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산: 용의 출현>을 연출한 김한민 감독.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을 연출한 김한민 감독. ⓒ 롯데엔터테인먼트


 
팬데믹 시대를 관통하며 나름 치열할 것으로 보였던 여름 극장가에서 <한산: 용의 출현>(아래 <한산>)이 '유일하게' 손익분기점(600만 관객)을 넘기며 살아남았다. 관람 문화의 변화일까, 영화 산업의 지각 변동일까, 아니면 작품 자체의 문제일까. 그 누구도 속 시원히 단정할 순 없을 것이다. '300억 원' 이상의 자본이 투입된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받아든 부진한 성적표는 현재 한국영화 산업에 다양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한산>이 누적 700만 관객을 넘긴 직후인 2일 오후 서울 논현동 사무실에서 김한민 감독을 직접 만났다. 마침 <한산>이 한국영화 중 처음으로 OTT 플랫폼 쿠팡플레이 독점 공개를 결정, 29일부터 방영 중이었고 다른 영화들 또한 그 흐름을 쫓고 있다. 한국영화 역사상 최고 흥행 기록을 보유한 <명량>(1761만 명, 2014년 개봉) 이후 약 10년간 이순신 장군을 쫓아온 김한민 감독의 궤적을 짚어볼 필요도 있었다.
 
트릴로지(Trilogy, 3부작) 완성의 문앞에 서다
 
말 그대로 하나의 '주기'(Period)를 거친 결과물이다. <명량>과 <한산> 그리고 지금 후반 작업 중인 <노량: 죽음의 바다>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기에 감독에게 10년(decade) 넘게 한 인물을 관통하고 있는 심정부터 물었다. "정말 10년 주기가 맞다"던 김한민 감독은 "(세 영화는) 이순신 장군의 완성이라기보단 각 해전마다 다층적이었던 그의 모습을 제시하는 차원이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정말 복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명량> 이후 어떤 부담이 많았다기보단 각 해전의 특징, 본질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가령 명량해전은 통렬한 역전승의 개념, 절체절명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라면 한산해전은 처음부터 철두철미하게 준비해 전쟁 방향을 바꾸는 개념이었다. 심지어 원균까지도 전쟁에 참여시키는 지략이 돋보이지. 그래서 <명량>은 뜨거운 역전극이었고, <한산>은 유비무환 정신이 빛나는 자긍심의 기록으로 그리고자 했다. <노량>은 대미를 장식하는 영화로써 장엄한 레퀴엠(requiem) 같은 특징이 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 장군을 승리의 쾌감만 주는 존재로 비추어지지 않게 하고 싶었다"라고 강조했다. 그걸 방증하는 인물이 바로 <한산> 속 정보름(김향기)와 준사(김성규)이다. <명량>에선 단순히 언어장애가 있는 정씨(이정현)와 항복한 일본 장수 준사(오타니 료헤이)로 간단히 묘사됐는데, 이들의 입체감이 <한산>에서 비로소 완성된 셈이다. 특히 준사는 역사상 실존 인물로서 김한민 감독은 "항왜(항복한 일본인)라는 개념으로 메시지를 강조하려 했다"라고 말했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

▲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 ⓒ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

 
"정씨와 준사는 전쟁의 성격을 규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민초를 대변하는 게 정씨인데 영화 <봉오동 전투>(2019)를 보면 일본 소년병 한 명을 유해진이 데리고 다니잖나. 전쟁을 직접 목격하게끔. 정씨가 바로 전쟁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역할의 인물이다. 이순신 장군의 승리만 중요한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7년이라는 긴 시간을 조선이 어떻게 외국의 지원 없이 버티고 이겨냈는지를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 전쟁은 새로운 양상을 갖는다. 단순히 국가 간 싸움이 아닌 온 국민이 하나가 된 싸움으로써 중요한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것이다.
 
