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선택도 사전에 결과를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결과를 가정한 채 선택하길 멈추지 않는다. 분명히 더 나은 선택이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낫고 못하고의 기준은 대개 나로부터 출발한다. 나의 이득이며 손해다. 비겁이며 불의가 그렇게 태어난다.

반대쪽엔 미덕들이 있다.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동기에서 출발한 선택들이다. 의롭고 자긍심 가득하며 이타적이다. 그러나 그 선택이 손해로 이어질 게 분명해 보인다면 기꺼이 그 선택을 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선택은 결과를 알 수 없어 무거운 것이다.
 
비상선언 포스터

▲ 비상선언 포스터 ⓒ (주)쇼박스

 
되돌릴 수 없는 선택

재혁(이병헌 분)은 끊임없이 고민한다. 자기가 관제탑의 지시에 따랐다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기장이던 그의 판단으로 비상착륙은 성공했다. 승객은 모두 살았다. 그러나 승무원 둘이 폭발로 숨졌다. 그중 하나가 부기장 현수(김남길 분)의 아내였다.

사고는 많은 것을 달라지게 했다. 재혁은 공황장애를 얻고 직업을 잃었다. 그 좋아하는 비행을 다시는 하지 못하게 됐다. 현수는 재혁을 원망했고 둘은 화해하지 못했다. 사건은 벌어졌고 되돌릴 수 없게 됐다. 재혁의 선택이 옳았는지, 관제탑의 명령에 따랐다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지 알 수가 없다. 그게 이들의 괴로움이다.

재혁은 승무원들의 죽음에도 제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현수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 눈앞의 재앙적 결과보다 더 큰 실패를 피했단 걸 확신할 수 없다.

<비상선언>은 선택 앞에 선 인물들의 태도를 보여준다. 국제선 비행기에서 벌어진 테러를 다룬 영화는 운항을 책임지는 기장과 승무원들, 테러범과 일반 승객, 사건을 다뤄야 하는 정부 관계자들의 선택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비상선언 스틸컷

▲ 비상선언 스틸컷 ⓒ (주)쇼박스

 
선택 앞에 선 인간의 태도

줄거리는 간명하다. 모종의 이유로 분노가 쌓인 테러범이 승객들이 탄 비행기에서 테러를 저지른다. 목적은 하나다. 죽음. 더 많은 이들의 죽음을 원하기에 협상도 먹히지 않는다. 하와이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선 급성 전염병이 퍼져나가고 승객들은 공황에 빠진다. 하나둘씩 승객들이 죽어나간다.

도착지인 미국 하와이 공항은 비행기 착륙을 거부한다. 상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어디든 비행기를 빨리 착륙시키려는 이들과 이들의 착륙을 막으려는 이들, 전염병 가운데 놓인 이들의 선택이 영화의 전면에 드러난다.

재난의 한가운데 놓인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태도를 보인다. 청와대 비서실장이며 보건복지부 장관은 있을지 모를 재난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승객들을 공항에 착륙시켜선 안 된다고 말한다. 국토부 장관(전도연 분)과 형사(송강호 분)는 어떤 일이 있어도 승객들을 살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둘 모두 당위는 같다. 자국민 보호다.

다만 선택을 두고 입장이 갈린다. 불확실한 위험을 차단하려는 이와 위험을 무릅쓰고 책임을 다하려는 이가 있을 뿐이다.
 
비상선언 스틸컷

▲ 비상선언 스틸컷 ⓒ (주)쇼박스

   
판단과 우연, 선택과 결과

조금 더 선명한 차이도 있다. 비행기 안 승객들이다. 유증상자와 무증상자로 공간이 나뉜 가운데 무증상자 그룹 사이에서 큰 소리가 인다. 한 남자가 증상을 숨기려는 이들을 유증상자 칸으로 쫓아내려 한 것이다.

다른 이들과 달리 적극 나서는 그를 한 여자가 막아선다. 그녀는 그에게 "당신은 자식도 없느냐"고 하고, 그녀의 친구는 그에게 "이 좁은 비행기에서 그렇게 해야 겠느냐"고 비난한다. 그는 이미 아토피로 피부에 수포가 난 아이를 증상자라고 비난한 터다. 그로 인해 유증상자 사이로 내몰린 억울한 이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의 모진 태도엔 증상자와 유증상자 사이에 바이러스 전파를 최소화하려는 이성적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다분히 저와 제 가족을 살리고자 하는 이기심이 깔려 있는 듯 보인다. 문제는 그의 판단이 제가 생각한 결과로 직결되진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제 오판으로 결국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그럼에도 그는 살아난다. 남을 위해 저를 내던진 이들 덕분이다. 자신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을 한 이들 덕분에 그와 그의 가족은 목숨을 건진다. 세상일이란 게 이와 같다.
 
비상선언 스틸컷

▲ 비상선언 스틸컷 ⓒ (주)쇼박스

 
이익과 가치, 우리가 좇아야 할 것

영화는 다양한 이들의 선택을 관객 앞에 내보인다. 누군가는 그때그때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 다른 누군가는 가치를 위해 예견되는 손해를 감수한다. 내다보이는 이익보다 중요한 무엇, 곧 각자의 가치관이 드러난다. 인류애, 희생, 의로움, 정의감 같은 것들이다.

영화가 하고 싶었던 말은 분명하다. 영화 속 후회 없는 결정을 한 이들은 대부분 가치를 좇은 이들이다. 반대로 이익을 따져 선택한 이들은 제 선택이 무의미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럼에 영화는 가치를 좇는 선택의 의미와 가능성을 따르는 선택의 무의미에 대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변하지 않아 후회도 남지 않는 가치적 선택과 내다볼 수 없으므로 후회가 남는 이기적 선택의 차이 말이다.

영화를 보고서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를 생각해 본다. 또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할지를 떠올린다. 어딘가에는 수확에 대한 기대 없이 씨를 뿌리는 농부가 있지는 않을까 생각한다. 문득 그런 이를 만나고 싶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비상선언 한재림 이병헌 김소진 김성호의 씨네만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