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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이 8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비정규직 이제그만, 원청 사용자성 인정과 손배 철회 촉구 행진에 참여하고 있다.
 이상규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이 8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비정규직 이제그만, 원청 사용자성 인정과 손배 철회 촉구 행진에 참여하고 있다.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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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어떻게 메고가? 극기 훈련도 아니고."

몸보다 큰 빨간 공 위에 새겨진 흰 글씨. '손배 가압' '노조 탄압' '산업 재해' '일터의 죽음'. 대한민국 비정규직들이 노동 현장에서 겪고 있는 현실이 가득 적혀 있었다.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하청노조) 부지회장은 노조원이 묻는 질문에 쇠사슬 모양의 끈을 어깨에 걸며 "할만 한데요. 옷만 좀 더러워진다 뿐이지"하고 웃었다. 8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서울 시내에서 진행된 '비정규직 이제그만, 원청 사용자성 인정과 손배 철회 촉구 행진' 현장에서다. 

유 부지회장은 하청노조 인정과 임금인상 등을 내걸고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다른 노조간부 4명과 함께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약 473억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맞은 바 있다. 유 부지회장 옆에는 역시 같은 족쇄 모형을 어깨에 맨 이상규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 지회장이 섰다. 이 지부장은 현대제철의 불법 파견 은폐를 이유로 시작한 전면 파업과 농성 투쟁 이후, 사측에서 제기한 약 246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다.

"배 만들란 사람한테 돈달라하니 불법이라 하고, 파업하니 불법이란다"
 
유최안 대우조선 거제·통영·고성 하청지회 부지회장이 8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비정규직 이제그만, 원청 사용자성 인정과 손배 철회 촉구 행진에 참여하고 있다.
 유최안 대우조선 거제·통영·고성 하청지회 부지회장이 8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비정규직 이제그만, 원청 사용자성 인정과 손배 철회 촉구 행진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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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이 8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비정규직 이제그만, 원청 사용자성 인정과 손배 철회 촉구 행진에 참여하고 있다.
 이상규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이 8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비정규직 이제그만, 원청 사용자성 인정과 손배 철회 촉구 행진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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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작일 뿐인데 마치 세상이 난리날 것처럼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은 제쳐두고, 자기들끼리 손배 가압류를 논의하고 있다."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돼 복직 투쟁을 이어오고 있는 차헌호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지회장은 정치권을 달구고 있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이야기를 꺼냈다. 노동자들의 쟁의 행위를 불법으로 낙인찍고, 손해배상으로 압박하기 전에 쟁의의 '원인'을 먼저 들여다 봐달라는 요청이었다. 

유최안 부지회장은 "일 시킬 때는 언제고, 배 만들라고 한 사람한테 돈 달라고 하면 불법이라고 한다"면서 "도저히 혼자서는 못 죽겠고, 회사를 잡고 흔들 수밖에 없는데 하청을 앞세워 우롱하는 짓거리만 반복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돈 문제 앞에선 책임을 회피하면서, 쟁의를 시작하면 불법을 먼저 이야기한다는 지적이었다. 그는 "이대로라면 우리는 불법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멀쩡한 사람이 불법 때문에 멀쩡한 인생을 못 사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요구했다.

노동자성 인정 투쟁을 하고 있는 김미례 학습지노조 구몬지부장은 "비정규직 문제는 더 이상 우리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 지부장은 "우리 사회에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문제가 난무한다면, 우리 자녀들도 당면할 수밖에 없는 일이 된다"면서 "어떤 노동이든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같은 일을 하고도 다른 대접을 받는 사회가 어떻게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안경애 국민건강보험공단콜센터지부 부지회장은 약속된 정규직 전환 대신, 구조조정 위기에 처한 상황을 언급했다. 안 부지회장은 "'정규직 전환하라'하니까 노동자를 해고하는 구조조정안을 들고왔다"면서 "(회사는) 공공기관 구조조정을 말하는 윤석열 정부 뒤에 숨었다. 긴 터널에 들어온 것만 같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는 SPC를 상대로 노조탄압 중단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임종린 파리바게트 지회장도 함께 행진에 참여했다.

