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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만 공부한 18세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한국이 떠들썩했다. 그의 연주 스타일 분석, 콩쿠르에서의 일화, 단테의 신곡을 여러 판본으로 읽었다는 인문학적 소양 얘기까지 그를 다룬 기사도 아주 많았다.

그런데 한 명의 천재적 예술가에게 이렇게 열광하는 한국 사회에서 예술노동자들은 어디에 있나. 용인시청 앞에서 천막 농성을 하던 용인시립합창단 김병주-정승연 님을 6월 27일 만났다. 인터뷰 이후 회사인 용인문화재단과의 합의로 천막 농성은 중단하였다. 

초단시간 예술 노동자

용인시립예술단은 원래 시립소년소녀합창단과 청소년 오케스트라로 구성돼 시가 고용, 운영을 하는 형태로 시작됐다. 2016년부터 시 출연기관인 용인문화재단에서 인수해 운영하고 있으며, 2017년 성인 합창단인 용인시립합창단이 창단됐다. 김병주, 정승연 님은 2017년 8월에 입단하여, 9월 시범운영부터 함께 하였고 2018년 1월부터 합창단이 정식 운영됐다. 이들은 모두 창단 멤버다.

정승연 : "시립 합창단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사실 지금 있는 비상임 단원들의 역할이 큽니다. 정식 출범 전에 시범 운영할 때 최저시급으로 일주일에 9시간 남짓 근무를 하고 월 30만원 받으면서 시작했거든요. 정식 운영 후에도 일당 10만원으로 급여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한 달에 130만원 정도. 휴일이 많은 달에 출근일이 적으면 더 적게 받고요. 그래도 참고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재단에서 합창단을 상임운영할 계획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어요. 당시에는 합창단원 중 상임 단원이 있었는데, 그분들이나 재단 직원들의 고용 환경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도 보이고요. 그래서 저희도 상임화되고,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거라는 기대가 있었던 거죠. 그리고 용인도 특례시가 되었잖아요. 특례시 중 예술단을 비상임으로 운영하는 곳은 저희밖에 없거든요." 
 
2022.6.30까지 용인시청 앞에 세워져 있던 용인시립합창단 지회의 천막. 회사와 협상 후 천막은 철수했지만, 여전히 특례시 유일한 비정규직 예술단원이다.
 2022.6.30까지 용인시청 앞에 세워져 있던 용인시립합창단 지회의 천막. 회사와 협상 후 천막은 철수했지만, 여전히 특례시 유일한 비정규직 예술단원이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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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은 5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비상임단원이다. 낮은 임금에 몇 차례의 징계나 해고도 있었던 탓에 86명으로 시작한 시립합창단은 현재 50여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임금이 지나치게 낮은 것은, 예술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임으로 운영되는 다른 시도 합창단들은 보통 주 5일, 하루 5시간 근무가 인정된다. 일반적으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3시간 합주를 하고, 나머지 2시간은 개인 연습시간을 인정해 주는 방식이다. 하루 5시간 실제 나와 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각자 연습하는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간주'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용인시립합창단은 하루 3시간, 주 3일 근무로 주 9시간만 노동시간으로 인정되고 있었다. 이 시간은 연습실에 나와 다같이 합창해보는 시간에 불과하다. 파트별 연습, 개인 연습, 악보를 외울 시간, 안무를 연습할 시간 등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천막 농성 끝에 용인문화재단과의 협상에서 하루 3시간씩 주 4회로 늘어난 주 12시간 근무에 합의했지만, 여전히 초단시간 노동자다. 

예술가의 노동시간

김병주 : "추가 연습을 얼마나 교묘하게 시키냐면 온라인 카페를 통해서 저희들이 연습해야 될 내용을 '참고하세요'하고 올려둡니다. 연습해오라고요. 연습했던 안무를 찍어서 올려요. 연습해오라고요. 대놓고 추가 노동을 요구하면 노조에서 항의하니 그냥 올리기만 합니다. 올리지 말라고 항의하면, '참고만 하라고 그냥 올린다'고 해요. 이런 거 올리지 말고 연습시간을 늘리세요. 근무 시간을 늘리시면 됩니다. 이게 저희 주장인 거죠."