항왜 개념에서 가장 상징적인 인물은 김충선(일본 이름, 사야가)이다. 준사는 사실 이순신 장군의 정유일기(난중일기)에 잠깐 등장하거든. 원래 이름은 준샤이인데 한자 표기가 준사로 돼 있다. 구루지마 시신을 발견하고 이순신에게 알려 목을 치게 한 인물이다. 그 인물이 이순신과 함께 하며 항왜의 중요한 인물로 설정해 <노량>까지 끌고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항왜는 곧 전쟁의 성격을 정하는 데 중요한 개념이고, 이순신의 대의와 무도 정신과도 연결돼 있기에 준사라는 인물을 적극 활용했던 것 같다."

 
김한민 감독이 궁극적으로 주고 싶었던 메시지는 곧 전쟁을 일으킨 자, 침략한 자는 반드시 무너진다는 교훈이었다. "그게 바로 의 아닐까" 반문하며 김 감독은 "어떤 명분이라도 전쟁을 일으킨 자는 불의로 갈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도 비슷하다고 본다"라며 "일본이 일으킨 대동아 전쟁도 결국 패망의 길로 갔다. 이런 역사를 통해 왜 깨닫지 못하는지 모르겠다"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다.
 
"역사적 개연성이 핵심"
 
앞서 언급한 '항왜'가 이순신 3부작을 관통하는 키워드라면, 여러 역사적 사실을 직조하며 상상력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분명한 기준점 또한 필요했을 것이다. 역사적 왜곡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영화 외적으로 치열한 공부가 필수였음도 물론이다.

공개된 <명량>과 <한산>엔 감독과 스태프가 나름 치열하게 연구한 흔적이 보인다. 설계도가 남아 있지 않은 거북선의 구현, 임진왜란과 동시기에 일어난 육지전인 웅치 전투, 이치 전투를 영화적으로 연관시킨 게 대표 사례다. <선조실록>과 <정유일기>는 물론이고, <징비록> <이충무공전서> 등 감독이 참고한 자료의 범위를 물었다.
 
"반드시 봐야 할 자료가 있고, 운명적으로 만나는 자료가 있었다. 중요한 건 영화에 어떻게 반영하고, 집약할 것인가다. 전쟁의 성격을 규명하는 중심에 준사가 있고, 그걸 효과적으로 이끄는 게 바로 거북선이었다. 그래서 거북선을 어떻게 고증할 것인가가 중요했다. <한산>에 2층형, 3층형 거북선을 등장시켰는데 <이충무공전서-귀선도서>를 보면 거북선의 치수나 재질 등의 정보는 있는데 내부, 외부 모습은 없거든. 우리가 봐 온 거북선에서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전투에 맞는, 학익진 같은 진법과 돌격 전술-화포 전술에 연계될 수 있는 거북선을 디자인하려 했다.
 
역사적 개연성이 핵심이었다. 행주산성 전투를 살피면 권율의 육군과 이순신의 수군이 긴밀하게 내왕한 근거들이 있다. 육지전을 배제한 해전이 있을 수 없고, 해전을 배제한 육지전이 있을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돼서 명량해전을 치르기 직전에 진주에서 전라도 장흥까지 대장정을 가는데 그 과정에서 계속 육지전에 신경 쓰거든. 남원성 등에 척후병을 꾸준히 보내 해전을 준비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한산대첩 때 웅치 전투를 신경 안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전주성과 긴밀하게 교감을 분명히 했을 것이거든. 전쟁에서 당장 승리 못 해도, 어떻게든 장기전으로 끌고 가기 위해 전라도가 중요했다. 물자의 중심, 병창 기지였으니까 이순신 장군이 신경 안 쓸 수가 없었지. 그리고 한산대첩 이후 9월에 부산포해전 이후 과감하게 적의 아가리 앞인 거제도 앞에 전초 기지를 만든다. 영화 <한산>에서 이것까지 다 보여줄 순 없었고, (준비 중인) 드라마 <7년 전쟁>에서 이런 걸 담을 예정이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제작 현장 모습.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제작 현장 모습. ⓒ 롯데엔터테인먼트

