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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비건은 하나의 이념, 생활 방식 등을 넘어 문화로 확산되고 있다. 채식이라는 이름으로 단계적인 것들을 모두 포괄해서 부르던 때와 달리 '비건'이란 단어가 제법 대중적으로 사용된다.

이는 단지 기후위기에 내몰린 시대여서일까? 아니면 과소비의 한계점에 다다르며 끊임없이 양산되고 반복되는 가축 산업의 폭력이 많이 표면화 되었다는 의미일까? 이제는 식품 이외에도 의류, 화장품 업계에서마저 '비건' 인증 마크가 새로운 소비 세대에게 어필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어렴풋이 알고 있다.

고기의 식감 재현하는 대체육
 
대체육인 비건 음식
 대체육인 비건 음식
ⓒ 최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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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거주했던 영국 런던과 현재 이주해 온 독일 베를린, 세계 각지에서 온갖 종류의 대체육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식감 탐색에 있어 채식이 얼마나 무궁무진해질 수 있는지 경쟁에 붙기라도 한 것처럼. 콩과 밀로 만드는 베지볼, 베지 패티, 세이탄 그리고 캐슈너트로 만드는 온갖 치즈들. 발효의 세계는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다.

독일의 마트는 영국과 달리 대체육을 실제 육류 가공품들과 따로 분류하지 않고 한 진열대에 섞어 놓는 경우가 더러 있다. 비건인 입장에서는 이게 불편하기도 하지만 육류를 소비하는 이들에게 비건 제품에 대한 접근성이 좀 더 높아지도록 한 나름의 전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비건 인증 마크가 없다면 실제 표면상으로 비건/논비건을 구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실제로 꽤 효과가 있을 것도 같다.

많은 대체육이 '고기의 식감'을 재현하는 데에 노력을 들인다. 이름부터가 육류를 '대체' 하고자 하는 필연적인 역사가 있다. 한번은 비건 페스티벌에서 비건 치킨윙이라고 해서 사 먹었는데 닭껍질의 쫄깃함을 구현하고자 콩버무림을 라이스페이퍼로 감싼 뒤 튀겨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닭고기에 가까운 식감에 당황한 나머지 처음엔 거부감마저 들었다.

1년 전 온전히 비건으로서의 삶을 누리고자 영국행을 선택했고, 이는 비건 레스토랑에 취업하게 되면서 더욱 활개를 쳤다. 이전에는 비건인 나의 정체성이 소수였지만 많은 비건인 직장 동료들을 친구로 사귀게 되며 내 삶의 주류가 된 것이다. 이전까지 늘 긴장하며 달고 살았던 체증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나는 신나게 먹부림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많은 비건 식당을 다녔지만 내가 일하는 곳을 포함해 메뉴에는 빠짐없이
'칙앤버거(chic'n burger)'가 있었다. 대부분 콩으로 만든 패티였지만 이른바 치킨의 식감을 구현해낸 대체육이다. 나는 주문을 받고 서빙할 때마다 그것이 '칙앤버거'이지만 치킨에 유사한 발음을 하게 되는 것이 영 불편했다. 이 버거엔 치킨(닭)이 없는데. 왜 자꾸 나는 이걸 거듭 소리내 말해야 하는가.

'고기가 그립지 않냐'는 질문
 
비건 치킨버거
 비건 치킨버거
ⓒ 최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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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편한 생각은 무례한 손님을 만나면서 더 증폭되었다. 그는 메뉴에서 '칙앤버거'를 발견하고는 조롱에 가까운, 닭의 날갯짓을 흉내내며 'Well done'으로 구워달라고 했다. 나는 순간 너무 당황하고 화가 나 이후 이것을 비건인 동료들에게 푸념했다. 그들은 내가 그런 일을 겪은 것에 유감이라며 위로해 주었고, 논비건인 친구는 어째서 비건들은 치킨을 먹고 싶어하면 안 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두 위로를 받으며 나는 내가 화가 난 지점이 어떤 것들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첫째로 그 손님이 치킨이 들어가지 않는데 비건 식당에서 '치킨'이라고 명명해 파는 버거가 과연 얼마나 대단한 것일지(치킨의 식감에 가까울 것인지) 한 번 먹어나 보자 하는 태도가 읽혀 위압적이라고 여겼다. 물론 그는 그것이 얼마나 '비건' 식당에서 폭력적인, 적절하지 못한 행동이었음을 깨닫지 못한 채 큰 의미 없이 한 것일 테다.

둘째, 논비건 친구의 말은 내가 예상치 못한 것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은 비건에게 가해지는 잣대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 비건이 엄격한 종교의 규율을 따르는 이들인 것 마냥 때때로 사람들은 '심판'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예로 오래전 가수 이효리씨가 채식을 하던 초기에 짜장면을 먹는 모습을 두고 고기가 들어갔는지 아닌지가 기사화 되며 심판대에 오른 적이 있었다.

호기심에 가장 많은 받게 되는 질문은 '고기'가 그립지 않으냐는 것. 비건이면서 육류나 어류 섭취하던 때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식감과 맛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식재료와 방식들을 찾아가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반면 특유의 식감이나 향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이도 많다.

때때로 '비건이 된 것은 당신의 선택이 아니냐'라는 말은 그들이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고충들을 숨기게 만든다. 그것은 고립, 차별, 폭력들이란 이름으로 비건을 유난한 사람으로 낙인찍기도 한다. 대변하자면 폭력을 반대하는 일에 유난하지 않으면 어떤 일에 유난해야만 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쨌건 이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기에 일부는 이것을 일상으로 치부하며 무던해지는 쪽을 택하게 되기도 한다. 비건은 스스로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폭력의 굴레 밖으로 벗어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기도 했다.

대체육은 정말 육류 제품들을 대체할 수 있을까? '칙앤버거'로 비건과 논비건의 경계를 허물고 더 접근성 있도록 하는 것이 훨씬 시장성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다른 생명체, 동물을 해치고 싶지 않고 어떠한 방식의 폭력도 용납하고 싶지 않은 것인데 여전히 '비건 치킨, 비건 덕, 비건 포크' 등으로 불리는 제품을 소비하게 될 때마다 혼란스럽다.

그보다 식재료 본연의 특성을 살린 것으로 이름을 지을 순 없을까. 더 투명하고 정직하게 우리가 무엇을 소비하는지 알 수 있도록 말이다. 콩밀버무림, 강낭콩당근패티, 비트즙대두슬라이스 등 그 많은 채소 재료들의 이름과 조리 방식으로 상상되는 식단. 창의력과 상상력은 더 많은 가능성을 꿈꾸게 하고, 통합되지 못한 혹은 놓친 차이들을 마주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태그:#비건, #비거니즘, #치킨, #햄버거, #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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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여름 한국을 떠나 런던을 거쳐 현재 베를린에 거주 중이다. 비건(비거니즘), 젠더 평등, 기후 위기 이 모든 것은 ‘불균형’에서 온다고 믿기에 그것에 조금씩 균열을 내 기울어진 운동장을 일으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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