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20 15:42최종 업데이트 22.05.20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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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한일관계 복원 방식과 관련해 일본 정부의 요구를 대체로 수용하고 있다. 위안부 및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나 전범기업이 직접 배상하지 않는 선에서 문제를 마무리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해 가고 있다.

최근 한일정책협의대표단의 방일과 일한의원연맹의 방한 등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양측은 2015년 위안부 합의 복원 같은 방식으로 식민지배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이번에는 독도와 관련된 신호로 해석될 만한 움직임이 일본에서 나왔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지난 17일 <산케이신문>에 독도에 관한 보도가 나왔다.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대신이 취임식 참석 차 한국을 방문한 지난 9일과 10일에 한국 국영기업의 위탁을 받은 노르웨이 선적 선박이 독도 남방 100킬로미터 해역인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서 해양조사 활동을 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보도였다.


보도가 나온 날,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정례기자회견을 통해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해당 선박의 항행 목적을 확인하고 주의를 줬으며, 일본 정부가 외교 경로를 통해 한국 정부의 설명을 요구했다'는 취지의 설명을 했다.

이에 대해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언론을 통해 반박성 발언을 내놓았다. 해당 선박은 한국 배타적경제수역 내에서 정당하게 활동했으므로 일본 측의 문제제기를 수용할 수 없다는 발언이었다.

그런 다음, 자유민주당(자민당) 회의에서 인상적인 발언이 나왔다. 자민당 정무조사회 외교부회 회장인 사토 마사히사 참의원 의원이 발언의 주인공이다. 한국 정당으로 치면 정책위원회 소속 위원장인 그는 해양조사선이 독도 주변을 항행한 것을 두고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얼굴에 사정없이 똥칠을 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발언했다. 한국이 일본 총리 얼굴에 사정없이 똥칠을 한 셈이라는 발언이다.

사토 회장은 하야시 대신의 방한 중에 해양조사선이 활동한 사실을 문제 삼으면서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하며 재차 발생할 경우에는 강경하게 대응하라"라고 외무성에 주문했다.

이런 상황을 정리하는 발언이 19일 하야시 외무대신에게서 나왔다. 참의원에 출석한 하야시 대신은 "외교 경로로 대응을 하자, 한국에서는 그런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설명을 전해왔다"라고 한 뒤 "일본 정부에서도 현장 해역 정보 등을 전체적으로 분석한 결과 실제 조사가 이뤄졌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라고 덧붙였다. 해당 선박이 해양조사 활동을 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독도 주변 수역에 대한 해양조사는 한국의 주권적 행위에 해당한다. 일본이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도 일본은 한국이 그런 조사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산케이신문> 보도, 마쓰노 관방장관의 이의 제기, 사토 외교부회 회장의 발언은 한국이 그런 조사를 했다는 이유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런데 하야시 대신은 그런 조사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발언했다. 자국이 문제 삼을 만한 일이 처음부터 발생하지 않았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는 현장에 있었던 해양순시선이 그런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가 요란스럽게 문제를 제기했다가 스스로 봉합한 것이다. 일본 홀로 북 치고 장구 치고 했던 셈이 된다.
  

제68주년 해양경찰의 날을 앞둔 2일 오후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 인근 해상에서 해양경찰 경비함정이 해양영토를 지키고 있다. 2021.9.2 ⓒ 사진공동취재단

 
일본의 메시지

그렇지만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그냥 지나칠 일은 아니다. 이번 소동을 통해 일본이 윤석열 정부에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표출됐기 때문이다.

사토 외교부회 회장이 막말을 한 것은 한국이 해양조사라는 주권적 행위를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야시 대신이 문제를 마무리한 것은 한국이 그런 행위를 한 것으로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는 독도 주변에서 한국의 주권적 행위가 일어나지 않으면 한·일 간에 문제 될 것이 없으리라는 일본 정부의 메시지를 반영한다. 독도 주변에서 주권적 행위를 하지 말라는 일본의 신호가 윤석열 정부를 향해 표시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작년 10월 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이상민 의원이 해양경찰청 자료를 근거로 독도에 대한 일본 측의 위협 실태를 발표한 일이 있다. 이에 따르면, 일본 순시선이 독도 인근 해역에 출현한 횟수가 2016년 93회, 2017년 80회, 2018년 84회, 2019년 100회, 2020년 83회다. 5년간 440회 출현했으니 나흘에 1번씩 일본 순시선이 독도 주변에 접근한 셈이다.

일본 순시선들이 그냥 왔다 가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한국 선박들의 해양조사 활동을 감시하거나 방해하는 활동까지 함께 했다. 그런 감시·방해 횟수가 2020년 한 해 동안만 해도 14건이었다고 이상민 의원은 보고했다.

이달 9일과 10일에 있었던 사건도 일본 순시선이 그 선박의 활동을 감시 혹은 방해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일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그 선박에 대해 해상보안청 명의의 주의 환기 조치가 가해졌다. 일종의 경고 조치가 가해진 것이다. 이런 조치들이 한국 측의 해양조사 활동에 제약이 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일본 정부가 이렇게 하는 것은 독도에 대한 한국의 주권적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독도를 한국과 점차 떼어놓고자 벌이는 일이다. 이번 해프닝을 통해 독도 주변에서 주권적 행위를 하지 말라는 일본 정부의 신호가 표출된 것도 같은 맥락에 놓인 일이다.

지금 자민당은 작년 11월 16일 있었던 김창룡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을 빌미로 TF팀까지 구성해놓고 새로운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다. 2022년 여름까지 새로운 대책을 내놓겠다고 공표해놓은 상태다.

일본이 그처럼 공격적 대응을 준비하는 상태에서 이번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이 해양조사를 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확인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관방장관과 자민당 외교부회 회장이 한국을 상대로 시비를 걸었다. 윤석열 정부를 길들이고 독도에 대한 한국의 주권적 행위를 차단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의도를 드러낸 일이라고 이해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후미오 기시다 일본 총리 ⓒ AFP=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위안부·강제징용 문제에서 일본의 요구를 수용하는 쪽으로 흘러가는 상황에서 독도 영유권과 관련해서마저 일본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주게 되면, 한일관계가 위태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의 독도 주권마저 위험해질 수 있다.

일본 극우세력은 위안부·강제징용 문제에서 자국이 가해자의 처지에 놓여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래서 자국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방법으로 이 문제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독도 영유권 문제에서는 자국이 피해자인 듯이 행동하고 있다. 본래 자신들의 땅이었던 독도를 한국에 빼앗긴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가 일본의 압력에 밀려 독도에 대한 주권적 행위를 자제하게 되면 일본 극우세력이 스스로를 더욱 정당화함은 물론이고 독도에 대해 노골적 행동을 서슴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이는 한일관계에 대한 일본 극우세력의 영향력을 더욱 높여주는 일이 된다. 독도 영유권에도 이롭지 않고 한일관계 안정에도 이롭지 않은 일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윤석열 정부는 이제라도 방향을 전환해 일본의 무리한 요구에 명확히 선을 긋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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