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2회 영화제 당시 남포동 야외무대를 찾은 양조위(붉은색 원안)

1997년 2회 영화제 당시 남포동 야외무대를 찾은 양조위(붉은색 원안) ⓒ 성하훈

 
1997년 2회 부산영화제에서 가장 관심을 끈 배우는 홍콩 배우 양조위였다. 영화 <해피 투게더>로 부산을 찾은 양조위의 남포동 야외무대 인사에 압사 사고의 위험이 생겼을 만큼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2000년 부산영화제가 야심차게 내세운 온라인 예매 시스템을 먹통으로 만든 것도 양조위의 <화양연화>였다. 집에서 편하게 예매하라는 부산영화제의 호언은 공수표가 됐고, 표를 구하지 못한 관객들의 원성이 심해지자 부랴부랴 추가로 500장을 풀어 무마시켰다.

2004년 부산영화제 개막작 < 2046 > 역시 양조위가 주연을 맡은 영화로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순식간에 매진되며, 화제작으로 등극했다. 이렇듯 떴다 하면 구름 관객을 몰고 다니는 양조위가 27회 부산영화제를 찾는다.
 
매해 아시아영화 산업과 문화 발전에 있어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아시아영화인 또는 단체에게 수여하는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배우 양조위의 공헌을 부산영화제가 높이 평가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양조위의 화양연화'라는 이름의 특별기획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양조위 배우가 선정한 영화 6편을 상영하는 것이다. < 2046 > (리마스터링), <동성서취>, <무간도>, <암화>, <해피 투게더>, <화양연화> (리마스터링) 등이 상영되고 이 중 두 편은 상영 이후 양조위와 관객들의 만남이 계획돼 있다. 
 
양조위는 2014년 홍콩 우산혁명 당시 시위대를 지지했고 이후 TV 출연을 금지당하는 등 정치적 탄압을 받기도 했다. 그동안 부산영화제 측은 중국의 구속력이 강해지면서 표현의 자유가 쇠퇴한 홍콩에 안타까움을 표해왔다. 지난해 폐막작으로 <매염방>을 선정해 옛 홍콩을 추억한 것도 표현의 일환이었다. 올해는 배우 양조위를 통해 그 흐름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공교롭게도 2014년은 부산영화제가 <다이빙벨> 상영으로 정치적 탄압을 받던 시기였다. 표현의 자유가 위협당하던 순간 국제적인 연대를 통해 이를 극복해낸 부산영화제가 아시아 국가들의 창작 자유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4년 만에 완성된 다큐멘터리 <지석>
 
 7일 오후 온라인으로 개최된 27회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

7일 오후 온라인으로 개최된 27회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 ⓒ 부산영화제 제공

  
 다큐멘터리 <지석>

다큐멘터리 <지석> ⓒ 부산영화제 제공

 
7일 오후 온라인 기자회견을 통해 개·폐막작과 주요 상영작을 발표한 올해 부산영화제의 특징은 정상적인 개최에 맞춰져 있다.

코로나19 이후 주요 영화제들이 온라인으로 개최되는 과정에서도 꿋꿋하게 정상 극장 개최를 유지했던 부산영화제가 3년 만에 사회적 거리두기 없이 온전한 정상 개최로 돌아온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지난 2년 동안 중단됐던 아시아영화펀드, 아시아영화아카데미, 아시아영화인들 교류의 장인 플랫폼부산도 다시 열린다.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 열리는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sian Contents & Film Market, ACFM) 역시 3년 만에 정상 개최하면서 기존의 E-IP마켓(Entertainment Intellectual Property Market)을 확장한 부산스토리마켓을 출범시킨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오늘을 만들었던 고(故)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제작된 다큐멘터리 <지석>이 첫선을 보이는 것도 특별하다. 2018년 제작을 발표한 이후 4년 만에 완성됐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김영조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김지석 프로그래머가 이루고자 했던 꿈과 그의 꿈을 응원해던 영화인들의 증언이 담겨 있다. 
 
기존 '뉴커런츠'에 이어 새로운 경쟁 섹션으로 '지석'이 신설됐다. 기존 김지석 프로그래머를 기리기 위해 만들었던 지석상이 확대된 것이다. '뉴커런츠'가 아시아 감독의 첫 작품 또는 두 번째 작품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면, '지석'은 세 편 이상을 만든 아시아 감독의 신작 가운데 엄선된 영화를 선정한다. 성장하는 아시아 감독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장이 열린 것이다.
 
지난해 아시아 최초로 드라마 시리즈 섹션을 신설해 화제가 됐던 '온 스크린'은 올해 기존 3편에서 대폭 늘어난 9편의 드라마 시리즈를 선보인다. 라스 폰 트리에의 <킹덤 엑소더스>를 비롯 미이케 타카시, 키모 스탐보엘, 이준익, 정지우, 유수민, 이호재, 노덕, 전우성 등과 같은 실력파 감독들의 흥미로운 작품이 소개된다.
 
