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 포스터

<멘> 포스터 ⓒ 판씨네마(주)

 
<엑스 마키나>를 통해 가장 현실적인 AI와 인류의 만남을 독특한 연출로 선보인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멘>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신철 집행위원장은 이 작품에 대해 마지막 충격적인 15분의 장면을 언급하며 올해 가장 논란이 될 영화라 언급했다. 공포라는 장르적인 색깔에 충실하면서 한 여성의 심리를 깊게 파고드는 나선과도 같은 구조를 선보인다.
 
하퍼는 남편 제임스의 죽음 이후 마음의 치유를 위해 시골의 한 별장으로 향한다. 따뜻함이 느껴지는 별장 내부와 푸른 수풀로 가득한 주변, 유머러스한 관리인 제프리는 하퍼에게 힐링을 선사할 분위기다. 이 분위기가 바뀌는 건 혼자 산책을 하던 하퍼가 의문의 남자를 보면서다. 발가벗은 이 남자는 주변을 맴돌더니 별장으로 침입을 시도한다. 이후 '남자'는 '남자들'이 되어 나타난다.
 
미드 <페니 드레드풀>에서 프랑켄슈타인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로리 키니어는 남자들을 연기한다. 그의 1인 9역 연기는 이질적인 질감으로 불쾌함을 자아낸다. 이 불쾌함에는 하퍼 내면의 고통이 수반된다. 그녀에게 남편의 죽음은 가책처럼 다가온다. 제임스는 가스라이팅을 시도했고 자살인지 사고인지 알 수 없는 마지막을 보여줬다. 9명의 제프리는 이 죽음을 떠올리게 만든다.
 
 <멘> 스틸컷

<멘> 스틸컷 ⓒ 판씨네마(주)

 
별장에 온 하퍼가 사과를 나무에서 따서 먹는다. 르세상스 시대 화가들이 성경 속 선악과를 사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이 장면은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종교적인 측면을 강조한 요소들은 이 상징을 뒷받침한다. 사과나무 아래 알몸의 남자는 아담을 상징한다. 이브에 의해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다는 점에서 하퍼는 책망의 대상으로 비춰진다. 여기에 신부는 남편의 죽음을 하퍼의 탓으로 돌리며 고통을 준다.
 
남자아이는 숨바꼭질을 하자고 조르며 도망칠 곳이 없을 거라고 말한다. 남자아이가 쓴 여자가면은 하퍼의 내면에 제임스가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는 죽은 새에 가면을 씌우고 부러진 날개를 조종한다. 푸른 자연 속에서 자신의 삶을 찾을 줄 알았던 하퍼는 제임스의 악령을 통해 탈출구를 잃어버린다. 터널 반대편으로 하퍼가 향하지 못하는 모습 등 고통을 이겨내고 진정한 자신을 향해 비상하지 못한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바바둑> <미드소마> 등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에서 주인공이 공포에 잠식당하는 이유는 가족의 죽음 때문이다. 가족의 죽음으로 인한 부담과 책임감이 개인의 내면을 짓누른다. <바바둑>에서는 남편을 잃으면서 홀로 자폐증을 앓는 아들과 남겨졌다는 두려움이, <미드소마>에서는 정신적인 문제를 앓는 동생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며 가족과 동반자살을 택했다는 점이 개인이 악령에게 잠식당하는 이유가 된다.
 
 <멘> 스틸컷

<멘> 스틸컷 ⓒ 판씨네마(주)

 
<멘>에서의 악령의 원인은 제임스이지만 그 모습은 독특하게도 제프리로 표현이 된다. 이 지점에서 영화가 한 가지를 숨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퍼가 왜 제임스와의 부부관계에서 문제를 겪었는지 이다. 어쩌면 서로 다른 인물이지만 모두 제프리의 얼굴을 지닌 9명의 남자는 제임스가 하퍼에게 주었던 고통의 형상화일지 모른다. 이를 통해 영화는 해방을 꿈꾸는 여자와 상자에 가두려는 남자의 대결을 그린다.
 
서사의 측면에서는 죽은 남편의 악령과 해방을 얻지 못하는 아내의 심리싸움을 그린다. 표현의 측면에서는 알렉스 가랜드 특유의 기이함이 돋보인다. 떨어지는 제임스와 눈을 마주친 하퍼의 모습을 도입부로 설정하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화면에 자연스럽게 나타나 일상에 기괴함을 더하는 남자의 존재를 통해 위화감 없이 힐링을 공포로 전환한다. 이를 통해 한 여자의 죄책감을 기묘한 이야기로 형상화한다.
 
본격적인 공포가 시작되는 마지막 15분은 2019년 리메이크작 <서스페리아> 이후 가장 혼란스럽고 논쟁이 될 만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나선처럼 빠져드는 심리를 그리기 위해 장면적인 충격을 택하며 강렬한 소용돌이를 형성한다. 불쾌함을 형성하는 이미지의 나열을 통해 하퍼의 기억에 남긴 제임스의 모습을 표현한다. 이상하고 비상한 상상이 모두 허락되는 영화제임을 강조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다운 개막작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김준모 기자의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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