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철수에게 자유를>의 한 장면.

영화 <철수에게 자유를>의 한 장면. ⓒ 커넥티드 픽쳐스


이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한복 입은 노인들도, 젊은 청년들도, 히피들도 한마음이 됐다. 1973년 6월, 이철수라는 재미동포가 차이나타운에서 발생한 총격 살인사건 용의자가 됐고, 무려 10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그의 투옥생활은 미국 사회에 만연한 소수자 및 아시안 혐오의 결과물이었고, 이윽고 그는 아시안 인권 운동의 아이콘처럼 자리하게 된다.
 
다큐멘터리 영화 <철수에게 자유를>은 올 1월 선댄스에 초청된 이후 세계 영화제에서 주목받고 있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에 초청된 해당 작품의 하줄리, 이성민 감독을 영화제 기간 중 만났다. 한국에서의 첫 상영에 두 사람 모두 감회가 남달랐다. 두 사람은 "선댄스영화제는 코로나19로 온라인 진행됐는데, 이렇게 관객을 만난다는 것 특히 한국에서 상영되는 건 큰 의미"라며 "과거 한국 사람의 유산을 지금의 젊은 관객분들이 본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라 표현했다.
 
십시일반의 힘
 

'Free Chol Soo Lee' 운동은 당시 한국에서도 반향이 컸다. 성금이 모이기도 했고, 이철수씨를 소재로 한 라디오 드라마가 제작되기도 했다. 영화는 이런 공개된 자료와 함께 당시 구명 운동에 참여했던 교포들, 변호사와 아시아 각국의 시민들이 개인적으로 보관하던 자료까지 더해지며 만들어졌다고 한다.
 
"사실 이성민 감독님과 전 이철수님을 단 한 번밖에 만나지 못했다. 그것도 아주 간략한 만남이었다. 2013년, 즉 이철수님이 사망하기 1년 전이었고 그때만 해도 그를 다룬 영화를 만들겠다 생각하지 못했다. 그 생각은 이철수님 장례식장에 갔을 때 떠오른 것이었다. 가족과 지인, 많은 활동가분들이 거기에 오셨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당시 전 기자였다. 활동가분들과 얘기해보니 그들은 인생의 6년을 이철수를 위해 보냈음에도 더 돕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더라. 오히려 철수님에게 받은 게 더 많다고 생각하고 계셨다. 그의 영향으로 법조계에 뛰어든 사람도 많았고,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장례식에서 (이철수 구명 운동에 앞장선) 이경원 변호사님이 분노를 터뜨렸다. 이 중대한 사건이 잊히고 있고, 대학생들은 그 사건을 배우지도 않고 있다는 이유였다." (하줄리 감독)
 
 
 다큐멘터리 영화 <철수에게 자유를>의 하줄리 감독.

다큐멘터리 영화 <철수에게 자유를>의 하줄리 감독. ⓒ 커넥티드 픽쳐스


미국 내 가장 역사가 오래된 아시안아메리칸 잡지 <코레암 저널> 기자로 활동하던 하줄리 감독, <뉴욕타임즈> <알자지라> 등에 영상을 제공하던 저널리스트 이성민 감독이 의기투합한 것도 잊혀가는 이철수의 의미를 간직하기 위함이었다.
 
영화엔 당시 사건에 최초로 의문을 품고 온몸을 던진 이경원 기자를 비롯해, 그의 절친한 친구와 동료들의 다양한 증언이 감각적인 화면과 노래와 함께 담겨있다. 약 6년에 걸쳐 만들어진 이 영화를 두고 이성민 감독은 "이철수님이 평안하게 잠들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에 답답함이 있었다"며 "그가 극복해야 했던 여러 어려움들, 어릴 때부터 갖게 된 악몽과 두려움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자는 게 목적이었다"고 연출 의의를 설명했다.
 
진정한 이철수 정신
 
교도소를 나온 뒤 이철수의 삶은 크게 나아지진 않았다. 오히려 수감 생활 중 품게 된 괴로움, 사람들이 자신에게 건 과도한 기대, 생활고 등으로 내면은 무너져 있었다.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 기대에 부응하고자 몇몇 직업을 갖고 성실히 살고자 했지만, 결국 마약에 중독됐고 1990년 마약류 소지로 1년 6개월을 복역하게 된다. 이후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2014년 결국 사망한다. 영화엔 이런 극적인 이철수의 삶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이 제시된다.
 
