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 블랙리스트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 요구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문화예술단체 회원들

지난 4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 블랙리스트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 요구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문화예술단체 회원들 ⓒ 문화민주주읫실천연대 제공

 
박근혜 정부가 작성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국가배상 소송에서 진 정부가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데 대한 영화계의 비판이 커지고 있다. 국가범죄로 규정된 사건에 대해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와 문체부가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면서 영화인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독립영화를 배급하고 제작하는 '시네마달'은 박근혜 정부가 2014년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등 손해를 봤다며 1억 9천여만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문성관 부장판사)는 정부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고 정부와 영진위가 공동으로 영화사에 8천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 10일 항소했고, 하루 앞선 9일, 영진위도 항소장을 제출했다. 정부와 영진위는 소송에서 '시네마달'을 지원 배제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지원금을 신청했다고 해서 반드시 지원 대상자에 선정됐을 것이라 볼 수는 없다"라고 주장했다.
 
낮은 배상금액에도 손해배상을 인정한 법원의 판결을 의미있게 평가하던 영화계는 영진위의 이중적 태도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피해단체들이 연합한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정윤희 블랙리스트 위원장은 "영진위 쪽에서 항소를 안 할 것처럼 이야기를 했었는데, 항소를 하니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무책임한 행동 같다"라고 비판했다.
 
영진위 안에 구성된 '블랙리스트 피해 회복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위원회' 원승환 공동위원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 피고의 항소 없이 종결된 다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민사소송들처럼 대한민국과 영화진흥위원회의 항소 없이 마무리되길 기대했다"라며 "영진위와 대한민국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실행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시네마달이 받은 피해는 부정하면서 항소했다"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영진위와 정부 측 논리대로 "피해자가 반드시 지원 대상자에 선정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면 애초에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실행할 필요가 없었던 것 아닌가?"라며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이유는 혹시라도 지원배제명단에 있는 사람이나 단체가 지원을 받을까봐 0.1%의 가능성이라도 실현될 것 같아 실행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법원의 판결에 항소하다니 믿을 수 없다"라며 영진위 측의 어설픈 항소 논리를 반박했다.
 
"사죄없이 항소하며 보여주기식 태도 일관" 불괘
 
 지난 12일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칸영화제 수상 감독과 배우 등을 초청해 만찬을 제공했다.

지난 12일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칸영화제 수상 감독과 배우 등을 초청해 만찬을 제공했다. ⓒ 대통령실

 
지난 12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마당에서 칸영화제 수상한 영화인 초청 만찬 행사를 열고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겠다"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영화계는 기만술책 아니냐는 입장이다. 블랙리스트를 통해 문화예술계를 옥죈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보여주기식 발언을 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 때문이다. 
 
특히 초청자였던 박찬욱 감독, 송강호 배우, 정우성 배우 등은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이었다. 블랙리스트 국가범죄에 대해 항소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사죄하는 입장을 밝혔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시네마달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피해를 입은 작품 중 하나인 <구럼비, 바람이 분다>의 조성봉 감독은 "블랙리스트 범죄에 대해 일말의 사과도 없더니 항소를 했다"며 "지금껏 겉으로 반성한다고 떠든 것은 가식이었냐"라며 날을 세웠다.
 
이어 조 감독은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을 불렀으면 차라리 과거 보수정권이 저지른 블랙리스트 범죄에 사과하고 항소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게 정상이었다"라며 "반성 없이 보여주기식 태도로 일관하는 태도가 불쾌하다"라고 비난했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2017년 2월부터 12월에 걸쳐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이 연대해 제기한 소송들이 모두 피해자들의 승소로 판결났고, 정부가 항소하지 않았다며 정권이 바뀌고 나더니 태도가 달라졌다고 비판했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항소 기한이 있었으나 정부가 포기했는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임명된 이후 기조가 바뀐 느낌이라고 입을 모았다. 
 
국가소송법상 대한민국이 피고가 된 사건의 법률 대리인은 법무부가 담당한다. '법무부 장관은 국가 이익 또는 공공복리와 중대한 관계가 있는 국가소송 및 행정소송에 관하여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법원에 법률적 의견을 제출하거나 법무부의 직원, 검사 또는 공익법무관을 지정하여 의견을 제출하게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법무부의 태도가 바뀔 경우 현재 진행 중인 블랙리스트 관련 소송들이 2심으로 길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블랙리스트 피해단체나 개인들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영진위나 문체부 쪽에서 항소를 안 하고 끝내야지 더하면 뭐가 달라질 게 있냐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항소했다니 의아스럽다"라면서 정부 쪽 입장이 바뀐 것으로 밖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영진위나 문체부 쪽은 항소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이다. 영진위는 항소에 대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현재로서는 공식적으로 말씀을 드리기가 어렵다"라고 답했다. 문체부 측 실무 관계자는 지난 14일 "확인해서 알려주겠다"고 했으나 아직까지 답이 오지 않았다.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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