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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미안해라. 우리 1000원 올랐어요."

한 달 만에 단골 프랜차이즈 치킨집에 갔다. 사장님은 내게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원래 이 가게 프라이드 치킨 한 마리 값은 1만6000원. 포장으로 픽업하면 2000원을 할인해줬다. 딱 현금 1만4000원을 준비해갔는데, 아뿔싸. 휴대전화 계좌이체를 이용해 1000원을 더 드려야 했다.

계좌번호를 여쭤보고 휴대전화 앱에 입력하는 동안 사장님은 식용윳값이 올랐다고, 닭값이 올랐다고 하며 연신 가격 상승의 정당성을 읊으셨다. 1000원이 올라 발길 끊을까봐 걱정이었을까, 아니면 괜스레 미안해서였을까. 뭐가 됐든 사장님도 가격을 올리고 싶어서 올렸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건 제자리인데... 물가만 뛰어 오르고 있다
 
필자가 일했던 금속가공 공장. 모자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12시간 넘게 밤새워 일하기도 했다.
 필자가 일했던 금속가공 공장. 모자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12시간 넘게 밤새워 일하기도 했다.
ⓒ 박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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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전역한 이후 지금까지 내 생활비는 월 30만 원에서 한푼도 오른 적이 없었다. 월 30만 원은 자취하는 대학생에겐 부족한 돈이라 학교에 다니면서 짬짬이 돈을 벌었다. 금속가공공장에서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동료와 단둘이 12시간 밤샘 작업을 하며 기계를 돌리기도 했고, 하루에 열 번 넘게 피를 뽑는 대학병원 생동성 실험에도 참여했다.

지난해 8월부터는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송고해 원고료를 벌기도 했다. 그렇게 돈을 벌어 모자란 생활비를 충당했다. 생활비를 쓰고 남는 돈으론 후배들 밥도 사먹이며 선배 노릇도 해보고, 읽고 싶은 책도 샀다. 가끔은 혼자 2만 원짜리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사치(?)도 부렸다. 풍족하진 않지만 그래도 스스로 만족하는 생활이었다.

그런데 이젠 이 자그마한 만족도 사치가 돼버린 것 같다. 고물가로 비단 치킨 가격뿐만 아니라 외식비가 전반적으로 다 올랐다. 3000원 하던 컵밥은 4500원이 됐다. 5500원 하던 국밥값은 7000원으로 뛰었다. 모자라면 얼마든 더 퍼먹으라며 공깃밥 무한리필을 자랑하던 학교 주변 백반집들의 대형 전기밥솥은 코드가 뽑힌 채 구석에 처박혀 있다. 

4년째 후원 중인 기부금도 부담이다. 매달 3만 원씩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기부금을 줄일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달마다 우편으로 날아오는 후원 아동의 모습에 '술 한 번 안 마시고 외식 한 번 안 하지'라는 생각으로 버틴다. 기부금 외에도 매달 내야 하는 가스요금과 전기요금, 휴
휴대전화 요금 등을 합치면 고정 지출만 10만 원이 넘는다. 

고물가 시대의 유일한 장점? 
 
지난 23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반찬 전문점에서 시민들이 반찬을 구입하고 있다. 2022.6.23
 지난 23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반찬 전문점에서 시민들이 반찬을 구입하고 있다. 2022.6.23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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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시대에 대학생이 줄일 수 있는 생활비라곤 결국 '식비'뿐이다. 외식을 줄이고 시장에 가서 장을 보는 게 그나마 싸게 먹힌다. 그마저도 한 팩에 2000원, 세 팩은 5000원에 할인해 팔던 시장 반찬가게들은 다 같이 세 팩에 6000원으로 가격을 맞췄다. 그래도 6000원이면 국밥 한 그릇도 못 먹는 요즘에 반찬 세 팩이면 감지덕지.

아직 1000원 대를 유지하는 두부와 냉동 가자미도 지금 같은 시대엔 참 고마운 식재료다. 예전 같았으면 두부에 달걀물을 입혀 부쳐 먹었겠지만, 지금은 달걀 한 판이 8000원에 달한다. 한 알로 따지면 다 비싼 걸 알면서도, 4개, 6개 등 소량으로 사먹다가 이젠 안 먹게 됐다.

외식을 줄이고 두부, 생선 등으로 집에서 음식을 해먹다 보니 자연스레 이번 달 별다른 운동을 안 했는데도 몸무게 앞자릿수가 바뀌었다. 후배 한 명은 담뱃값 때문에 이번 달부터 금연을 시작했다고 한다. 험난한 고물가 시대에 유일한 장점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고물가 시대에도 천 원이면 한끼 반찬으로 손색이 없는 두부는 정말 고마운 식재료다. 지난 22일 필자가 해먹은 두부 부침.
 고물가 시대에도 천 원이면 한끼 반찬으로 손색이 없는 두부는 정말 고마운 식재료다. 지난 22일 필자가 해먹은 두부 부침.
ⓒ 박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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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어야겠다 나서는 학생들... 그와중에 '남탓' 하는 위정자들

종강 이후 여름방학이 시작된 지금, 필자는 한 달 단위로 사람을 쓰는 칫솔 공장에서 2교대로 바짝 일을 할지, 최소 6개월 이상 일할 파트타임으로 설거지 알바를 구하는 식당에서 일하며 남는 시간에 자기계발을 할지 고민 중이다. 주변 후배들은 당장 생활비 용도로 일당 15만 원의 물류센터 일이라도 해야겠다고 말한다.

후배들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보면 다들 집에 '생활비 좀 올려주세요'란 말을 일절 하지 않고, 알아서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든다. 이제 어엿한 성인인데 집에 돈 달라고 손을 벌리겠느냐는 말이다. 겨우 서너 살 더 먹은 내가 봐도 기특하기 그지 없이 밥이라도 한 끼 더 사 먹인다.

학생들이 사는 세상은 이렇게 각박하게 돌아간다. 그런데 위정자들의 세상은 결이 다르다. 지난 20일 윤석열 대통령은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해 "고물가를 잡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고금리 정책을 쓰고 있는 마당에 생긴 문제들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어떻게 대처할 방도는 없다"고 말했다. 어디 그뿐인가.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로부터 고물가·고금리·고환율(3중고), 아주 나쁜 성적표를 물려받았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여당 원내대표가 한 말이 면피성 발언인지, 사태의 원인을 적확히 짚은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당장 눈 앞에서 서민들은 고물가에 숨이 넘어가는데 정부여당이 뾰족한 대책을 못 내놓고 있다는 건 확실해 보인다. 

고물가에 허덕이는 대학생들은 물류센터든, 2교대든, 뭐든 간에 나름대로 홀로 헤쳐나가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반면 책임과 대책 생산이 요구되는 당사자들은 먼 산만 바라보고 남탓이나 하는 모양새다. 연이은 큰 선거에 "서민"을 외치며 애정을 표하던 정치인들은 다 어디갔나. 서민의 팍팍한 삶과 정치인들의 말 사이엔 간극이 너무나도 크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오찬 회동에서 이준석 대표, 권성동 원내대표를 비롯한 참석자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오찬 회동에서 이준석 대표, 권성동 원내대표를 비롯한 참석자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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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고물가, #대학생, #물가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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