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군산의 원도심과 근대 역사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문화활동 전개
▲ 202210문화공유의달 이력 군산의 원도심과 근대 역사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문화활동 전개
ⓒ 박향숙

관련사진보기


작년 말 군산은 예비문화도시로 선정되었다. 27개 읍면동의 시민들이 군산이 가진 문화적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였다. 군산시는 문화도시 조성을 위해 지원 조례를 만들고 다양한 시스템을 가동시켰다. 2022년 문화도시 지정을 위해 군산시의 행정협의체와 여러 지원조직단체(대학·기관)가 함께 문화도시 지원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 속에 군산문화도시센터가 있다.

우연히도 올해 말랭이 마을 입주작가로 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군산시가 지향하는 문화도시로의 행로에 동행자가 되었다. 예비문화도시 시범사업지역에 신흥동 말랭이마을도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산 말랭이에 책방 하나 열어서 오고가는 사람들과 인연이나 쌓을까 하는 사심이었는데, 어느 순간 공공인이 되어 마을을 대표하고 문화도시 부분집합의 일원이 되었다. 매달 여는 '골목길 동네잔치', 군산시의 대표행사인 '야행', '군산시간여행축제'를 함께 하고 있다.

부드럽고 여릿한 새싹들이 뿌려졌던 봄과 무성한 초록잎들이 펼치던 격동의 여름을 지나니 가을이 왔다. 너도나도 수고로운 열매를 자랑하는 가을의 품자리는 넉넉하고 풍요롭다. 높고 푸른 하늘, 바람과 구름, 황금들판의 나락들과 농부들의 땀, 신흥동을 오고가는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몸짓. 보이는 모습마다 속이 꽉찬 가을열매 같다. 이 삶터에서 군산문화도시센터가 펼치는 '202210 문화공유의달'의 시월은 군산이 문화도시라는 결실을 맺을 것 같아 반가웠다.

10월 첫날 '문화거리 영동'프로젝트를 시작으로 5일, 말랭이마을인 신흥동을 모델로 한 '우리동네 아카이브', 12일, 신흥동 이야기 마당에서 펼칠 '2022 문화공유도시 군산', 31일, '군산의 시선' 출판기념과 작가와의 대화에 이르기까지 내가 속한 말랭이에서만도 추수할 문화열매들은 가득했다. 햇살 한 줄기 손에 쥐고 사드락 사드락 길을 나섰다.

정겨운 문화열매들 
 
근대건축물에서 신흥동와 옥산면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
▲ 우리동네 아카이브 현장 근대건축물에서 신흥동와 옥산면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
ⓒ 박향숙

관련사진보기


군산의 오래된 마을을 대표하는 신흥동과 옥산면 사람들의 삶과 활동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한 '우리동네 아카이브'(아래 '우아')를 찾았다. 필자가 살았던 군산동쪽의 째보선창일대와 지금살고 있는 서쪽의 신흥동일대는 한 몸에서 뻗어나간 두 가지처럼 그 살이 같다. 내가 살던 곳은 몇 년 전 고가도로에 묻히면서 이제는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유독 이곳 신흥동에 애착이 머무는지도 모른다.

군산의 대표적인 근대건축물인 (구)남조선건기사옥에 설치한 '우아'는 과거와 현재, 해체와 병합, 개별과 공동체, 낯섬과 익숙함를 연상시키는 공간이었다. 입구에 설치된 노란색 둥근알들은 부활을, 커다란 놋쇠 밥그릇에 담긴 노란색 밥알은 빈곤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로 들려주었던 엄마 웃음 같았다. 천장마다 벽마다 지난 세월의 낡은 더께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설치공간에서 정겨운 문화열매들을 만났다.

"갯벌에 물이 차고 빠지듯 사람이 들고 나는 군산에 익숙해졌다. 대세의 흐름과 중심으로부터 멀어져 위축되고, 보여주기에 급급한 관광에 매달려 우리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나아질 기미가 없는 지방도시의 상실감과 불안감은 현재와 이상 사이의 공백에 기인함을 알게 된다. 이를 채울 수 있는 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총체를 일컫는 광의의 문화. 이 믿음을 갖고 군산의 문화도시사업에 뛰어들었다.

작년에 군산은 문화예비도시로 선정되어 올 한해 문화적 실험과 도전을 실천하고 있다. 10월 '문화공유의 달' 전시와 모임은 크게 네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동네문화카페의 '네트워킹데이'모임과 동네문화추적단 활동 결과를 '2022 문화공유도시'에 모았다. 빈 점포 늘어선 영동의 전환을 바라는 '문화거리, 영동'프로젝트로 군산미술상 수상작가 3인의 작품이 새 기운을 불어넣고, 신흥동과 옥산면에서 이루어진 아카이빙은 사진과 영상을 통해 군산사람들과 만난다."


