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열린 아시아 럭비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김광민 선수가 트라이를 기록하고 있다.

9일 열린 아시아 럭비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김광민 선수가 트라이를 기록하고 있다. ⓒ 대한럭비협회 제공

 
다 이기나 싶었다. 한국 럭비의 사상 첫 월드컵 도전에 성큼 가까워지나 싶었다. 하지만 상대가 정규 시간을 모두 끝낸 뒤 마지막 공격 기회에서 '골든 킥'을 차낸 것이 너무나도 뼈아팠다. 

지난 9일 인천광역시 수산동 남동아시아드럭비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 럭비 챔피언십 결승. 이날 경기는 한국 럭비 사상 첫 월드컵 도전이자, 20년 만의 아시아 챔피언십의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런 결승전에서 대표팀은 아시아 전통의 럭비 강호 홍콩을 상대했다.

전반에는 뒤처지던 한국 선수들은 후반 발로 여러 차례 득점을 만들어내며 우위를 점하는 등 첫 월드컵 꿈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정규 시간을 모두 끝낸 뒤 심판이 '노 사이드'를 선언하기 직전 마지막 순간, 홍콩의 패널티 킥이 '골든 킥'으로 마무리되었다. 21-23, 너무나도 아쉬운 패배로 선수들은 다음 월드컵을 기약해야 했다.

킥으로 만든 역전, 눈앞에 다가온 첫 월드컵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홍콩은 영국령으로 오랜 기간 존속했던 영향을 받아 많은 럭비 선수들이 활동해왔다. 특히 영국계 선수들 대다수가 홍콩 유니언 유니폼을 입고 뛰고 있다. 당장 세계 랭킹도 홍콩이 22위, 한국은 30위였다. 냉정하게 보면 한국이 열세이지만, 물론 한국에 홈 어드밴티지가 있어 결과를 쉽사리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런 가운데 오후 5시 시작된 킥 오프. 시작부터 한국이 우위를 점하는 사건이 펼쳐졌다. 경기 시작 1분 만에 홍콩의 찰스 힉슨 스미스가 풀백 포지션에서 공을 받던 정연식의 목을 들이받으며 퇴장을 명받았다. 하지만 열 다섯 명과 열 넉 명이 맞붙게 된 수적 열세 상황에서도 홍콩의 기세가 매서웠다.
 
 9일 인천 남동아시아드럭비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 럭비 챔피언십 결승.

9일 인천 남동아시아드럭비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 럭비 챔피언십 결승. ⓒ 대한럭비협회 제공

 
경기 시작 5분만에 위기도 있었다. 홍콩은 한국의 왼쪽 진영이 빈 틈을 노려 공을 킥했고, 그 공을 터치하며 트라이로 만들어내는가 싶었다. 하지만 이 트라이는 '노 트라이'로 번복되었다. 하지만 홍콩은 전반 10분께 패널티 킥을 얻어내며 3점을 먼저 득점, 선취득점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홍콩의 공세는 계속 이어졌다. 20분 경에는 아예 스크럼 상황 괴력으로 밀어붙인 홍콩이 한 점의 트라이를 얻어내기까지 했다. 스코어 8-0. 홍콩은 컨버전 킥에는 성공하지 못하면서 한국은 한 숨 돌리나 싶었지만, 전반 35분 홍콩이 한 번 더 트라이에 성공한 데 이어 컨버전 킥까지 성공하며 15-0으로 점수 차가 벌어졌다.

그런 열세 끝에 마무리 된 전반전. 후반전에서 한국은 지친 홍콩 선수들을 상대로 비로소 득점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후반 5분 경, 한국은 발로 트라이를 만들어냈다. 킥으로 연이어 패스를 만들어낸 선수들은 인골 지역까지 공을 몰고 갔고, 최승덕(국군체육부대)이 트라이와 컨버전 킥까지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며 15-7로 따라갔다.

