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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기존'에 대한 부정 혹은 차별점을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만들어지고 있는 대기업 사무직 노동조합은 소위 '새로운' 노동조합이라 얘기되고 있다. 이러한 노동조합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에너지로, 왜 노동조합을 만들었을까. 노조를 통해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고,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는 8월 월례토론회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아, '새로운 세대의 고용노사관계, 제조업 사무직/MZ세대 신생노조들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의 발제와 함께 진행했다.

MZ세대 노조 아닌 제조업 사무직 노조

발제자는 발제 및 토론 전반에서 IT나 사무금융 등이 아닌, "제조업 사무직 노동조합"의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금융, 사무서비스, 공공부문 등 소위 '화이트칼라 노조'가 많이 생겼지만, 중간관리자의 역할도 하던 제조업 사무직 노동자들의 노조가 생긴 것은 최근이다. 이러한 독자적인 노조가,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배경을 한국 제조업의 동향에 대한 검토와 함께 살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발제자는 제조업 내부의 변화양상을 간단히 짚었다. 첫째, 자동화와 함께 생산기능의 비중이 줄면서 엔지니어, 사무직, 유지관리 업무가 중요해졌다. 국제제조노련이 낸 'Organizing White Collar Workers'(2015, '화이트칼라 노동자 조직')에서는, 브라질 폭스바겐 제조업 공장에서 생산직과 사무직 노동자의 인원수가 역전된 현상을 다루며 2가지 원인을 제시했다. 하나는 생산직 자체가 줄어들었다는 점, 다른 하나는 생산 업무를 외국으로 아웃소싱을 많이 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둘째, 한국 제조업은 2010년대 중후반 이후 정체 혹은 쇠퇴 국면에 직면했다. 이 국면을 여러 측면에서 분석했는데, 우선 인구구성으로 보면 제조업 종사자 수는 1995년 약 489만 명에서 2019년 약 441만 명으로 다소 감소했다. 특히 여성노동자 수의 감소가 두드러졌다. 직업별 비율을 보면 여전히 기능, 기술직의 비중이 가장 높지만 감소하는 추세이며, 사무 서비스직의 경우 인원수는 적지만 비중이 매우 늘었다(2000년 12.6%에서 2019년 24.4%).

제조업 성장의 측면에서, 전산업에서 차지하는 제조업의 비중이 1990년 18.6%에서 2011년 27.2%까지 상승하였지만, 그 이후 완만하게 하락하여 2020년 26.4%까지 감소하였다(조선업, 철강, 자동차 등에서 하락이 진행되었지만 반도체 산업이 지표 하락을 막았다). 제조업 생산지수의 증가 폭은 둔화하였고, 가동률지수도 2015년부터 감소하였다.
 
제조업 사무직 노동조합의 등장은 한국 제조업 성장 둔화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
 제조업 사무직 노동조합의 등장은 한국 제조업 성장 둔화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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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제조업의 생산추세 둔화가 생산직보다 엔지니어들에게 더 큰 영향을 끼쳤다고 발제자는 분석한다. 사무직, 엔지니어들은 개별 실적평가를 기반으로 개별적으로 연봉을 협상해왔으며, 임금에서 성과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했다. 회사는 이 성과급으로 장시간 노동이나 경쟁 등을 무마해왔다. 하지만 성장 둔화에 직면한 상황에서 성과급이 없어지거나 줄어들며 임금하락과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지면서 불만이 고조되었다. 또한 인수합병 등을 거치며 사무직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이 자주 발생했다.

사무직 고과평가의 합리성, 공정성에 대한 불만 및 인사관리의 공백에서, '우리도 생산기능직처럼 노조를 만들어보자'라는 문제의식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개별 연봉 협상에 대해서도, 현대차 그룹의 경우 사실상 재벌 본사에 컨트롤타워가 있다는 점을 노동자들이 인식하며 개별적 대응의 한계를 인식하게 되었다. 블라인드(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의 계열사 라운지 정보공유가 노조설립의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발제자는 대규모 기업의 사무직 노동자들이, 회사 이메일로만 인증할 수 있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블라인드를 많이 활용한다는 점을 짚었다. 블라인드를 통한 활동은 기업조직을 이탈하지 않으면서, 기업 외부의 연결망을 활용하여 정보를 공유하고 기업 내의 문제에 목소리를 낸다는 특징이 있다.