동행한 문화도시센터장(박성신 군산대교수)의 말이다.

신흥동의 소재 속에 필자의 책방과 말랭이 입주작가들의 흔적이 있었다. 어느새 나도 마을의 구성원이 되어 떼어내면 서러운 한 조각이 되어 함께 굴러간다. 말랭이마을의 문화를 추적하는 길 위에서 그들의 삶의 노래소리를 듣고 그 장단에 맞춰 웃음꽃을 피운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사람들의 조명을 받는 공간에 서 있으니 쑥스럽기만 했다.

우리네 삶을 담은 '우리동네 아카이브' 
 
공생공락과 가치 나눔의 공간에 책방이 있어서 좋았다
▲ 책방 <봄날의 산책> 영상 공생공락과 가치 나눔의 공간에 책방이 있어서 좋았다
ⓒ 박향숙

관련사진보기

 
신흥동의 과거일상을 흑백의 무채색으로 담아준 사진이 정겹다
▲ 유기종 사진작가의 신흥동 아카이브 신흥동의 과거일상을 흑백의 무채색으로 담아준 사진이 정겹다
ⓒ 박향숙

관련사진보기


유기종 사진작가는 신흥동의 과거를 사진으로 불러모았다. 흑백사진이 가져다주는 고요함과 무채색은 과거를 평지로 보고 있던 나를 출렁거리게 했다. 내가 살던 중동 골목길 모퉁이에 있던 이발관 아저씨, 동네 터줏대감 담배가게 할아버지, 합판공장 다니던 동네친구 아버지, 생선 다래 들척이며 우물가를 차지했던 옆집 친구 어머니를 소환시켰다. 신흥동의 과거 모습은 모두 같은 공간, 같은 사람 같았다.

"무수한 영욕의 시간을 버틴 후 비로소 지친 표정을 지우고 과거의 시간을, 과거의 삶에 관해 말해주는 담담한 이야기꾼이 되었다. 더러 틀린 말일 수도 더러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시간 앞에서 늘 약자인 우리에게 오래된 것도 즐거울 수 있다는 이 말이 가끔 위로가 되기도 한다." - 유기종 사진작가, 신흥동 아카이브

김선재 사진작가는 옥산면의 현재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일상의 작은 변화가 쌓여 새로운 층을 이루고 또 다음을 위한 밑받침이 된다. 자연이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켜켜이 쌓인 층들은 각기 다른 색으로 빛나기도 하고, 함께하여 조화를 이루기도 한다. 옥산면은 흙과 물과 바람, 곡식 그리고 사람들의 어울림이 소박하게 또 하나의 층을 이룬다. 태어난 곳이지만 오랜 시간 멀리 떠나 있었기에 군산은 낯선 곳일 수밖에 없었는데 마주하는 자연과 사람들로 어느덧 평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더욱 특별한 것은 바로 사람이다. 옥산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와 색으로 모두가 조화로운 일상의 궤적을 그린다." - 김선재 사진작가
 
옥산면 사람들의 자연햇살을 닮은 미소가 따뜻하다
▲ 김선재 사진작가의 아카이브 옥산면 사람들의 자연햇살을 닮은 미소가 따뜻하다
ⓒ 박향숙

관련사진보기


문화도시사업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빼면 우리동네 아카이브의 모습은 그냥 우리의 삶이다. 우리 공동체의 삶을 이끌어온 일상에 '기록하는 문화'라는 한 켜를 올린 것이다. 이 또한 혼자 할 수 없는 일이기에 함께 한 이들은 서로 애틋하고 고맙기만 하다.

오늘 아침 책방편지에 엄재국 시인의 <꽃밥>을 띄워드렸다. 군산에 문화도시의 받침대가 세워지도록 수고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을의 달콤한 열매가 선물로 오면 좋겠다. 일상이 문화의 꽃이 되고 그 꽃으로 맛난 밥을 만드는 동네 할머니 옆에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꽃밥 - 엄재국

꽃을 피워 밥을 합니다
아궁이에 불 지피는 할머니
마른 나무에 목단, 작약이 핍니다
부지깽이에 할머니 눈 속에 홍매화 복사꽃 피었다 집니다
어느 마른 몸들이 밀어내는 힘이 저리도 뜨거울까요
만개한 꽃잎에 밥이 끓습니다
밥물이 넘쳐 또 이팝꽃 핍니다
안개꽃 자욱한 세상, 밥이 꽃을 피웁니다

태그:#문화공유, #문화도시, #꽃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