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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2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2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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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어제(18일) 열린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 기념사 가운데 이 구절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오월 정신은 보편적 가치의 회복이고,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입니다. 그 정신은 우리 모두의 것이고, 대한민국의 귀중한 자산입니다. 오월 정신은 지금도 자유와 인권을 위협하는 일체의 불법 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저항할 것을 우리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는 우리 국민을 하나로 묶는 통합의 철학입니다. 그러므로 자유민주주의를 피로써 지켜낸 오월의 정신은 바로 국민 통합의 주춧돌입니다."

어쩌면 처음으로 여야 정치권 전체가 함께 기념식을 거행하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면서, 문득 2018년 홀로 망월동 국립5.18민주묘지를 방문해 참배했던 기억이 났다. 마침 그날이 평일이어서인지 한적했던 그곳을 조용히 거닐며 5.18을 비롯한 대한민국 현대사에 벌어졌던 아픈 과거사들이 활동사진 돌아가듯 떠올랐다.

사회통합을 정치하는 목적으로 삼고 있는 내게는 적대적 진영정치의 뿌리인 이런 아픈 과거사가 늘 풀어야 할 과제기도 하다. 그래서 오월정신을 국민통합으로 연결지어 승화시키려는 윤석열 대통령의 기념사가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이로써 5.18은 호남(광주)에서, 진보와 좌익진영에서, 그 반쪽짜리 몸뚱이에서 비로소 해방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면서 다시 5.18과 관련된 나의 과거사로 돌아간다. 5.18은 과연 광주(호남)만의 것인가. 1979년 유신독재 시절 부산시민으로 부마항쟁을 직접 겪었고, '서울의 봄'을 앗아간 전두환 정권과 7년에 걸쳐 사적·공적으로 저항했던 내게 그건 수긍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분명히 5.18과 동지적 연대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5.18은 내게 휠체어를 타고서라도 민주화운동 현장에 나가게 하는 모멘텀이 돼줬다. 그래서 대단히 상징적이기도 하지만, 6월 시민항쟁의 시발점이었던 6.10민주항쟁 그날, 나는 '<부산>가톨릭센터'에서 독일 제1공영방송(ARD-NDR) 일본 특파원 '푸른 눈의 목격자'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가 <광주>의 참사 현장을 찍었던 5.18 동영상 <기로에 선 한국>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었다.

하필 5.18항쟁 진압의 주역이 전두환·노태우 등 영남인이라 당시 호남 지역에서 떠돌았다는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려 한다'는 유언비어에서 보듯, '가해자 영남-피해자 호남' '호남이어서 당했다'는 그런 구도가 만들어지기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5.18은 꼭 호남이라서 일어난 일은 아니다.

5.18 바로 6개월 전 박정희 정권 유신 말기 영남 지역에서 일어난 부마항쟁은 어떠했던가. 만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총탄으로 막지 않았다면 차지철 비서실장의 "탱크로 밀어버리자. 크메르에선 3백만을 죽여도 괜찮았다"는 호언대로 영남 지역에서 대학살이 일어날 뻔했고, 당시 부산시민이었던 내가 그 피해 당사자가 될 수도 있었다.
 
지난 2018년, 광주 망월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참배하고 있는 필자
▲ 부마민주항쟁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까지 지난 2018년, 광주 망월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참배하고 있는 필자
ⓒ 정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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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5.18에 지역감정이 스며들고, '가해자 영남-피해자 호남'의 구도가 5.18 가슴에 깊숙이 박힌 것은 비극이었다. 5.18정신 훼손의 근본 원인도 거기에 있었다고 본다.

5.18이 영호남 지역 대결구도나 또 그 연장선에서의 진보·보수 좌우진영 간 대결구도가 아닌 윤석열 대통령이 기념사에 밝힌 대로 '자유와 인권을 위협하는 독재정권에 저항한 민주시민' 그 구도로 새롭게 짜여질 때 5.18정신도 온전히 되살아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 참모진과 장관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국회의원 전원을 대동하고서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의미 있는 행보였다.

해방된 지 어느덧 80년이 다가오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이제 아픈 과거사는 죄다 치유와 화해의 길로 나아가도록 회자정리 차원에서 지도층들이 나설 때가 됐다고 본다.

이번에 한국ESG학회 세미나 차 제주도에 가게 되면서 평소 박명림 연세대 교수의 소개를 받아 한번은 반드시 가고 싶었던 4.3 유적지 하귀리 '영모원(英慕園)'을 방문하게 됐다.

그곳은 제주도민이 자발적으로 이른바 피해자와 가해자(그것도 군경 토벌군과 남로당 무장대)의 영혼을 함께 모신 곳이다. 4.3의 후손들 곧 제주도민들이 그렇게 한 이유 그 마음이 무엇이었을까. 우두머리 몇몇을 제외하곤 민중들은 그가 가해자든 피해자든 모두 역사 사건 현장에 '동원'된 희생자로 여긴 것은 아닌가.
 
지난 5월 4일, 제주4·3 유적지인 하귀1리 영모원(英慕園) 위령단을 찾아 참배하고 있는 필자
▲ 피해자와 가해자의 영혼을 함께 모신 제주도민 마음은... 지난 5월 4일, 제주4·3 유적지인 하귀1리 영모원(英慕園) 위령단을 찾아 참배하고 있는 필자
ⓒ 정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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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했던가. 서민들의 가정도 집안이 잘 풀리게 되면, 가난하고 힘든 시절 가족 간에 주고받아 쌓였던 상처들을 용서해주면서 하나로 껴안게 된다.

대한민국 지난 70년, 갖은 고난과 시련의 길을 걸어왔지만, 그래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한 세계경제대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거기 산업화 세력도 민주화 세력도 모두 한몫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등소평이 모택동을 언급하며 "유공유과(有功有過), 공이 있으면 과도 있는 법이다. 공칠삼과(功七過三), 공이 칠이고 과가 삼이다. 중국은 하나다. 전통은 계승된다."고 한 것처럼, 서로의 공로를 인정해주며 한마음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태그:#5·18 광주민주화운동, #제주 4·3사건, #윤석열 대통령, #국립 5·18 민주묘지, #영호남지역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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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정권교체동행위원회 장애인복지특별위원장, 대구대학교 한국재활정보연구소 부소장,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맹 수석부회장,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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