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스칼라 극장> 스틸컷

다큐멘터리 <스칼라 극장>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01.

1966년 12월 태국 방콕에 첫 독립영화관이 문을 연다. '시암 극장'이라는 이름의 영화관이다. 약 900여 석으로 운영되던 시암 극장은 1968년 문을 연 1000여 석 규모의 '리도 극장', 1969년 첫 상영을 시작한 1200여 석의 '스칼라 극장'과 함께 도시를 대표하는 독립형 영화관이 되었다. 최근까지 방콕에 남아있는 독립영화관은 스칼라 극장이 유일했다. 그마저도 지난 2020년 코로나로 인해 경영난을 겪게 되자 7월 5일의 상영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을 것이라 선언했다. 이제 태국 방콕에는 대형 규모의 복합 상영관만 남아 있을 뿐, 과거와 역사를 품은 독립영화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스칼라 극장>은 방콕 도시에 남은 마지막 독립영화관 스칼라 극장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누군가의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했던 일터이자 또 누군가의 행복과 꿈이었던 공간에 대한 기록이다. 영화관 전 직원의 딸이기도 한 아난타 티타낫 감독은 이번 작품을 연출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로 가득한 공간을 돌아보게 된다. 극장을 해체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모인 극장의 옛 직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오래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도 전해 듣게 된다.

02.

그 시절의 영화관은 감독에게 하나의 세상이나 다름없었다. 영화 상영을 관리하는 프로그래머로 일했던 아버지를 따라 많은 시간을 극장에서 보낸 그녀에게 마지막 남은 스칼라 극장의 폐관은 추억 속 한 부분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느낌이다. 오래 떠올리지 못한 추억이지만 이제 영영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새삼 기억나는 것들이 많다. 아빠가 일하는 동안 함께 놀아줬던 경리 아주머니와 매표소 아주머니 생각이 제일 먼저 난다. 처음으로 영화를 보여줬던 분들이다. 시암 극장의 영사 기사 아저씨도 기억 속 중요한 사람 중 하나다. 한번 일을 시작하면 평생 떠나는 일이 없었던 영화관 사람들은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1993년 알 수 없는 화재로 리도 극장이 문을 닫은 이후에도, 2010년 붉은 셔츠 시위대를 군부가 탄압하던 시기에 발생한 화재로 시암 극장이 사라진 이후에도 영화관 사람들은 그대로 남아 다른 영화관으로 옮겨 다녔다. 도시에 마지막으로 남은 스칼라 극장은 그들이 돌고 돌아 모일 수 있게 한 노아의 방주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자리를 옮기면서까지도 독립영화관의 품은 떠나지 않았던 이들 덕분에 스칼라 극장은 2019년 10월 27일 세계 시청각 유산의 날을 맞이해 태국 영화사에 있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스칼라 극장> 스틸컷

다큐멘터리 <스칼라 극장>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03.

단순히 오래되었다고 해서, 지역 영화 산업의 명맥을 이어왔다고 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된 것은 아니다. 지금의 복합 상영관에서는 만날 수 없는 모습들이 옛 극장에는 있었다. '여유 좌석'이라는 개념이 대표적이다. 오래된 극장에는 여유 좌석이라는 좌석이 있었다. 좌석 번호가 겹치는 등의 문제가 생길 때를 대비해서 마련해 둔 좌석들이었다. 당시에는 모두 수기로 표를 작성하고 입장권을 만들었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문제였다. 그 좌석들은 가장 뒷줄에 있어 비싼 좌석에 속했다. 자리가 비어있을 때 영화관 직원들이 와서 함께 영화를 봤던 기억도 있다. 추가 좌석까지 다 나갈 정도로 인기 있는 영화가 개봉하면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도 했지만 그 또한 즐거움이었다.

극장 곳곳에 쓰여 있던 고양이 안내문도 그중 하나다. 몰래 극장으로 들어온 고양이를 내보내 달라거나 들어오지 못하도록 창문을 꼭 닫아 달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제 스칼라 극장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 어렸을 때 여기 온 적이 있었다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30대는 여기 종종 왔었다는 이야길 하고, 더 나이가 든 사람들은 10대 때부터 찾았던 공간이 사라져 아쉬운 마음이 든다고도 했다.

"시간이 흘렀으니 세상도 변해야죠. 더 새로운 게 생길 거예요."

04.

아쉬움이 크기는 하지만 이런 기억들이 남은 자리가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한 데는 시대가 지나면서 극장의 위엄이 조금씩 바뀌어 갔던 이유도 있다. 극장 바로 옆에 생긴 지하철 역사의 높이가 극장 옥상의 높이와 같아지자 상대적으로 극장의 크기가 초라해지는 외형적인 이유도 있었고, 이제는 집에서 영화를 보는 시대가 되다 보니 예전처럼 극장에 사람이 많지 않은 탓도 있었다. 사람들이 밖에서 영화를 보더라도 쇼핑몰 내에 있는 대형 영화관을 더 많이 찾기에 스칼라 극장처럼 오래된 극장에는 관람객이 한 명뿐일 때도 종종 있었으니 제대로 된 운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날은 점점 많아졌고 상영을 취소해야 하는 날에는 대표가 사과를 하며 관람료를 돌려줘야 했다.

1997년에 있었던 '똠얌꿍 위기'(바트화의 폭락으로 인한 태국의 IMF 사태) 이후에는 임대료도 매년 급격하게 인상되었다. 10년이었던 임대 계약의 주기도 1년 계약으로 변경되었다. 극장 앞에서 팔던 팝콘도 더는 팔리지 않아 과자만 팔게 되었고, 사람이 많던 옛날에는 하나의 작품을 일주일 넘게 상영하는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하루에 여러 개를 상영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 젊은 직원들은 극장을 떠나야만 했고 이렇게 반복되던 악순환의 고리는 극장을 안에서부터 조금씩 무너뜨리기 시작하며 폐업을 결정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다큐멘터리 <스칼라 극장> 스틸컷

다큐멘터리 <스칼라 극장>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05.

다큐멘터리가 진행되는 동안 조금씩 철거되기 시작하던 스칼라 극장은 마지막 지점에 이르러 모든 불이 꺼진 채 문이 닫힌 모습으로 끝이 난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은 영상의 시선이자 화자라고 할 수 있는 감독 본인의 이야기를 따라 흐르고 있지만, 그 흐름 속에서 오래전 이 지역의 문화를 책임졌던 영화관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꼭 사회적 문제를 고발하거나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을 설명하는 내용이 주제가 되지 않더라도 개인의 기억 역시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에 모자라지 않다는 뜻이다. 그 기억에 그 시대를 함께했던 다른 이들의 삶과 시간이 묻어 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이 작품 <스칼라 극장>도 마찬가지다. 감독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이 작품을 통해, 이제는 사라지고 만 방콕의 오래된 극장들에 대한 기록이 되고 그 마지막 자락에 위치한 스칼라 극장에 대한 연서가 되는 셈이다. 세대를 거듭해 이 극장을 직접 기억하는 이들이 모두 떠난 뒤에도 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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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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