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 ⓒ CJ ENM

 
해준(박해일)은 밀러드는 바닷가 해변에서 서래(탕웨이)를 애타게 찾는다. 

우리는 알고 있지만 그는 모른다. 분명 저 어딘가 모래가 쌓인 해변가 구덩이 속 붕괴된 서래(탕웨이)가 묻히고 있다. 이미 거친 파도와 함께 들어 선 바닷물이 모래산을 허물고 흔적은 어느새 증거가 되고 해준(박해일)과 서래(탕웨이)가 함께 맞춘 은밀한 숨결이 되어 영원히 잠들 듯 봉인되어 가고 있다.

잠 못드는 해준(박해일)을 잠들게 했던 서래(탕웨이)는 이제 영원히 풀어야할 해준(박해일)의 미제사건을 넘어 '꼿꼿함'과 '자부심'으로 연결된 이들이 보여 준 새로운 사랑유형인 '붕괴된 사랑'을 탄생시켰다. 그래서 <헤어질 결심>은 처음부터 '사랑'을 주제로 한 로맨스를 전체적으로 깔아놓고 스릴러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현실에서와 같이 모호한 '사랑'을 수단으로 미장센으로 옮겨놓으면서 영화사에 걸작이 되었다. 박찬욱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저는 완전히 붕괴되었어요."

영화 속 해준(박해일)의 명대사는 JTBC <나의 해방일지>의 '추앙'보다 더 파괴력이 깊다. 한국말이 어설픈 중국인 서래(탕웨이)에게는 알기 쉽게 말을 해줘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해준(박해일)이 '붕괴'라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이 말은 영화 전체를 이끌어간다.

일상에서 대화체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 생뚱맞은 '붕괴'는 배우 탕웨이와 극 중 서래이기에 가능한 표현으로 영화 전체에서 가장 큰 장치이면서 복선으로 전체를 관통한다. 이는 독립운동가 할아버지를 둔 서래의 '꼿꼿함'과 투철한 사명감을 가진 형사 해준의 '자부심'을 품고 마치 '산(山)'처럼 세상을 살아내고 있던 외로운 그들을 동족으로 묶어주었던 정신과 육체를 모두 위태롭게 만드는 사랑 그 자체였다. 

만약 서래(탕웨이)가 한국사람 이였다면 이 대사는 "저는 완전히 맨붕이 되었어요"라고 표현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어사전에는 '맨붕'은 없다. 여기서 이 정신적인 일탈로 어쩌면 가벼운 느낌으로 전달될 언어'맨붕'을 서래(탕웨이)를 배려하는 '붕괴'로 바꾸면서 두 인물 서래와 해준, 그리고 영화 밖 관객까지 모두 송두리째 붕괴시키며 집중하게 만드는 매혹적인 영화로 탈바꿈시켰다.

특히 '붕괴' 전 해준(박해일)의 말들은 붕괴되는 이유에 앞서 서래(탕웨이)가 길고양이에게 말하던 그토록 갖고 싶던 해준(박해일)의 심장인 마음, '사랑고백'이었다.

왜 해준(박해일)은 "완전히 붕괴되었어요"라며 떠나간 것일까.

서래(탕웨이), 자신의 알리바이를 위해 월요일 찾아가는 할머니와 휴대폰을 교체해 침대 옆에서 간병 중인 것으로 만들 수 있었지만 정작 할머니의 휴대폰을 가져간 서래(탕웨이)는 산 정상을 의미하는 178층으로 위치추적을 남기면서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됐다.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해준(박해일)은 그 휴대폰을 바다 속 깊은 곳에 던져버리라고 말하면서 그 역시 할머니에게 새 휴대폰으로 교체 해주는 치밀함까지 보이며 자부심 높은 그는 마침내 붕괴되었다.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 ⓒ CJ ENM

 
갑자기 태도가 바뀐 해준(박해일)에게서 느낀 위기감으로 휴대폰 녹취를 하던 서래(탕웨이)가 <붕괴>의 말을 남기고 떠나간 해준(박해일)을 잡지 않고 사전적인 뜻을 휴대폰으로 검색해 '무너지고 깨어짐'으로 언어의 표면적인 의미만 읽고 이후 끝나 버린 두 사람의 관계에서 반복된 녹취를 음미하면서 비로소 서래(탕웨이)는 이것이 해준(박해일)식 '사랑고백'이었음을 알게 된다.

잠들지 못해 잠복근무를 나간다는 해준(박해일)을 약이 아닌 숨결로 재워주던 서래(탕웨이)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처음 시체실에서 서래(탕웨이)를 본 순간 남편의 휴대폰 내용을 보기 위해 내 뱉은 "패턴을 알고 싶다"는 말이 서래(탕웨이)에게 반한 해준(박해일)이 호감의 표시로 '서래(탕웨이), 당신의 "패턴을 알고 싶다"'는 이중적인 말로 연결되면서 취조하는 경찰서 안에서 밥으로 회를 사주고 먹은 다음 치우는 과정과 치약까지 짜주는 배려에서 두 사람의 마음 맞는 정갈한 움직임이 연상되면서 해준(박해일)의 증거인멸 과정이 깔끔해지는 책상의 모습이 연상된다면 지나친 느낌일까.

