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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재택치료가 당연시되고 있는 요즘, 그 당연함이 빗겨간 사람들이 있다. 집이 없는 사람들, '홈리스'다.  

"나보고 비 오는 날엔 비를 피할 수 있는 데서, 눈 오는 날엔 눈을 피할 수 있는 데서 기다리라는 거에요. 어처구니 없는 대책이죠."
                         
확진 판정 후 사흘차, A씨가 서울역에서 밤을 보내고 있다.
 확진 판정 후 사흘차, A씨가 서울역에서 밤을 보내고 있다.
ⓒ 홈리스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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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A씨는 서울역에서 사는 거리노숙인이다. 적절한 거처가 없는 A씨는 자가격리를 할 수 없었다. 이에 A씨는 확정 판정을 받은 뒤에도 평소와 같이 서울역에서 지냈다. A씨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경고하며 서울역 안 화장실을 썼다. 확진자는 무료급식소를 이용할 수 없어 끼니는 거의 굶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0월 코로나 재택치료 원칙을 발표했다. 다만 노숙인 등 주거 취약계층은 그 대상에서 제외했다. 노숙인 등 복지법은 '노숙인 등(아래 홈리스)'을 ▲ 거리와 노숙인 복지시설에 있는 사람 ▲ 상당한 기간 동안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후자의 대표적 예시는 쪽방, 고시원, 찜질방, 여인숙에 사는 사람들이다. 보건복지부는 홈리스가 확진되면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하도록 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지침이 지켜지지 않는 일이 다반사다. A씨는 "노숙인이라 말했는데도 생활치료센터에 자리가 없으니 기다리라고 했다"고 말했다. A씨는 14일을 기다렸다. 끝내 입소 안내를 받지 못한 A씨는 거리에서 격리 해제됐다.

재택치료 지침이 마련된 지 7개월이 흘렀다. 홈리스 로즈마리(65)씨는 여전히 바뀌지 않은 거리노숙인의 격리 실태를 지적했다.

"여건을 마련해줘야 법을 지킬 수 있다"
 
용산구에 위치한 아랫마을홈리스야학에서 홈리스 로즈마리 씨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용산구에 위치한 아랫마을홈리스야학에서 홈리스 로즈마리 씨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나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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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잘 데가 없어서 두리번거렸는데 거리에 이불이랑 요강이 잔뜩 있었어요. 거기서 잤죠. 알고 보니 거기가 확진자가 잤던 자리였어요. 나라에서 확진된 노숙인한테 격리하라면서 이불이랑 요강을 줬던 거예요."

로즈마리씨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이어 로즈마리씨는 "아는 사람은 얼마 전에 확진된 후 공중화장실에 있는 대걸레 빠는 도구에 앉아서 잤다"며 "그 사람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가끔 가서 확인해봐야 했다"고 말했다. 여러 노숙인들의 확진 후 생활을 목도한 로즈마리씨는 코로나 감염에 대한 불안을 드러냈다. 거리노숙인은 확진돼도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데다가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로즈마리씨는 "요즘은 무료급식소가 많이 줄어서 노숙인들이 쓰레기통에 있는 걸 먹는 경우도 많다. 그런 상태에서 건강이 빠르게 회복될 리가 없다"고 말했다.

재택치료의 어려움은 비단 거리노숙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쪽방 주민은 화장실 없는 2평짜리 방에서 일주일 간 격리한다고 설명했다. 쪽방의 열악한 구조 탓에 확진자가 쪽방에서만 일주일을 지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안 활동가는 "방에 화장실이 없으니 쪽방 주민은 어쩔 수 없이 격리 의무를 위반하게 된다. 하루종일 용변을 참았다가 다른 주민들이 자는 시간에 몰래 복도에 있는 공용화장실을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 활동가는 "먼저 감염병예방법을 준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준 다음에 법을 지키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지침은 왜 지켜지지 않았나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생활치료센터에 자리가 없다. 노숙인도 재택치료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지난 3월,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침이 준수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그러나 재택치료를 전면 확대한 2월 중순 이후 생활치료센터는 낮은 가동률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8일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따르면 전국 생활치료센터 가동률은 2월 27일 기준 24.0%. 3월 20일 기준 28.8%, 4월 8일 기준 18.4%이다.

이에 대해 안 활동가는 홈리스에게 입소 안내를 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가 없는 것이 사태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안 활동가는 "현장에서는 눈에 불을 켜고 홈리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중앙에서는 지침이 준수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하는데, 정부에서 홈리스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택치료 원칙이 홈리스에게 남긴 '상흔'

재택치료 원칙은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적절한 거처를 가진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임덕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재택치료 원칙은 우리 사회가 홈리스를 어떻게 간주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 척도"라며 "홈리스에 대한 적절한 대처가 없는 원칙은 사실상 홈리스를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했다. 재택치료 원칙으로 인해 홈리스는 사회 구성원의 '예외'로 치부됐고, '예외'에 대한 제대로 된 지원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랫마을홈리스야학에서 홈리스들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벽에는 노숙인혐오에 반대하는 포스터가 붙어있다.
 아랫마을홈리스야학에서 홈리스들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벽에는 노숙인혐오에 반대하는 포스터가 붙어있다.
ⓒ 나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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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위원은 홈리스가 여러 복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실정을 꼬집었다. 임 위원은 "기저질환자나 고령층뿐만 아니라 홈리스도 감염취약계층에 포섭돼 충분한 의료적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위원은 "주거 지원 정책조차도 홈리스 등 당장 살 곳이 없는 극단적 주거취약계층보다 '내집마련'을 원하는 상위의 계층에 집중돼 있다"고 덧붙였다.

안 활동가 또한 홈리스 복지의 실질적 공백을 호소했다. 안 활동가에 따르면 홈리스에게 주어지는 주요한 복지는 1인당 수면 공간이 1평 이내인 '노숙인시설'에 수용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2021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홈리스의 수는 8956명, 노숙인시설 입소자 수는 7361명(82.2%)이다. 안 활동가는 "장애계에서 탈시설 지원이 확대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며 "사회적 약자 중 가장 대우받지 못하는 존재가 홈리스"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8월 정부는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을 통해 장애인에게 독립적인 거주공간을 지원할 계획을 밝혔다. 해당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공급물량의 5%(7000호)를 장애인에게 우선 공급한다. 그런데 홈리스에 대한 공공임대주택 공급은 매년 60호로 제한되고 있다. 확대 계획은 없다. 서울연구원 '서울시 노숙인정책 진단과 발전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서울시의 공공임대주택 전체 공급물량은 연평균 약 2만호다.

임 위원은 "의료지원 등 모든 복지의 전제조건은 '적정한 주거'라는 점이 코로나 이후 드러났다"며 "홈리스에 대한 주거 지원이 보다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태그:#홈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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