 
김한민 감독은 왜군 묘사 방법 또한 이전 이순신 관련 영상 콘텐츠와 달라졌음을 짚었다. "<명량> 때 나름 이룩한 성과인데, 그전까진 왜적을 하나의 강력하고 통일된 적으로 규정했다면 우리 작품에서는 서로 야심도 있고, 내부적으로 갈등하는 식으로 묘사했다"라며 그는 "일본 전국시대를 공부하면 알게 되는 사실이다. 서로 치열하게 싸우던 일본 무사들이 갑자기 하나가 되어 조선을 친 게 아니라 정치적 계산이 맞아떨어져 잠시 힘을 합쳤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극장 지나 온라인으로... "두 번 개봉한다 생각"
 
<한산>이 이룬 기술적 성과도 주목할 만하다. <명량> 때 실제 바다 위에 배를 띄우며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뒤 이번 작품에선 강원도 평창 실내스케이트장 부지 2000평에 대형 크로마키를 깔고 CG(컴퓨터 그래픽)와 VFX(시각특수효과) 기술을 통해 전투 장면을 구현했다. 육지전은 전남 여수 세트장에서 소화했다고 한다.

한 척의 배도 띄우지 않고 블록버스터 요소를 갖춘 셈이다. 국내 영화 기술이 집약된 결과다. 김한민 감독은 "이젠 할리우드, 한국영화 구분 없이 감독이 어떤 콘셉트를 갖고 집중하는지가 중요해질 것"이라며 "<노량>에선 더욱 VFX와 CG 비중이 높아질 것"이라 귀띔했다.
 
"시각효과, CG 팀이 이젠 할리우드와 한국영화와 두루 연결돼 활동하기에 할리우드 작품인지 한국 작품인지 구분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에서도 이젠 이 기술을 활용한 제대로 된 재밌는 작품이 나와야 할 때다. 그리고 이 기술들이 작품이 끝나고 흩어지는 게 아니라 잘 관리되고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축적되는 방향으로 가면 좋겠다.
 
그래서 상업 기획 영화가 의미 있는 것 같다. 일종의 영화사적 성취랄까. <노량>은 전쟁 장면이 3분의 2에 달한다. 명나라까지 등장하니까 (<한산>의 10배 가량인) 400척의 판옥선, 조명 연합 수군을 조명할 예정이다. <명량>과 <한산>의 성취를 집중해 결과물을 낼 것이다. 이런 성취가 다른 작품에서도 적극 활용되길 바란다."

 
사실상 극장 상영이 마무리 되는 시점에 지금의 성적은 감독 입장에선 아쉬울 수는 있다. 업계에선 <범죄도시2>에 이은 또 하나의 천만 영화 탄생을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 여름 대작 영화에서 유일하게 손해를 보지 않은 작품에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한민 감독은 "(쿠팡플레이 공개로) 나름 두 번째 개봉을 맞이한다고 생각한다"며 상업영화의 OTT 독점 공개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현재 <한산> 이후 <비상선언> 또한 쿠팡플레이 독점 공개를 택했다. IPTV 전면 공개가 아닌 특정 플랫폼 독점 공개는 부가판권 시장의 중요한 변화를 상징하는 대목이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시장이 적극 협업하는 거라고 본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영화 개봉만이 답이 아니니까, 어쩔 수 없이 이렇게 가는 시대적 흐름이 있는 게 아닐까. 지금 극장 성적이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한산>의 (OTT 플랫폼 독점 공개) 선택은 영화 산업의 변곡점에 있음을 상징하는 것 같다. 상업영화가 투자받은 것 이상의 수익을 내야만 하는 의무가 있는 건 사실이니 말이다. 이젠 창작자들도 두 번 개봉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 같다. (극장 개봉을) 1차 개봉, (온라인 개봉을) 2차 개봉 개념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이런 콜라보 전략이 대세가 될 것 같다."
김한민 한산: 용의 출현 명량 이순신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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