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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차이 나는 친구와 지난 3월 28일부터 산티아고 순례길 중 제일 길다는 은의길(via de la plata)-스페인 남부 세비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45일에 걸쳐 걸은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사실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여행을 좋아하고, 걷는 것도 좋아하는 나는 은퇴한 이후, 내가 아직도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지, 있다면 얼만큼 해낼 수 있는지, 앞으로 노후를 살아나가는 데 있어 내 체력이나 그밖의 내 능력은 얼만큼인지를 실험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도전해서 내 한계치를 알고 싶었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가 될까? 그래서 버킷리스트에 넣어놓고, 2018년 2월에 은퇴했을 때 가고 싶었는데 상황이 안 되어서 이제나 저제나 기회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인 21년 11월, 지인이 전화해서 자기가 산티아고 순례길 중에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은의길'(via de la plata)을 갈 건데 같이 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거리는 1000여km이며 프랑스길보다는 힘들고 덜 예쁘다고도 했다. 사실 그녀는 이미 8년 전에 프랑스길을 다녀온 경험이 있어서 이번이 두 번째 순례길이었다.

800km든 1000km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어차피 난 처음이니까. 다른 이유보다도 사실은 코로나 때문에 고민이 되었다. 그러다가 며칠 후 승낙을 했던 것이다. 코로나 환자도 줄어들고 상황이 호전되어 가는 것 같아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2시간씩 매일 걷기 훈련
 
21년 11월, 지인이 전화해서 자기가 산티아고 순례길 중에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은의길'(via de la plata)을 갈 건데 같이 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21년 11월, 지인이 전화해서 자기가 산티아고 순례길 중에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은의길"(via de la plata)을 갈 건데 같이 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 envato el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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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을 걷기 위해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도 겁이 났다. 걷는 걸 좋아하지만 100km도 제대로 안 걸어본 사람이 1000km를 45일간, 하루에 짧으면 5~6시간, 길면 10시간씩을 날마다 쉼없이 걷는다는 게 두려웠다. 선뜻 승낙은 했지만 한편으론 겁이 많이 났다. 하지만 언젠가는 갈 거라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체력이 제일 중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지난 1월 초 손목골절고정핀제거수술을 할 때 걱정이 되어 의사 선생님에게 장기 해외여행을 가도 괜찮은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못 가게 할까 봐 물어보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이 "일상생활엔 큰 지장은 없으나 겨울철 미끄러지거나 다시 넘어지면 큰일납니다"라고 주의를 주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수술 후 거의 2시간씩 매일 걷기 훈련을 했다. 집앞에 중랑천 길이 있어 하루에 10km 이상씩 걷기를 2달 이상 실천했다. 날이 좋거나 춥거나 눈이 오거나 상관없이 걸었다. 비록 평지이긴 하지만 가만히 있다가 순례길을 가는 것보다는 나을거라 생각했다. 맨몸으로 홀가분하게 걷긴 했지만 다리 힘을 훈련시키는 데는 보탬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집에 있는 트레킹화는 좀 무거울 것 같아서 가벼워 보이는 트레킹화를 미리 사서 익숙해지도록 신고 걸었다. 맘에 드는 디자인이 내 발보다 10mm 정도 큰 것만 있어 큰걸로 사고 신발 깔창 하나를 더 구입해서 깔았다. 발바닥에 무리가 덜 가도록 말이다. 엄청 폭신했다. 

그 외에도 산티아고 순례길에 관한 정보를 검색하고 블로그 등 관련 글을 찾아 읽었다. 글을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어서 유튜브나 동영상을 찾아봤지만 유명한 프랑스길에 대한 것은 제법 있었지만 '은의길'에 대한 내용은 많지 않았다.