하줄리 감독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점은 만약, 이철수라면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뭘 알고 싶어할까라는 물음이었다"고 운을 뗐다. 실제로 교도소 재소 경험이 있는 세바스찬 윤이 이철수 시점의 내레이션을 맡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이철수가 남긴 여러 편지와 글이 어떤 상태의 감정인지 갈피를 못 잡을 때 세바스찬 윤이 잡아주곤 했다"며 하 감독은 "우울감과 고립감, 외로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그 덕에 철수님이 가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세바스찬 또한 소명의식이 있는 것처럼 최선을 다해주셨다"고 전했다.
  
 영화 <철수에게 자유를>의 이성민 감독.

영화 <철수에게 자유를>의 이성민 감독. ⓒ 커넥티드 픽쳐스


 물론 잡음이 아주 없던 건 아니다. 아시안 커뮤니티 활약과 이철수 사건에 영감을 얻은 미국 영화 <진정한 신뢰자>(True Believer)가 나오기도 했는데 이 작품은 일종의 '화이트 워싱'(동양인이나 흑인의 활약상 등을 무리하게 백인으로 바꿔 설정하는 행위)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애초에 그 영화는 상영 당시에도 좋은 평가를 못 받았다. 심지어 그 영화엔 제임스 우드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 유명 배우가 출연한다. 우리 공동체 안에선 그 영화로 인해 화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실제론 아시안이 변호사 비용도 내고, 구호활동을 했는데 미디어에서 재현하는 건 그 반대였다. 그 영화 덕에 아시안 동포들이 미디어에서 어떤 역할을 찾을 것인지 논의를 시작해볼 수 있었다." (이성민 감독)

 
최근 <기생충> <오징어 게임>, 나아가 <미나리> 등 한국 콘텐츠와 한국계 이민자 창작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며 미국 내 한인 사회 위상이나 아시안에 대한 시선이 많이 나아졌다 여기기 십상이지만, 두 감독은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하줄리 감독은 관객과 대화 행사 중에도 본인의 부모님이 여전히 길에 나가길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기도 했다.
 
"한국, 교포 콘텐츠가 좋은 평을 받는 건 사실이지만, 아시안계 미국인들이 거리에서 받는 물리적 공격을 막진 못한다. 이민자에 대한 인식이 미국 내에 얼마나 뿌리 깊은지 그런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시안 이민자 또한 시민이고, 권리가 있다는 걸 인지하는 게 어려운 게 사실이다. 심지어 아시안 이민자 사이에서도 역사가 있다는 걸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서 그런 경향이 더 강하다." (이성민 감독)
 
"그런 폭력에 무기력증을 느낀다. 부디 이 영화로 사람들이 서로 격려하고, 영감을 많이 받았으면 한다. 결국 통합이 중요하다. 그때 이철수 구명 운동은 전례 없는 사회적 운동이었다. 세 세대가 함께 모였고, 정치적 색깔과 가치관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했다. 교회 다니는 할머니들이 진보적 대학생들과 같이 거리 시위를 했었거든. 그래서 불가능은 없다고 말하고 싶다. 두 건의 살인혐의를 벗어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미국 형사 제도를 이해하는 분은 아실 것이다.
 
서로 결이 안 맞아 보이는 그룹도 힘을 합칠 수 있다는 그런 희망을 주고 싶다. 사실 이철수님이 모범 시민은 아니었다. 굉장히 빈곤했고, 전과도 있었다. 그럼에도 인류애와 박애를 기반으로 그 또한 사랑받아 마땅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 모든 사람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하줄리 감독)

 
교도소를 벗어난 이철수씨는 진정한 자유를 얻었을까. 이 영화를 봤다면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 두 감독은 이런 물음을 안고 있었다. 더불어 이 영화를 보게 될 예비 관객 또한 이철수를 바라보는 어떤 편견 어린 시선에서의 자유를 경험하길 기대하고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에서 <철수에게 자유를> 첫 상영이 있던 9일 해운대 센텀시티 CGV 상영관 내 모습.

부산국제영화에서 <철수에게 자유를> 첫 상영이 있던 9일 해운대 센텀시티 CGV 상영관 내 모습. ⓒ 커넥티드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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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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