안타깝게도 해준(박해일)의 사랑은 끝나고 이포 부인 옆으로 떠났지만 이제 서래(탕웨이)의 사랑은 붕괴 이후 대답하듯 시작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서래(탕웨이)는 한국어를 익히기 위해 드라마 속 장면에서의 대사를 따라해 왔다. 그러면서 녹취된 해준(박해일)의 붕괴이유 이면서 사랑고백의 말들을 되새김질하면서 수없이 '붕괴'를 듣고 음미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해야 한다'고 말한 오스트리아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논리학 및 수학·심리·언어철학 등 분석 철학자로 유명하다. 그는 언어분석에 있어 전기 철학에서 언어와 세계와의 관계에서 언어가 그림처럼 세상을 보여줄 수 있다는 (언어가) 가리키는 '그림이론'을 제시했다. 하지만 후기 철학에서 언어가 대상을 가리키는 의미 위주를 비판하고 '게임이론' 등 언어놀이를 통해 언어를 생활 속에서 어떻게 사용하는 지에 따라 명확히 익힐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서래(탕웨이)가 익힌 '붕괴'라는 언어는 '사랑'과 하나가 된다.

서래(탕웨이)가 휴대폰에서 '붕괴'의 의미를 읽었지만 진짜 '붕괴'라는 언어를 이해하는 데는 해준(박해일)의 녹취된 사랑고백을 수없이 반복해 들으면서 그가 했던 행동, 자신의 알리바이를 숨기기 위해 증거인멸 과정 속에서 '붕괴' 되어 지고 있는 해준(박해일)을 알게 되고 그와 동시에 '사랑'을 알게 된다.  

그래서 서래(탕웨이)가 익힌 '붕괴'는 곧 '사랑'이면서 해준(박해일)을 위한 '헌신된 사랑'으로 서래(탕웨이)도 붕괴로 치닫게 되는 것은 숙명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해준(박해일)의 사랑이 떠나버렸을 때 '붕괴'의 언어를 비로소 알게 되면서 서래(탕웨이)의 사랑은 시작되는 셈이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형사 해준(박해일)의 자부심은 살인사건이 있어야 비로소 존재감이 생기고 잠복근무로 이어져 좋고 싫음에 익숙한 세상 사람들보다 더 빛을 발한다. 서래(탕웨이)가 이포로 가고 다시 2번째 남편의 살해사건이 터지면서 다시 재회한 그들은 바다 앞에 마주 섰다.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아직 서래(탕웨이)식 사랑방식을 모르는 해준(박해일)은 이포에 온 그녀와 2번째 살인사건에 당황스럽다. 부산서 후배 수완(고경표)과 이포의 연수(김신영)는 각각 용의자 서래(탕웨이)를 대할 때 악마와 천사가 되어 해준(박해일)의 심리를 깊이 있게 다루는데 두 사람의 의심은 진실에 가까운데도 해준(박해일)이 보인 서래(탕웨이)의 의심은 모두 반대로 빗나가 있다.

특히 서래(탕웨이)의 사랑은 언어를 일상 속에서 익혀나가는 것과 같이 분명한 행동을 한다.  

부산서 해준(박해일)이 서래(탕웨이)를 위해 중국식 요리를 해주지만 그것은 해준(박해일)이 말하는 중국식요리이지 실제 중국에 있는 요리가 아닌 것을 서래(탕웨이)는 말하지만 맛은 좋다며 받아들인다. 특히 홍산오(박정민)가 나온 해결되지 못한 3년 된 질곡동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서래(탕웨이)가 "한국은 사랑하는데 남편이 있다고 사랑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서 해준(박해일)의 도덕적 관념의 갇힌 세계를 흔든다. 반면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홍산오(박정민)이 사랑한 여자의 미용실 근처에서 추격전을 통해 옥상에서 마주한 홍산오(박정민)에게 "넌 죄가 없어. 사랑해서 죽인 거니까"라며 해준(박해일)은 말하지만 홍산오(박정민)을 잡기 위한 말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인의 미용실 가위로 목을 찔러 자살하는 홍산오(박정민)의 사랑은 서래(탕웨이)의 사랑과 결이 같아 보인다.

<헤어질 결심>의 영화 제목은 해준(박해일)과 서래(탕웨이) 두 사람의 헤어질 결심으로 끝나는 말이 아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 ⓒ CJ ENM


영화 대사 속 '헤어질 결심'은 단 한번. 서래(탕웨이)가 해준(박해일)에게 말한다.

"당신과 헤어질 결심으로 다른 사람을 만난다." 

이 말은 서래(탕웨이)의 사랑고백이다. 의심하며 다시 찾아온 해준(박해일)을 할아버지 산이라는 한국의 호미산에 올라 괜찮은 남자를 데려왔다고 말하는 서래(탕웨이)의 뿌듯함이 눈이 내리는 정상에서 엄마의 유골을 뿌리는 해준(박해일)과 백허그와 함께 진한 입맞춤으로 남는다.

서래(탕웨이)의 사랑은 거짓말 탐지기에서 남편을 죽였나? 라는 질문에 '네'라고 말하면서까지 붕괴되어 가면서 해준(박해일)에게 미제사건으로 다시 재조사되기를 바란다.

'붕괴된 사랑'을 함으로서 해준(박해일)과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을 택한  서래(탕웨이)는 그의 사랑고백 녹취가 든 휴대폰을 남기고 스스로가 바다 깊은 곳으로 빠져 들어가기 위해 바닷가 해변 모래를 파고 구덩이 안으로 들어가 잠든다. 

속절없이 밀려드는 바닷물이 흔적을 지운다. 너무 늦게 알아버린 해준(박해일)의 마음의 소리가 다시 들린다. 할머니에게 바꿔준 휴대폰에는 '정훈희의 안개' 노래가 깔려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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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사물에 대한 본질적 시각 및 인간 본성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를 통해 옳고 그름을 좋고 싫음을 진검승부 펼칠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살아있다는 증거가, 단 한순간의 아쉬움도 없게 그것이 나만의 존재방식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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