발에 물집이 잡혀서 고생했다는 사람, 발톱이 빠져서 고생했다는 사람, 넘어지거나 무릎에 무리가 가서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람 등 예측하지 못한 다양한 이유로 완주하지 못하고 중지하고 돌아오거나 완주를 하더라도 고통을 겪었단 글을 많이 봐서 내심 긴장이 되기도 했다. 여러 가지 정보들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혼자서 감내해야 할 수밖에 없다.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라 정보가 많다 해도 체감하긴 어려울 터였다. 어차피 결정한 길이니 가야 한다. 그리고 할 수 있을 거라고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차근차근 준비를 했다. 비옷도 제일 가벼운 거, 배낭도 새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정보로 찾은 배낭을 다소 비싸다 싶지만 새로 구입했다. 신발 못지 않게 내몸과 하나가 되야 하니까. 출국하기 위해서 백신접종 영문증명서, 스페인 입국을 위한 SpTH QR 코드 발급도 받아야 했다.

떠나기 마지막 배낭 점검 
 
아주 가벼운 비옷으로 145g정도로 크기도 핸드폰길이보다도 짧음.
▲ 씨투써밋 비옷 아주 가벼운 비옷으로 145g정도로 크기도 핸드폰길이보다도 짧음.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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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떠나는 날 마지막으로 배낭 점검을 한 번 더했다. 유럽의 햇볕이 강하기에 챙겼던 기미죽은깨크림을 고민 끝에 뺐다. 몇 g 안 되지만 빼고, 셀카 스틱은 뺄까말까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가져가기로 결정했다. 일행이 있으나 걷는 동안에는 걸음 속도가 다르니 혼자 걷거나 순례길 이후에도 따로 다녀야 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필요할 거 같았다.

말로는 가방도 배달로 보내고 쉬엄쉬엄 걷는다고 했지만 겁이 나는 건 사실이었다. 게다가 10여kg의 배낭을 메고 걸어야 한다는 게 상상이 안 되었다. 가방을 쌌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같은 물건이라면 저울을 가져다가 10g이라도 가벼운 것을 넣으려고 애썼다. 예를 들면 양산도 두 개를 놓고 비교해가며 10g이라도 가벼운 거, 옷도 양손에 들어봐서 가볍고 실용적인 거를 넣고, 조금이라도 짐이 될 만한 건 미련없이 빼버렸다.

산티아고길 걷기 끝나고도 여행 50일을 더 해야 하는데 일단 필요한 건 가서 사기로 하고, 최소한의 짐만 꾸렸다. 양말도 3켤레, 속옷도 3개 정도만 챙기고 겉옷도 최소한으로 넣었다. 추우면 얇은 옷을 겹쳐 입기로 하며 짐을 줄이고 줄여 무게를 재보니 8.6kg 정도였다.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내겐 찍을 것이 많은 좋은 기회이다. 그래서 포기하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DSLR카메라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 과감하게 포기했다. 카메라 무게만도 1kg이고 보조배터리와 충전 케이블을 더하면 1.3kg은 될 것 같았다. 저렴한 알베르게에서 주로 묵을 예정이니 충전도 쉽지 않아 보였다. 최근에 새로 구입한 새폰 galaxys22ultra 한 개만 가져가자. 그리고 휴대용 보조배낭 작고 가벼운 거 하나를 접어서 넣어 갔다.

대체로 자기 몸의 1/10 정도의 무게로 짐을 싸라 했는데 그러면 6kg 안팎이어야 한다. 그보다 많이 넘어서 걱정이었다. 하지만 배낭무게만도 1.5kg인지라 더 이상 줄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식구들과 친구들의 걱정을 뒤로 하고 드디어 3월 22일 출국을 했다.
 
순례자여권-세비야 트리아나 백패커 호스텔에서 구입함
▲ 크레덴시알 순례자여권-세비야 트리아나 백패커 호스텔에서 구입함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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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며칠은 적응훈련겸해서 스페인 남부의 그라나다와 론다를 여행했다. 그리고 은의길 Via de la plata의 시작점인 세비야로 왔다. 순례길 시작 날보다 하루 전에 와서 하루는 구경을 하고 몸을 풀었다. 순례객이 많이 모인다는 Triana backpackers hostel에서 설명을 듣고 유료지도앱 via de la plata premium을 다운받았다. 또 순례객 여권인 크레덴시알을 구입했다.

3월 28일 드디어 순례길에 첫 발걸음을 뗐다.

태그:#산티아고, #순례길, #VIA DE LA PLATA,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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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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