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8일~5월 7일까지 개최된 23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식

지난 4월 28일~5월 7일까지 개최된 23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식 ⓒ 전주영화제

 
6.1 지방선거 결과가 나오면서 국내 영화제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안도의 한숨을 쉬는 곳도 있는 반면 근심 어린 표정을 짓는 곳도 있다. 블랙리스트 사태가 재발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014년 <다이빙벨> 상영 이후 정치적 탄압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부산시의 태도는 현재 영화계의 불신을 설명한다.

반면 같은 시기 전주국제영화제는 달랐다. 한국영화의 울타리 역할을 자임하며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데 앞장섰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의 다큐멘터리들이 제작되는데 적극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4월 29일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중 열린 한국영화의 밤 행사에서 영화인들 사이에 오른 화제 중 하나는 지방선거가 국내 영화제에 미칠 영향이었다. 특히 영화인들은 강원도지사에 누가 오르느냐에 따라 몇 개의 영화제가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25일 열린 평창국제평화영화제 기자회견에서 방은진 집행위원장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바라는 점이 있냐는 질문에 "말을 잘못 하면 (예산지원이) 끊어질 수 있다"면서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공격적인 지원을 해주면 좋겠다. 더 많은 지원을 요청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지방선거 결과가 영화제에 미칠 수 있는 악영향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물론 현재 당선된 지자체장들이 공개적으로 영화제에 대한 지원을 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아니다. 문화예술에 대한 장밋빛 공약을 내놓은 경우도 많다. 그러나 영화계 우려는 여전하다. 강원영상위원회 위원을 맡았던 오동진 평론가는 "강원도지사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평창평화영화제의 생존 여부가 결정될 것이고 자칫 거기가 도미노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선거 직후에는  "평창영화제는 어려워 질 수도 있다"라며 "영화제들로선 팬데믹에 이어 폴리데믹을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선거 직전 강원도에서 개최된 한 토론 행사에 참석했던 또 다른 영화계 인사는 "강릉시장 당선자가 강릉영화제에 부정적 인식을 드러낸 적이 있다"라며 강원 지역 영화제들의 전망이 밝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춘천영화제의 경우는 민주당 육동한 시장이 당선되면서 한시름 놨다는 시선이 우세하다.
 
경기도지사 김동연 후보 당선에 영화계 안도
 
 무주군수 황인홍이 만세 삼창을 부르고 있는 모습이다.

무주군수 황인홍이 만세삼창을 부르고 있는 모습. ⓒ 무주군청


경기도지사가 김동연 후보의 신승으로 끝난 직후 영화인들은 안도했다. 어느 정당이 단체장을 역임하느냐에 따라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영화제 외압 논란은 인사 압력이나 지원 축소 등으로 이어졌고, 그때마다 정치와 한국영화가 충돌했다. 경기도 지역에서 개최되는 한 영화제 관계자는 "선거 결과에 조마조마했다"라며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유명 외국 감독이 '동영상으로 탄원서를 보내 주겠다'는 응원을 받았다"라고 밝혔다. 
 
블랙리스트 사태도 겉으로는 문화융성을 외치면서 이면에서는 차별과 배제의 기조가 작용했던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영화계 불신이 계속되고 있다. 한 영화계 인사는 "서울시의 영화제 관련 지원 예산이 15억이었다가 7억으로 삭감됐다. 다시 민주당이 우위인 시의회를 통해 17억으로 증액됐다"라며 "국민의힘이 시의회 과반을 넘기면서 앞으로는 지원이 쉽지 않게 됐다"라고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역시 영화제 전반에 대한 이해가 풍부했던 시장이 낙선하고 국민의힘 시장이 당선되면서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예전 보수정당 시장이 당선됐을 때 영화제를 낭비성 행사로 지목해 예산 축소 방침을 밝혔다가 나중에 철회했던 경험이 있는 탓이다.

반면 호남지역에서 개최되는 영화제들은 정치적 외압 논란의 무풍지대와 같다는 평가다. 지난 2일 열린 무주산골영화제 개막식에는 김관영 전북도지사 당선자와 재선에 성공한 황인호 군수가 참석했다. 이들은 사회자인 박철민 배우에게 당선 축하 인사를 받은 후 즉석에서 무주산골영화제 만세 삼창을 외쳐 박수를 받았다. 영화제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겠다고 약속한 모양새였다.

블랙리스트 옹호 발언 공공연히 등장
 
 블랙리스트 항의 시위를 벌이는 문화단체 회원들

블랙리스트 항의 시위를 벌이는 문화단체 회원들 ⓒ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보수정권 등장 이후 공공연히 블랙리스트 옹호 발언까지 등장하고 있는 것도 영화계가 우려하는 부분이다.

지난 2019년 파면됐다가 법원 판결로 복직한 현직 문화체육관광부 고위 공무원은 최근 보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문화예술계 좌파집단을 몰아낸다'는 블랙리스트 사건의 명분 자체는 옳았고 방법론에서 문제였다"고 말했다(관련기사 : '블랙리스트' 옹호한 문체부 고위공무원 "국민들 아직 선동 당해").
 
특히 그는 "이 일을 공개적으로 해야지. 몰래 숨어서 도둑질하듯 한 것은 바보 같았다"고 지적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깊이 생각해야 한다. 좌파와의 싸움의 본질은 역사전쟁, 확장하면 문화전쟁"이라고 말했다. 또한 "박형준 부산시장이 최근 언론인터뷰에서 '절대 부산영화제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굉장히 기회주의적인 발언"이라고 비난하기도 해 논란이 일었다. 
 
해외 유수 영화제를 통해 한국영화의 위상이 높아졌음에도 국가범죄로 규정된 사안을 공공연히 옹호하는 충격적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영화계가 지방선거 이후 불어닥칠지 모르는 블랙리스트 재현을 우려하며 경계하는 이유다.
블랙리스트 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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