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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 파리바게뜨에서 일어난 일

SPC 파리바게뜨 투쟁은 임종린 파리바게뜨 지회장의 노동 상담으로 2017년부터 시작됐다. 파리바게뜨 매장 5천여 명 제빵기사들의 불법 파견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고용노동부는 파리바게뜨가 제빵기사를 불법파견으로 사용한 것과 연장근로수당 미지급을 확인했다. 연장근로수당은 무려 110억 1700만 원에 달했다. 고용노동부는 제빵기사들의 직접고용과 미지급 수당을 지급하도록 시정지시를 하였고 이를 시정하지 않을 시 과태료 및 사법 처리하겠다는 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했다.

SPC 파리바게뜨는 시정지시 취소 행정소송과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으로 대응하였으나 재판 결과는 각하되었다. 그 전후로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가 설립되고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문제 해결과 청년 노동자 노동권 보장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대책위'가 출범했다. 회사와 양대 노총간의 협상이 두 차례 진행되었지만 최종 결렬되었다. 하지만 2018년 1월 11일 시민대책위 중재로 회사와 화섬식품노조가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노사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사회적 합의의 의미

올해 7월 12일 열린 '파리바게뜨 여성 인권 노동 개선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나선 서울노동권익센터 이남신 소장은 사회적 합의의 의미를 6가지로 보았다.

첫 번째는 민간 부문의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시금석이 되었다는 평가다. 당시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공공 부문의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민간 부문으로 확장될 수 있는 교두보가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제빵업계 삼성이라고 불리는 SPC 파리바게뜨였기 때문에 업계 전체에 끼친 영향이 컸다.

두 번째는 불법파견 문제를 사회 쟁점화시키고 대기업에 직접고용에 대한 책임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파리바게뜨 제빵기사와 같이 상시 지속 업무이며 업무 지시 등을 받는 노동자는 의사결정권을 가진 실질사용자가 직접 고용해야 함을 명확히 했다.

세 번째는 제빵업계와 같은 대기업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대안을 마련했다.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 전환이었지만 민간 부문의 정규직화 사례로서 의미가 있었다.

네 번째는 청년 노동자 특히 여성 청년 노동자의 노동권 신장에 디딤돌이 되었다. 파리바게뜨 제빵사 대부분이 여성 청년 노동자다. 제빵사의 유산율이 다른 직종에 비해 두 배에 달했다는 것을 보았을 때 합의 내용의 의미가 확장된다.

다섯 번째는 파리바게뜨 노동자와 가맹주가 연대하여 사회적 합의를 이룬 것이다. 노동자와 점주는 대결 구도로 이어져 을들의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은데 연대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노·사·가맹점주·정당·시민단체 다섯 단위가 문제를 조율하고 합의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열세에 몰릴 수밖에 없는 노동자와 연대하고 합의의 적정선을 찾고 이행하기 위해 여러 단위가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사회적 합의 이행 완료 항목은 두 개뿐

SPC는 지난 2021년 4월에는 이 '사회적 합의'를 3년 만에 이행 완료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이것이 '셀프 사회적 합의 이행 선언'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이미 그전부터 임종린 지회장은 SPC 파리바게뜨의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에 돌입한 바 있다.

임종린 지회장의 길어진 단식을 두고만 볼 수 없었기에 노동·인권·정당·종교·여성·청년 등의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을 결성했다. SPC 파리바게뜨가 주장하는 사회적 합의 이행을 검증하기 위해 '파리바게뜨 사회적 합의 이행 검증위원회'도 출범했다.

검증위원회는 세 차례에 걸친 기자회견과 토론회를 통해 SPC 파리바게뜨가 완료했다고 주장하는 사회적 합의에 대한 이행 여부를 밝혔다. [표1]은  검증위에서 발표한 사회적 합의 이행 검증 결과다.

 
'파리바게뜨 사회적 합의 이행 검증위원회'에서 발표한 사회적 합의 이행 검증 결과
 "파리바게뜨 사회적 합의 이행 검증위원회"에서 발표한 사회적 합의 이행 검증 결과
ⓒ 파리바게뜨 사회적 합의 이행 검증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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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합의서는 전체 11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제4항이 이질적이면서도 중요한 두 가지 세부 항목으로 나뉘어 있어서 검증위원회는 12개 항목의 이행 여부를 평가하였다. [표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행 완료 항목은 제1항과 제9항에 불과하다. 일부 이행된 항목은 제2항, 제6항, 제7항, 제10항으로 네 개뿐이다. 불이행 항목은 제3항, 제4항.가, 제4항.나, 제5항, 제8항, 제11항으로 검증 대상 12개 항목의 절반인 6개 항목에 달한다. 사회적 합의를 이행했다고 선언하기에는 너무나도 민망한 검증 결과이다.

상생·ESG 말하는 SPC그룹은 어디에?

올해 초 신년식에서 SPC그룹의 허경인 회장은 "고객과 시장의 기대를 뛰어넘는 경험을 제공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글로벌 100년 기업으로 성장합시다"라고 말했다. 5년 전 사회적 합의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으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그의 말이 시민에 대한 기만이 아닐 수 없다.

SPC 파리바게뜨의 사회적 합의는 앞서 언급했듯이 사회적으로 매우 유의미한 사건이다. 사회적 합의가 이행된다면 제빵 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과 사회적 합의 자체에 대한 유효성뿐만 아니라 SPC그룹이 기업의 기조로 삼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을 실현했다는 점에서 기업 이미지에 매우 득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사회적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제 곧 추석이 다가온다. 한 달에 네 번도 쉬지 못한 파리바게뜨 노동자가 추석에 편히 집에 갈 수 있을까? 그들의 노동권이 정상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시민들은 SPC 파리바게뜨가 사회적 합의 내용을 모두 이행하도록 계속 연대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이채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활동가가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9,10월호 '정책칼럼' 꼭지에도 실렸다.


태그:#파리바게뜨, #사회적 합의, #비정규직, #노동, #S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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