전체적으로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새롭게 정비되거나 신설된 부분은 팬데믹 이후 계속 다져지면서 성장을 멈추지 않는 영화제의 모습을 엿보게 한다.
 
전쟁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영화
 
 27회 부산영화제 개막작 이란영화 <바람의 향기>

27회 부산영화제 개막작 이란영화 <바람의 향기> ⓒ 부산영화제 제공

 
전체 상영작은 71개국 243편으로 코로나19 이전 300편 안팎이었던 것과 비교해 다소 줄었다. 다만 커뮤니티비프 상영작이 111편으로 모두 합하면 354편이다.
 
개막작으로는 이란영화 <바람의 향기>가 선정됐다. 하디 모하게흐 감독은 2015년 <아야즈의 통곡>으로 뉴커런츠상을 수상했다. 8년 만에 네 번째 영화의 감독이자 직접 주연한 배우로 부산을 찾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폐막작으로는 일본영화 <한 남자>가 선정됐다. 2018년 요미우리문학상을 받은 히라노 게이치로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옮겼고, 2022 베니스국제영화제 오리종티 초청작으로 이시카와 케이 감독이 연출했다.
 
허문영 집행위원장은 개폐막작에 대해 "아시아영화의 미학이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라며 "부산영화제가 지지하고 사랑하는 가치와 일치한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주요 상영작은 올해 칸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 수상작 등이 대부분 포함됐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슬픔의 삼각형>,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루카스 돈트 감독의 <클로즈>, 각본상을 받은 타릭 살레 감독의 <보이 프롬 헤븐> 등 칸 수상작만 14편이 선보인다.
 
이밖에 미국 노아 바움백의 <화이트 노이즈>, 제임스 그레이의 <아마겟돈 타임>, 프랑스 알랭 기로디의 <노바디즈 히어로>, 클레르 드니의 <칼날의 양면>, 프랑수아 오종의 <피터 본 칸트>, 이탈리아 다리오 아르젠토의 <다크 글래시스>, 폴란드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의 < EO >, 이란 자파르 파나히의 <노 베어스>, 루마니아 크리스티안 문쥬의 < R.M.N. >, 멕시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바르도, 약간의 진실을 섞은 거짓된 연대기>, 필리핀 브리얀테 멘도사의 <만찬> 등이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에 숨진 리투아니아 다큐 감독 만타스 크베다라비시우스의 <프롤로고스>

우크라이나 전쟁 중에 숨진 리투아니아 다큐 감독 만타스 크베다라비시우스의 <프롤로고스> ⓒ 부산영화제 제공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감독의 작품도 주목된다. 지난 4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 공격으로 숨진 리투아니아 다큐 감독 만타스 크베다라비시우스의 <프롤로고스>가 초청됐고, 우크라이나 출신 감독 세르히 로즈니챠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독일 공습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파괴의 자연사>도 선보인다. 러시아 영화는 한 편이 초청됐는데,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페어리테일>이 상영될 예정이다.

러시아 영화 상영에 대해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는 "다른 국제영화제들과 러시아를 향한 대응과 관련한 공동전선을 펼치고 있다"라며 "다만 그 내용이 러시아 영화를 전혀 틀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닌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규모의 사절을 보낸다거나 국가에서 지원한 일종의 국책영화 등의 작품을 선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문영 집행위원장도 "지난 제75회 칸국제영화제도 러시아 영화 <차이콥스키의 아내>가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라며 "전쟁에 협력하는 감독들의 영화를 상영하지 않을 뿐, 예술성과 독립성을 작품 선정 기준으로 삼았다"라고 덧붙였다.
 
<그대가 조국> 커뮤니티비프 상영
 
 <그대가 조국>의 한 장면

<그대가 조국>의 한 장면 ⓒ 엣나인필름 제공

 
커뮤니티비프 역시 근래 주요 영화제에서 상영됐거나 화제를 모은 작품을 상영하는데, 조국 전 장관 임명을 둘러싼 갈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그대가 조국>이 눈에 띈다. 올해 개봉 다큐멘터리 영화 중 흥행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부산에서 제작진과 관객의 만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해 상당한 호평을 받은 동네방네비프는 올해 더욱 확대된다. 부산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와 관광명소를 발굴하여 도시 전체 16개 구·군에 스크린을 세우고 부산 전역 어디에서나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했다.
 
해운대와 남포동 중심의 영화제가 집 가까이서 즐기는 '생활밀착형 영화제'로 확장되는 것이다. 국내외 영화제 화제작 상영과 게스트와의 만남, 지역 예술인 공연 등 을 통해 지역 사회 주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다는 계획이다. 
 
한편, 27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는 10월 5일 개막해 14일까지 열흘간 개최된다.
부산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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