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16 10:18최종 업데이트 22.08.1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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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지난 한 세기 한국 근현대사와 관련된 역사관을 담고 있다. 투쟁의 대상이 무엇인가 하는 점에서 뚜렷한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 

경축사 서두에서 윤 대통령은 독립운동의 정의를 규정했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나라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고 개념을 정리했다. "자유와 인권이 무시되는 전체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독립운동은 결코 아니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민주공화국·자유·인권·법치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강조된 것은 경축사에서 34회 언급된 '자유'다. '인권'이 5회, '민주공화국'과 '법치'가 각 1회 언급된 것과 명확한 대비를 이룬다. 

경축사 서두에서는 민주공화국·자유·인권·법치가 다 언급됐지만, 뒷부분에서는 사실상 자유 하나만 반복적으로 강조됐다. 독립운동을 '자유를 위한 투쟁'으로 사실상 한정한 셈이다.  

8·15 경축사에서 그는 "자유를 찾기 위해 시작된 독립운동"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역사적 시기마다 우리의 독립운동은 그 성격과 시대적 사명을 달리하며 진행되어온 역동적인 과정"이라면서 "자유를 찾고 자유를 지키고 자유를 확대하고, 또 세계시민과 연대하여 자유에 대한 새로운 위협과 싸우며 세계평화와 번영을 이뤄나가는 것"이라는 말로 독립운동과 자유를 사실상 등치시켰다. 

그는 독립운동의 정신은 근본적으로 '자유'였다고 선언했다. "우리의 독립운동 정신인 자유는 평화를 만들어내고 평화는 자유를 지켜줍니다"라고 말했다. "우리의 독립운동은 끊임없는 자유 추구의 과정으로서 현재도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헌법을 침해하는 발언

경축사는 자유가 핵심인 독립운동이 1945년에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 운동이 8·15 해방 이후로 새로운 적과의 싸움으로 발전했다고 해석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일제강점기 시절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비롯하여 모든 국민이 함께 힘써온 독립운동은 1945년 바로 오늘 광복의 결실을 이뤄냈습니다"라고 한 직후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독립운동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 이후 공산세력에 맞서 자유국가를 건국하는 과정, 자유민주주의 토대인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이루는 과정 그리고 이를 토대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과정을 통해 계속되어 왔고 현재도 진행 중인 것입니다."

일본제국주의에 맞선 독립운동이 공산세력과의 투쟁으로 발전했다고 해석했다. 공산주의와의 투쟁을 제2의 독립운동으로 본 것이다. 그런 의미의 독립운동이 현재진행 중이라는 게 그의 관점이다. 

이 대목에서, 경축사에 나타난 헌법침해적 요인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현행 헌법 제69조는 대통령이 취임식 때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로 시작하는 취임선서를 하도록 규정한다.

대통령의 헌법준수 의무가 취임선서 내용인데도, 윤 대통령은 헌법 전문에 나오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대목을 훼손했다.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이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대한민국 건국이 이념적으로 1919년에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1919년 독립만세운동에 역행하는 일제 식민지배와 친일반민족행위를 불법으로 단죄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정부가 실제로 1919년에 세워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3·1 정신으로 역사를 바로세우고 대한민국을 올바로 세우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조지 워싱턴의 취임으로 미국 정부가 실제 수립된 것은 1789년이지만, 미국인들은 영국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개시한 1776년을 미국 건국의 해로 간주한다. 미국인들이 미국판 3·1운동이 있었던 해를 건국 원년으로 규정하는 것 역시 우리 헌법 전문의 취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독립운동이 8·15 해방으로 끝난 게 아니라고 하면서 1945년 이후를 '자유국가를 건국하는 과정'으로 규정했다. 3·1운동을 대한민국의 출발점으로 간주하는 헌법 전문을 벗어나는 발언이라 할 수 있다. 

공산주의와 일제를 대하는 뒤틀린 인식

일제와의 투쟁이 공산세력과의 투쟁으로 연결됐다는 경축사 논리대로라면, 일본제국주의와 공산세력은 본질적으로 비슷한 부류가 된다. 이는 두 세력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다르지 않아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경축사는 이 대목에 이르러 이상하게 뒤틀린다. '독립운동은 자유를 위한 투쟁'이었으며 '이 투쟁은 공산세력과의 투쟁으로 계승됐다'는 식의 논리를 이어가다가 '자유의 적'들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 논리적 모순을 표출한다. 

윤 대통령은 자유를 위한 독립운동이 공산주의와의 투쟁으로 이어졌다고 언급하는 부분에서 "앞으로의 시대적 사명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한 국가들이 연대하여 자유와 인권에 대한 위협에 함께 대항하고 세계시민의 자유와 평화 그리고 번영을 이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산주의 위협에 맞설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경축사 후반부에서는 공산세력에 대한 대응이 보다 구체적으로 거론됐다. "독립운동 정신인 자유는 평화를 만들어내고 평화는 자유를 지켜줍니다"라고 한 뒤, "저는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 단계에 맞춰 북한의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구상을 지금 이 자리에서 제안합니다"라고 선언했다. 

독립운동이 공산세력과의 투쟁으로 연결됐다고 말하면서 위와 같은 '담대한 구상'을 거론했다. 항일 독립운동과 북한 비핵화를 섞어놓는 이상한 접근법을 구사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독립운동이 자유를 위한 투쟁이었다고 누차 강조했다. 이 말은 일본제국주의가 반(反)자유 세력이었다는 말이 된다. 경축사 논리대로라면 일제는 반자유 세력이므로 공산세력과 다를 바 없게 된다. 그렇다면 공산세력을 상대로 '담대한 구상'을 내놓듯이, 일제 식민지배와 관련해서도 단호한 입장을 천명해야 옳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의 일본은 1945년 이전의 일본을 계승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시절 일본이 저지른 범죄를 은폐하는 데 급급하다. 식민지배 피해자들이 자기 권리를 찾고자 하는 것까지 훼방하고 있다. 그런 일본의 태도에 대해 단호한 태도가 절실하건만, 이번 경축사는 지극히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런 제안을 내놓았다. 

"과거 우리의 자유를 되찾고 지키기 위해서 정치적 지배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대상이었던 일본은 이제 세계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입니다. 한일관계가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양국의 미래와 시대적 사명을 향해 나아갈 때 과거사 문제도 제대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

자유를 위한 투쟁의 대상인 공산세력에 대해서는 구체적 대처법을 언급한 반면, 경축사 논리대로라면 그 투쟁의 또 다른 대상인 일제 식민지배 청산과 관련해서는 위와 같이 모순된 제안을 내놓았다. 함께 힘을 합쳐 살아가자고 강조하는 데 그쳤다. 그러면서 "한일관계의 포괄적 미래상을 제시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해 한일관계를 빠르게 회복하고 발전시키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6월 25일이 아니라 8월 15일의 경축사였다. 8·15 경축사에 들어갈 핵심은 독립운동과 식민지배에 관한 언급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이상한 논법을 통해 이 사안을 북핵 문제로 바꿔놓았다. 독립운동은 자유를 위한 투쟁이었으며 이 투쟁은 공산세력과의 투쟁으로 계승됐다고 한 뒤, '일본과는 화해해야 한다', '북한과는 대결하되 대담한 구상을 보여야 한다'라는 엉뚱한 결론을 내놓았다. 

지금의 한일관계 파국은 일본이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노동자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을 외면하고 훼방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위안부·징용 피해자들의 한을 어떻게 풀어줄 것인지, 일본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 언급하지 않고 엉뚱한 결론을 내놓은 것이다. 일본에 대한 '담대한 구상'을 결여한 경축사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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