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난 그대 없인 살 수 없어 왜 자꾸 나를 두고 멀리 가
가난한 내 마음을 가득히 채워 줘 눈 깜짝하면 사라지지만"


문구를 언뜻 보면 애절한 사랑 노래인가 싶겠지만, 가수 스텔라장이 2017년에 발표한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의 가사 중 한 구절이다.

가수로 데뷔하기 전 한 회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던 스텔라장의 경험을 살린 이 노래는, 이 시대 직장인과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송가가 되었다. 특히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극심해진 고물가 시대에, 이 노래의 가치는 더욱 크게 격상되고 있다. 통장에 들어온 돈이 눈 깜짝하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정지우 작가가 쓴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2020)는 제목의 책이 떠오른다. 타인이 화려한 순간만을 전시하는 것이 보기 싫어서,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는다는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지난 수년간 전세계 SNS를 지배하는 시대 정신은 '플렉스(flex)'와 'YOLO(You Only Live Once)였다.

자신이 얼마나 멋진 소비를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람들은 지금도 많이 있다. 하지만 경제적 불확실성이 극심해지고 있고, 한번 올라간 물가는 내려올 줄은 모른다. 모두에게 플렉스와 욜로의 여유가 주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7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6.3%까지 올랐다. 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치라고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7월 외식 물가지수는 111.39로 지난해 7월 대비 8.4%나 올랐다. TV 뉴스에서는 '식료품 물가 비상'이라는 헤드라인의 뉴스를 매일 만날 수 있다.

작은 품목 하나하나, 가격이 오르지 않은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30년 넘게 1인분 가격을 1천 원으로 유지해왔던 집 근처 떡볶이집은 물가 상승을 못 이기고 가격을 2천 원으로 인상했다. 늘 2천 원대 가격에 구입했던 식빵의 가격은 이제 3천 원을 넘겼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의 4차 관람자가 되고 싶었지만, 주저하게 되었다. 영화 티켓값도 1만 5천 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후회 소비'와 헤어질 결심
 
주머니사정
 주머니사정
ⓒ 픽사베이

관련사진보기

 
'무지출 챌린지'는 이와 같은 시대적 상황 속에서 '플렉스'의 반작용으로 등장한 것이다. 무지출 챌린지를 간단히 정의하자면, 꼭 필요한 물건 이외에는 소비를 하지 않고, '무지출'의 날을 늘려가는 도전을 의미한다. 자기가 계획한 만큼 지출하고 SNS에 '인증'하는 놀이이기도 하다.

무지출 챌린지에 참여하겠노라 다짐한 적은 없었지만, 그 방향성에 공감할 수 있었다. 어느 날 가계부 앱으로 지출 내역을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다. 커피와 맥주에 쓴 돈이 이렇게 많았다니! 그뿐이 아니다. '외출한 김에' 외식을 했다가, 맛에 실망한 날도 적지 않았다. 충동적인 소비, 후회만 남는 소비를 줄여야 했다.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돈을 쓰지 않는 날이 있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물론 아직 실천한 적은 없다).

우선 카페의 유혹에서 조금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한 잔에 400원꼴인 캡슐 커피를 여럿 사 놓고, 외출할 때는 텀블러에 넣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나간다. 그렇게 아낀 커피값이 수십만 원이다. 나머지 돈은 고스란히 적금 통장으로 향한다.

일주일에 4~5회씩 사 마시던 맥주 역시 줄이기로 했다. 오히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정말 먹고 싶었던 수제 맥주를 사 마시는 것이 더 즐겁다. 정말 가고 싶었던 식당이 아니라면 애써 가지 않는다. 애매하게 외식을 하느니, 집에서 알뜰하게 먹는 집밥이 더 맛나고, 즐거웠다.

고정적인 지출 내역 역시 살펴보았다. 몇 가지를 내려놓을 결심이 필요했다. 콘텐츠의 유행을 챙겨야 한다는 명목 아래 4개의 OTT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다. 정작 결제는 해 놓고, 한 달 넘게 접속도 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OTT 두 개를 제외하고, 나머지 두 개는 고민 없이 해지했다. 아쉬움일랑 남지 않았다.

한 달에 5만 원 이상 빠져나가고 있던 스마트폰 요금제 역시 알뜰폰 요금제로 바꾼 후, 50% 이상 통신비를 아꼈다. 옷을 구매하는 빈도가 줄긴 했지만, 계절에 맞는 옷을 아예 사지 않을 수는 없었다. 매 시즌 신상품을 챙기기보다, 예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중고 거래 플랫폼으로 눈을 돌렸다. 품절 때문에 놓친 재킷을 반의 반 값에 얻는 행운도 만끽했다.

안 쓰기보다 소비생활 점검부터

나도 모르게 참여하고 있던 무지출 챌린지. 아직은 순기능이 돋보인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그렇게 아낀 여윳돈을 정말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다. 가고 싶었던 팝 뮤지션의 내한 공연이나 가족과 애인을 위한 선물 등이 좋은 예다. 무지출 챌린지의 지향점은 '무소비'가 아니라 '현명한 소비'라고 믿는다.

그러니 '무지출 챌린지'를 한다는 명목 하에 한 끼를 굶는다거나,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세우지는 않기를 바란다. 그것은 저마다의 삶과도 맞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소비 생활을 한 번씩이라도 점검해보는 일 정도는 권할 만하다.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렇게 고물가 시대를 살아갈 지혜를 찾는 중이다.

태그:#무지출챌린지, #플렉스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아홉.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