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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사과의 문자를 한 통 받았다. 모처럼 큰맘 먹고 신청한 행사가 시스템 오류로 부득이하게 연기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최근의 '심심한 사과' 논란 때문은 아니겠으나, '심심한'이 아닌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표현을 사용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한 업장이 SNS에 사과문을 올리면서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을 언급하고 이에 누리꾼들이 '심심(甚深)하다'를 지루하다는 뜻의 '심심'으로 잘못 해석하고 댓글을 달면서 '심심한 사과' 논란이 불거졌다. 

'심심한 사과' 논란에 대해 의견을 밝힌 오상진 아나운서는 "한 번 더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태도"와 "모르면 알아가면 되고 모른다고 얕볼 필요는 없다, 양쪽 모두 조금 열린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라고 생각을 밝혔다. 그의 글이 소모적인 논쟁을 피하는데 균형감은 잘 잡았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의 어휘력 현실
 
'심심한 사과' 논란
 "심심한 사과" 논란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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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도 고등학생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기본적인 어휘라고 생각하는 말을 '듣도보도 못한 생소한 어휘'로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다. 일부는 논란에서처럼 자신의 오독을 정당화하며 짜증을 내거나 우스개 소리로 풀어내며 본질을 흐리기도 하고 때론 학습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든다.

반면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질문을 하는 학생들도 있다. 학습에 대한 열정이 있고 적어도 노력을 하는 학생들이다. 이들은 풀어서 얘기하면 금방 이해한다. 드물게는 그런 쉬운 어휘조차 몰랐던 자신에 대해 민망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얼마 전 실시한 논술형 수행평가에서의 일이다. '작품을 읽고 OO을 고전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서술하시오'라는 문제를 냈다.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이 고전이라고 인정해. 이를 전제로 서술하면 돼"라고 하니, 다시 고전의 의미를 물었다. 그것과 관련된 설명은 이미 1학기부터 자세하게 설명한 바 있었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강조한 내용이었다.

결국 고전이라는 의미와 문제의 논지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다시 이어지고 난 후에 비로소 알겠다는 답과 함께 그 학생은 수행평가로 넘어갈 수 있었다.

진짜 문제는 무슨 말인지 모르면서도 질문조차 하지 않는 학생들이다. 그들의 대부분은 질문의 요지와 상관없이 아무 말이나 되는 대로 쓴다. 논리는커녕 문장이 성립되지도 않는다. 아예 수행평가를 포기하는 학생과 더불어 그런 학생들은 해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심심한 사과 논란'과 관련하여 일부 언론에서는 대한민국의 '실질적 문맹률'이 75%에 달한다는 OECD의 국제 성인 문해 조사 결과를 언급했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미디어로 정보를 접하거나 글을 읽는 게 익숙해질수록 실질 문맹률이 더욱 높아질"거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전했다.

중요한 것은 태도의 문제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돌이 갓 지난 아기들도 뉴미디어의 세상으로 흡수하고 있다. 생각하는 법을 습득하기도 전에 생각을 차단당한 아이들은 미디어에 대한 저항력을 기를 새도 없이 깊이 그 세계에 침잠한다. 태블릿 PC의 크기는 점점 커지고 시각을 압도하며, 부모들은 현실과 타협한다. 태블릿 PC는 부모의 식사시간과 여유시간을 만들어주는 '효자템'이지만 문제가 많다.

현재 학교의 아이들은 디지털에 의해 훈련된 세대다. 눈으로 보는 정보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귀로 들리는 정보의 습득에 어려움을 느낀다. 이들은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없고 교사가 전달하는 정보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게다가 점점 더 자극적 정보를 요구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정보에는 반응하지도 않는다. 이른바 '팝콘브레인(팝콘이 튀어 오르는 것처럼 즉각적인 현상에만 반응할 뿐 깊이 생각하지 않는 뇌의 상태)'이 된다.

거기에 코로나 3년을 겪으며 학생들이 학교 생활에 임하는 태도는 엄청나게 바뀌었다. 9시 등교가 정착되었지만 그 이후에 등교하면서도 서두르거나 조급해하는 태도를 보이는 학생은 없다. 등교 후에도 조금 아프면 망설임 없이 조퇴하겠다고 한다. 이들에게 학교는 벗어날 수만 있으면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다.

수업시간도 다르지 않다. 가정학습을 하던 지난 2년은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시간을 없앴다. 학생들은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새벽까지 인터넷에 매달리다가 잠결에 등교하며, 1교시부터 숙면에 빠진다.

학생들이 잠들지 않도록, 학교에 잘 나올 수 있도록 수업을 철저하고 재미있게 하라는 훈시에 교사들의 스트레스는 크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개그맨의 자질을 동원해보지만, 아이들은 잠깐 웃고는 다시 픽 쓰러진다. 수업의 수준은 점점 낮아질 수밖에 없고 교육자로서의 신념은 무너진다.

우리말은 고유어와 한자어 외래어로 이루어져 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표준국어대사전'의 전체 44만여 개의 주표제어 가운데 한자어는 약 57%를 차지한다고 한다. 여기에 한자어와 고유어가 결합한 복합어를 더하면 그 비율은 더 올라간다.

매일같이 즉흥적이고 장난 같은 신조어가 만들어진다. 그러한 말 사이에서 정제된 언어는 어렵고 따분하다. 더 중요한 것은 태도의 문제다. 학습할 마음도 학습의 태도도 갖추고 있지 않은 아이들에게 '한 번 더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태도'나, '모르면 알아가면 되고 모른다고 얕볼 필요는 없는 열린 태도'는 공허하다. '심심한 사과 논란'이 문해력의 논란만은 아니라고 보는 이유다.

태그:#심심한 사과 논란, #교육현장, #교육 서비스, #기본적인 인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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