온라인 기반, 중간관리직 정체성

한편, 이러한 이런 제조업 사무직 노동조합들이 기존의 노동조합과는 다르다고 인식하는(강조하는) 부분들도 있다. 우선 본인이 스스로 사무직, 엔지니어라는 정체성이 강했다. 또한 이들의 임금수준이 (최저임금적용 혹은 생존권을 위협받을 정도로) 낮지는 않다는 것을 자신도 알기 때문에, 절대적 임금인상보다는 공정에 대한 요구도 및 개별 성과 평가에 대한 불만이 상당히 높다. 또한 생산직은 노조를 통해 자신들을 보호하고 있지만, 노조가 없는 사무직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차별 받고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

제조업 사무직 노동조합은 노사가 대립 관계가 아니며 서로 '윈윈' 할 수 있다고 인식했다. 소위 전문성이 있는 노동자들이, 회사와 합리적으로 논쟁하면서 활동하는, 받아낼 것은 받아내고 불합리와 불공정에 맞서는 노동조합으로 규정한다는 점이 지배적이다. 

이런 특징을 가진 화이트칼라, 혹은 중간직/관리직을 계급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어렵지만 중요하다. 하지만 소위 MZ 노조라며 세대를 부각하는 분석이 더 대두되고 있는데, 이는 세대 내 차이를 은폐하고 있다는 큰 단점이 있다. 또한 40대 이상과 30대 이하의 인원 비율이 6:4 정도라는 한 대규모 제조업 사무직 노동조합의 사례처럼, 소위 MZ세대가 아닌 조합원들이 다수인 사무직 노동조합도 많다는 점을 반영하지 않는다. 

발제자가 인터뷰한 제조업 사무직 노조의 경우 (민주노총이든 한국노총이든) 상급 단체를 정한 곳도,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다. 정한 경우 상급 단체의 경험과 노하우 활용을 공통으로 지적하며, 회사의 인사노무관리나 사모펀드에 대한 문제 등에 공동으로 함께해야겠다는 점이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정하지 않은 경우는 상급 단체를 다소 낡은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집단으로 인식했다는 것이 작용했다.

단위사업장 넘는 것은 공동의 과제

이후 토론에서, 제조업 사무직 노동조합이 주로 대기업 위주로, 회사 내의 불만으로부터 노조 운동이 조직되었다는 점에서 기업 밖의 가치나 기업 밖 노동자들의 문제를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 고민된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에 대해 발제자는 제조업 사무직 노조를 인터뷰하며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을 때, 잘 모르겠다는 답변을 들었다는 점을 공유해 주었다.

또한 아직 2 노조, 3 노조인 경우가 많아 자신만의 뚜렷한 활동공간을 잘 확보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점도 덧붙였다. 다만 회사의 담장이나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는 운동을 만들어 가는 것이 어려운 점은 사무직 노조에만 해당되는 점은 아니라는 것도 강조했다. 단위사업장의 이해관계를 넘어 공장 밖을 지향할 수 있는 시야를 상급 단체나 사업과 활동에서 만나는 사회운동단체들이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동의 과제이기도 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토론을 마무리하며, 발제자는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노조를 만들어보자'라는 에너지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개인화되는 경향이 있다고는 하지만, 제조업 사무직 노동자들에 대한 회사의 노무관리는 집단적으로 작용한다. '노동조합을 만들어보자'라는 그 에너지를 어디로/어떻게 견인할지는, 앞으로 토론과 설득으로 만들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조건희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태그:#제조업_사무직_노동조합, #노조, #MZ세대_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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