신적 외상의 과거력이 있는 환자라도 여자 환자의 경우 남자 환자의 경우보다 경계성 성격장애의 진단을 더 받기 쉬운데4), 경계선 성격장애는 낙인이 될 수가 있고 치료적 허무주의를 불러오기도 한다.

국외에서는 일찍이 정신의학적 진단 도구나 진단 과정 상 젠더 편향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작지 않다. 예컨대, Kaplan5)은 성격장애마다 성별 유병률이 다른 이유 중 하나가 DSM-III에서의 진단기준이 젠더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이후 Sprock6)은 특히 반사회적 성격장애나 연극성 성격장애 등을 임상가들이 진단하는 데 있어 대상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에 따라 병적인지 아닌지가 결정된다고 한 바 있다. 이처럼 젠더 편향이 실재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들은 쌓이고 있으며, 연구 대상 진단명도 발달장애7), 식이장애8), 우울장애9), 성격장애 등 다양해졌다.

현재까지의 관련 연구 동향

필자도 체계적 문헌 고찰을 시도해 본 바 있다. 학술지에 한국어 또는 영어로 출판된 1980년부터 2021년 3월까지의 연구 논문에서, 종설이나 사례연구, 연구보고서, 단행본, 공개 강의 자료, 한국어와 영어 외의 언어로 쓰는 연구, 질적 연구, 학위논문, 단순히 성차를 드러내는데 치중한 연구들, 신체화 장애를 비롯한 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질환의 경우를 제외한 총 23편의 논문들을 검토해 보았다. 이중 젠더 편향이 확인된 연구는 모두 15편이었다. 성격장애를 다룬 11개의 연구 논문 중 7개에서는 젠더 편향이 확인되었고, 우울 및 불안장애를 다룬 논문 5개 중 4개에서 젠더 편향이 확인되었다. 식이장애를 다룬 두 개의 연구에서는 모두 젠더 편향이 확인되었으며, 자폐 스펙트럼에 관한 두 개의 연구에서는 모두 편향이 확인되지 않았다. 또한 연구 주제가 한정되어 있는데, 특히 대상 정신질환의 쏠림이 두드러진다. 23개의 연구 논문 중 11개가 성격장애에 관한 것이었는데, 상당 부분 성격장애가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른 해석의 여지가 크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소아나 청소년 환자를 진단하는 경우가 적다는 점(2/23)이 눈에 띈다. 하지만 여아의 ADHD는 남아보다 상대적으로 과잉행동형이 적어 눈에 띄지 않는다.10)

한편 23개 중 7개가 비네트(vignette) 연구이다. 이는 설문조사 연구에서 제시된 시나리오와 관련하여 응답자의 신념, 태도 또는 행동을 끌어내기 위해 상황이나 사람에 대한 체계적으로 다양화된 짧은 설명을 사용하는 것이다. 읽기 자료에 다른 정보들을 통제한 채 주인공의 성별만을 바꿔 실험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임상가의 성별 고정관념을 드러낼 수 있는 데 효과적이다. 그러나 시각적인 정보가 주어지지 않아 실제 임상 상황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간과하기 쉽다. 끝으로 국내에서는 종설 두 편과 단순히 성차를 보는 연구를 제외한 본격적인 젠더 편향에 관한 연구 논문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신체질환의 진단에 있어서 성별 편향을 다룬 연구 또한 드물었다.

개별 임상가들은 자신이 가진 젠더 편향을 비롯한 사회문화적 편견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며, 의학교육 과정 중 인문사회의학, 보건학적 소양을 갖추도록 관련 수업 시간을 할당해야 한다. 대안 교과서 편찬도 시도해 볼 만한 운동이다. 수련 과정 중 정신보건, 인문, 사회과학 인력과의 교류를 권장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아울러 임상 연구자들은 여러 평가도구를 번안하는 과정에서 젠더 편향이 생기기 쉬운 문항에 대한 보정을 시도해야 한다.

1)  Samulowitz, A., Gremyr, I., Eriksson, E., & Hensing, G. (2018). "Brave Men" and "Emotional Women": A Theory-Guided Literature Review on Gender Bias in Health Care and Gendered Norms towards Patients with Chronic Pain. Pain Res Manag, 2018, 6358624. doi:10.1155/2018/6358624

2)  Nguyen, H. L., Saczynski, J. S., Gore, J. M., & Goldberg, R. J. (2010). Age and sex differences in duration of prehospital delay in patients with acute myocardial infarction: a systematic review. Circ Cardiovasc Qual Outcomes, 3(1), 82-92. doi:10.1161/CIRCOUTCOMES.109.884361

3)  Biddle, C., Fallavollita, J. A., Homish, G. G., & Orom, H. (2019). Gender bias in clinical decision making emerges when patients with coronary heart disease symptoms also have psychological symptoms. Heart Lung, 48(4), 331-338. doi:10.1016/j.hrtlng.2018.11.005

4)  Becker, D., & Lamb, S. (1994). Sex Bias in the Diagnosis of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an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rofessional psychology, research and practice, 25(1), 55-61. doi:10.1037/0735-7028.25.1.55

5)  Kaplan, M. (1983). A woman's view of DSM-III. The American psychologist, 38(7), 786-792. doi:10.1037/0003-066X.38.7.786

6)  Sprock, J. (1996). Abnormality Ratings of the DSM-III-R Personality Disorder Criteria for Males vs. Females. J Nerv Ment Dis, 184(5), 314-316. doi:10.1097/00005053-199605000-00008

7)  Polyak, A., Rosenfeld, J. A., & Girirajan, S. (2015). An assessment of sex bias in neurodevelopmental disorders. Genome Med, 7, 94. doi:10.1186/s13073-015-0216-5

8)  Gallagher, K. A., Sonneville, K. R., Hazzard, V. M., Carson, T. L., & Needham, B. L. (2021). Evaluating gender bias in an eating disorder risk assessment questionnaire for athletes. Eat Disord, 29(1), 29-41. doi:10.1080/10640266.2019.1613846

9)  Norman, J. (2004). Gender Bias in the Diagnosis and Treatment of Depression. International Journal of Mental Health, 33(2), 32-43. doi:10.1080/00207411.2004.11043365

10) Ghosh, E., Nilsson, K. W., & Isaksson, J. (2019). Own‐gender bias in school staff's recognition of children with ADHD. Acta Paediatr, 108(6), 1165-1166. doi:10.1111/apa.14738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여진 님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여성노동자건강권팀 회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 일터 10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여성_건강, #정신_건강, #성차, #과학, #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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