그럼 몇 시간 정도를 노동시간으로 인정받으면 적당하다고 생각하느냐는 나의 질문은 우문이었다. 결국 공연의 질은 연주하는 본인이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쪽팔리지 않으려고', 합주 이외에도 하루에 보통 3시간 이상은 꾸준히 연습하거나 목소리 관리에 시간을 쓴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정승연 : "만약에 노래와 더불어 춤까지 춰야 한다 그러면 결국 안무를 외울 시간도 필요하죠.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해야 하면 이걸 또 외워야 하는 거고요. 다같이 연습하는 시간에 이걸 외우기는 부족하니까요. 그래서 하루에 협업으로 3~4시간 합창을 했다 하면, 그 다음에 2~3시간은 더 해야 하죠. 잠 잘 때도 관리하니까요. 가습기 틀어놓고 관리해야 하고, 컨디션 관리해야 하고, 만약에 오전에 공연 있으면 새벽에 일어나서 몸 풀어놓아야 합니다. 이런 걸 다 하면, 이걸 몇 시간이라고 말씀을... 그냥 삶이, 삶 자체가 거기에 다 맞춰져서 돌아가야 되는 업종인 거죠. 시간을 특정하자고 하면 하루 종일?" 

용인시립합창단뿐 아니라, 주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노동자는 법에도 따로 없는 '초단시간 노동자'로 분류되어 여러 법적 차별에 노출된다. 근로기준법에서 주휴수당과 연차의 적용이 제외된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에서도 제외된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 따라 퇴직금 적립도 제외된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계속 근로한 총 기간이 2년을 넘어도 무기계약 전환에서 제외된다.

이런 법적 차별도 서러운데 '비상임' 합창단으로 받는 차별은 일상의 주름마다 스며있다. 정승연 님이 내게 내민 이름표에는 '용인시립합창단 비상임단원'이라고 인쇄돼 있었다.

"이름표에 '정규직 직원' 이렇게 새기지 않잖아요. 이름표에서부터 꼭 이렇게 비상임이라고 써 놔요." 
 
2022.6.30까지 천막 농성 중이던 용인시립합창단 지회 김병주, 정승연 님.
 2022.6.30까지 천막 농성 중이던 용인시립합창단 지회 김병주, 정승연 님.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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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잃은 것, 존엄과 예술의 공공성

김병주 : "저희는 잠재적인 범죄자예요. 5년 째 일하지만 출입문 카드키가 없어요. 매번 들어갈 때마다 검문을 받아요. 누구세요? 합창단원이에요. 네, 들어가세요. 그래야 들어갈 수 있어요. 다른 직원들은 카드키로 틱 하면 문이 열려요. 저희도 그거 해 주세요 그랬더니, 이거 줬는데 도난 사건 발생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저희를 범죄자로 생각하느냐. 그런 일이 생기면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상관없이 형사처벌하면 되는 거 아니냐. 나쁜 짓을 했다면, 그건 상임 비상임 상관없이 사람으로서 하면 안 되는 일인데, 우리가 왜 이런 상황을 겪어야 하느냐고 항의했지만 지금도 저희는 연습실도 열어줄 때까지 밖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돼요. 추우나 더우나 문 열어줄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야 하죠. 항상 그런 차별을 보고 있는 상황인 거죠."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온갖 법률에서 적용 제외되는 '초단시간 노동자'인 이들에게 지나치게 낮은 임금도 문제지만, 창단 때부터 5년 째 매년 평정을 거쳐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고용 불안이 가장 큰 문제다. 