선수들은 본격적으로 '발'로 득점을 만들기 시작했다. 전담 키커 오지명(포스코건설)이 투입된 덕을 톡톡히 봤다. 오지명은 패널티 킥으로 무려 세 번의 득점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며 한국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다. 특히 오지명은 역전 득점까지 만들어내며 한국의 승리로 경기의 무게추를 기울여놓나 싶었다.

특히 주장 김광민(한국전력공사)은 재치 있는 플레이로 트라이까지 기록하기까지 했다. 체력 탓에 한국에 내내 득점을 내주곤 했던 홍콩이 트라이를 만들기는 했지만, 정규 게임이 끝난 시각 스코어는 21-20으로 한국이 여전히 앞서나가고 있었다. '노 사이드' 선언까지 수 분만 버티면 한국의 첫 월드컵이 가까워질 찰나였다.

아까운 '골든 킥'... 럭비 월드컵 도전 4년 뒤 기약
 
럭비는 정규 시간이 끝난 뒤에도 공을 잡은 팀에 공격 기회를 더 준다. 마지막 공격권을 보장하고, 타이트한 상황 더욱 짜릿한 경기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한국은 추가시간 동안 상대의 공세를 버텨내면 되었지만, 한국이 수비 도중 아쉬운, 하지만 결정적인 반칙을 범하며 홍콩에 공격권을 보장하게 되었다.

홍콩은 마지막 공격을 석 점을 뒤집을 수 있는 패널티 킥을 선택했다. 각도가 패널티 킥에 더욱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한국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은 포스트 사이를 통과해 홍콩의 역전 득점을 만들어냈다. 최종 스코어 21-23. 한국 럭비의 역사 첫 월드컵 도전이 4년 뒤로 다시 미루어졌다.
 
 아시아 럭비 챔피언십에서의 우승으로 럭비 월드컵 최종 예선에 출전하게 된 홍콩.

아시아 럭비 챔피언십에서의 우승으로 럭비 월드컵 최종 예선에 출전하게 된 홍콩. ⓒ 박장식

 
경기 후 만난 대표팀 주장 김광민 선수는 "개인적으로는, 상대가 킥을 차기 전에 이 공이 득점이 될 지, 아닐 지 느낌이 온다. 마지막 킥은 들어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고백했다. 이어 김광민 선수는 "초반에 한명이 퇴장당한 점을 공략해야 했는데, 후반에야 공략할 수 있었다"라며 아쉬워 했다.

최윤 대한럭비협회 회장 역시 "3년 전에는 홍콩과 경기하면 3대 60으로 졌다. 이제는 두 점 차가 되었다. 여기까지 기적적으로 따라온 선수들에게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특히 최윤 회장은 "대한민국 럭비 경기에서 관중들의 육성 응원이 나온 것은 처음"이라며 놀라운 감정을 드러냈다. 그는 "비인지 스포츠가 이 정도로 올라왔으니, 나 역시 더욱 열심히 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역대 최다 관중... 한국 럭비 새 이정표 의의 남겼다

이번 아시아 챔피언십에서 한국 럭비가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는 없게 되었지만, 한국 럭비는 또 다른 '최대'의 역사를 써내는 데 성공했다. 이날 결승전에 입장한 유료 관중은 1천 2명.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 열린 럭비 경기 최다 관중 기록이다. 

선수들도 관중들의 열띤 응원 가운데에서 경기를 치렀다. 특히 관중들은 '대한민국'을 외친 뒤 박수를 치는 등, 다른 인기 종목의 국가대항전이 부럽지 않은 명경기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이제 선수들은 오는 9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리는 7인제 럭비 월드컵에서 도전을 이어간다. 7인제 종목에서 올림픽에 출전하기도 했던 선수들은 17년 만의 월드컵 도전에서 새 역사를 쓰기 위해 바로 박차를 가하겠다는 각오다. 

찰리 로우 럭비 대표팀 감독도 "새로운 모자를 쓰는 마음가짐으로 9월에 있을 7인제 월드컵에 매진하겠다"라면서 "한국 럭비를 발전시키고, 다른 나라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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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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