"차별 굴레 벗으려 했더니 473억 손배 족쇄"
 
유최안 대우조선 거제·통영·고성 하청지회 부지회장, 이상규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지회장, 김미례 학습지노조 구몬지부 지부장, 임종린 파리바게트지회 지회장, 안경애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부지회장이 8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비정규직 이제그만, 원청 사용자성 인정과 손배 철회 촉구 행진 참여에 앞서, 각각 비정규직차별·산업재해·노조탄압·노동자성 불인정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처한 현실을 새겨넣은 상징물을 매고 행진 준비에 나서고 있다.
 유최안 대우조선 거제·통영·고성 하청지회 부지회장, 이상규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지회장, 김미례 학습지노조 구몬지부 지부장, 임종린 파리바게트지회 지회장, 안경애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부지회장이 8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비정규직 이제그만, 원청 사용자성 인정과 손배 철회 촉구 행진 참여에 앞서, 각각 비정규직차별·산업재해·노조탄압·노동자성 불인정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처한 현실을 새겨넣은 상징물을 매고 행진 준비에 나서고 있다.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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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법 2·3조 개정 공동집행위원장인 이용우 변호사는 정부와 여당에서 노란봉투법 입법을 대상으로 제기하고 있는 '불법 조장 법안' 프레임에 정면 반박했다. 실제 사용자인 원청의 책임은 극도로 제한하면서, 헌법에 보장된 노동기본권을 제약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변호사는 "파업 한 번 하려면 낙타가 바늘을 통과하기 보다 어렵다. 이렇게하면 걸리고, 저렇게 하면 또 걸린다"면서 "정리해고와 구조조정 반대 등 모든 파업이 가능하도록 노동쟁의 법안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불법 파업 조장법이 아닌, 진짜 사장 책임법이다"라면서 빈 주먹을 들어보였다. 이 변호사는 "이 주먹 안에는 지금 아무 것도 없다. 투쟁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없다. 싸우는 사람들과 함께 투쟁해서 반드시 노조법 2조와 3조가 개정되도록 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 부지회장과 함께 손배 소송을 진행 중인 김형수 지회장은 "지금 광화문 광장에선 아름다운 한복을 입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고 입을 뗐다. 그는 "지금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은 어떤가. 한복 만큼 아름답나. 등에 이렇게 메고 있는 차별의 굴레 속에 살고있지 않나. 그 굴레를 벗어던지려 하니, 473억이라는 손배 가압류의 굴레가 다시 왔다. 그러나 절대로 무릎 꿇지 않겠다. 굴레를 걷어내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 비정규직들이 함께 만들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행진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시 마포구 한국경영자총협회 건물부터 서울시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건물까지 약 5km 거리를 행진하며 메고 온 '족쇄'를 찢는 것으로 종료됐다.  
 
▲ "노조할 권리 막는 족쇄 부수기" 유최안 대우조선 거제·통영·고성 하청지회 부지회장, 이상규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지회장, 김미례 학습지노조 구몬지부 지부장, 임종린 파리바게트지회 지회장, 안경애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부지회장이 8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비정규직 이제그만, 원청 사용자성 인정과 손배 철회 촉구 행진을 마무리하며 각각 비정규직차별·산업재해·노조탄압·노동자성 불인정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처한 현실을 새겨넣은 '족쇄' 상징물을 끊어내고 있다.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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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 판결에도 12년 째 하청 뒤에 숨는 원청... 정부·국회 뭐했나" http://omn.kr/2023g
- "인력난이라면서... 대우조선 해고와 손배 5백억에 환멸" http://omn.kr/20ekd

태그:#노란봉투법, #노조할권리, #파업할권리, #노동조합,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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