김병주 : "초단시간으로 있어야 2년을 근무하든 3년을 근무하든 정규직으로 전환이 안 되잖아요. (여러 예술단들이 비상임으로 운영하는 이유는) 그 부분이 가장 크다고 봐요. 기간제니까 해고는 정말로 쉽고, 이 사람에 대한 책임을 안 질 수 있는 구조를 이용하고 있다고 봐요." 

정승연 : "매년 하는 평정도 문제가 많아요. 1년 동안 제가 근무하고 연주한 결과로 평가를 받는 게 아니라, 딱 5분짜리 노래 시험으로 평가받는 거잖아요. 재단은 상임화를 하더라도 새로 공개채용을 하겠다고 하고 있어요. 얼핏 공정해보일 수도 있지만, 어떤 직장에서도 매년 시험을 다시 보면서 직장생활하지 않잖아요. 저희는 이미 한 차례 시험을 보고 들어와서 매년 시험을 거쳐 왔고요. 이제 와서 하는 공개 채용이 공정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불안하게 합창단이 운영되는 결과 가장 안타까운 것 중의 하나는 시립예술단으로서 추구해야 하는 예술의 공공성, 사회적 역할이 약화되는 것이다. 

김병주 : "시에서 재단으로 예술단 운영을 이관했을 때는, 예술 문화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이유를 댔는데, 지금 보면 1년에 연주가 굉장히 적습니다. 저희 합창단만 해도 1년에 공연이 10번이 채 되지 않습니다. 시립 도서관이 1년에 10일만 개장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시민들을 위해 상시적으로, 누구든 언제든지 관람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소수의 유료 공연밖에 없어요. 원래 시립예술단의 연주는 80~90%는 찾아가는 연주여야 해요. 시장, 노인회관, 초등학교 어디든 찾아가서 직접 보여주는 연주를 무료료 하는 것이 시립 예술단의 근간이어야 되는데, 그러지 않고 유료 연주밖에 거의 없다는 게 정말 문제라고 생각해요. 

넷플릭스든, 유튜브든 얼마나 쉽게 접할 수 있는데, 클래식이 구시대적인 거 아니냐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데 직접 공연에서 볼 수 있는 현장감이 있죠. 예술은 현장감이에요. 어릴 때 공연에서 느꼈던 것들은 평생 동안 큰 영향을 줄 수도 있죠. 우리가 딱딱한 플랫폼에서 느끼는 것과 실제로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른 거고, 그걸 통해서 또 다른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클래식은 모든 사람에게 어떤 구애나 차별 없이 다 제공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실 저희는 장기적으로 우리가 직접 시에 고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0대 후반인 김병주 님은 본인이 처음 음대에서 공부하던 시절만 해도 시립합창단은 모두 상근직이었다고 한다. IMF 이후 상근직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김병주 : "저는 초단시간 노동은 계속 늘어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만히 놔두면 모든 방면으로 확대될 것 같아요. 제가 처음 음악대학에서 공부했을 때는 모든 시립합창단은 다 상근직이었어요. IMF 터지면서 이 상근직이 없어지기 시작하고, 이후에 새롭게 시립 예술단이 만들어지면서는 아예 비상임으로 시작하는 거죠. 그 이후로 어느 시립 합창단도 상근직으로 시작한 곳이 없어요. 초단시간 노동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운영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자유롭게, 책임지지 않으면서 하겠다는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요. '초단시간'인 거 알고 선택해서 지원하지 않았느냐는 말이 말도 안 되는 거죠. 이제 상임을 뽑지 않으니까요." 

이런 상황은 시민들이 문화예술을 누릴 권리에 있어서도 차별을 낳는다. 재정이 크고 안정적인 곳은 시가 직접 운영하는 상임 예술단원들이 다양한 연주를 제공하고, 가난한 지자체들은 비상임으로 예술단 만들어놓고 운영 계획도 없이 방치하기 일쑤다. 용인시립합창단원들의 싸움은 모든 시민이 예술을 누릴 권리에서 소외되거나 누락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최민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7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초단시간_노동자, #용인_시립_합창단, #시립_예술단, #문화_예술_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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