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시민기자 그룹 '40대챌린지'는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편집자말] |
'추억과 글쓰기,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다니!'
<글쓰기 가족 여행>이라는 책을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책 속의 가족은 6년간 총 12번의 여행을 다녀온 후 가족신문이라는 형태로 추억을 남겼다. 그러자 가족애가 끈끈해지고 아이들의 글쓰기 실력이 늘었다고 한다. 평소 나들이와 여행이라는 인풋은 많았지만 아웃풋은 핸드폰 속 사진에 그쳐 뭔가 늘 아쉬웠던 나에게 여행가족신문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마침 아이와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나도 한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구점으로 달려가 4절지를 사와 거실 바닥에 펼쳤다. 그런데 막상 가족신문을 만들려고 하니 막막했다. 당시 여덟 살이던 아이가 기사 형식의 글을 쓰기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육하원칙에 맞춰 쓰는 걸 좀 가르쳐볼까 했는데 아이가 머리를 싸매는 바람에 관두었다.
'가족신문을 쉽게 바꾸어 보면 어떨까?'
여행을 다녀와 물성을 가진 하나의 결과물을 만든다는 콘셉트는 유지하되 조금 더 자유롭고 가벼운 방식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일명 '아날로그 여행스타그램' 만들기! 인스타그램을 하듯 이미지를 넣고 그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쓰는 것이다. 인터넷이 아닌 종이에, 타자가 아닌 손글씨로, 혼자가 아닌 가족이 함께!
여행에서 돌아와도 끝나지 않는 여행
'여행스타그램'을 만들려면 가장 먼저 이미지가 필요하다. 굳이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출력할 필요는 없다. 여행을 다니면 여러 가지 이미지 자료들이 자연스럽게 손에 쥐어진다. 열차나 비행기 티켓, 관광지나 박물관, 미술관 입장권, 팸플릿 등을 이용하면 된다. 팸플릿은 종이에 그대로 통째로 붙이지 말고 기억에 남았던 작품을 두세 개 골라 오려 붙여야 의미가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가면 그 지역의 관광 안내 지도 팸플릿이 비치되어 있는데 그것을 챙겨 활용해도 좋다. 특히 아이들에게 지도는 보고 또 보게 만드는 매력적인 이미지다. 그밖에 여행지에서 샀던 엽서나 스티커, 물건을 싸주었던 포장지, 음식점 명함 등도 붙이면 여행의 현장감과 생생함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사진이지 않을까? 나 또한 여행지에 가면 무수히 많은 사진을 찍고 숙소에 들어와서는 그중 잘 나온 사진을 고르느라 계속 핸드폰만 들여다볼 때가 많다. 그런데 희한한 것이 그렇게 공들여 찍고 고른 사진을 여행 후 일상으로 돌아와서는 자주 들여다보지 않는다.
나는 여행지에서 찍었던 사진을 인화했다. 집에는 전에 선물 받았던 셀프사진인화기(포토프린터)가 있었다. 한 번도 사용해본 적 없던 그 기기를 꺼내 출력해 보았다. 기대했던 것보다 화질도 선명하고 인화도 빨리 되어 꽤 유용했다. 인화된 사진을 보니 여행 기억이 다시금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사진을 놓고 우리는 종알종알 말이 많아졌다.
"이때 행글라이더 탈 때 엄마가 소리 엄청 질렀잖아요. 내 귀가 아팠다니까요."
"응. 엄마는 무서워서 그랬지. 너도 좀 겁나지 않았어?"
"나는 진짜 시원하고 재밌어요. 위에서 내려다본 귤밭이 정말 멋졌어요."
"그럼 우리 여기에 사진을 붙이고 그 이야기를 쓰자."
여행스타그램에는 우리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여행지에서 읽었던 책과 들었던 음악도 기록으로 남겼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 여행을 다니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여행을 다녀오고 더 알고 싶은 내용 등도 썼다. 여행에 관해 기억나는 것이라면 뭐든 많이 적으려고 했다.
"서점 아저씨가 괴산의 '괴'자가 느티나무 괴라고 하셨잖아. 너 느티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
"아니요. 아빠는 느티나무 본 적 있어요?"
"응. 어렸을 때 할머니 댁에 가면 마을 입구에 아주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었거든. 여름에 느티나무 그늘로 들어가면 무척 시원했어."
우리는 이렇게 여행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경험을 다시 떠올리며 이야기 나누고 그것들을 종이에 일기처럼 썼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쓰면서 우리는 그곳으로 한 번 더 여행을 떠났다. 우리가 만든 여행스타그램은 식탁에서 밥 먹을 때, 거실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붙여놓았다. 우리는 그것을 수시로 보며 오랫동안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일상에서 여행을 즐기는 방법
우리집에 여행스타그램이 없었을 때는 여행 이야기를 이렇게 자주 하지 않았다. 재밌었던 여행도 시간이 좀 지나면 가물가물해진다. 그런데 여행스타그램을 하고 나서부터는 여행 추억이 쉽게 휘발되지 않고 한 장면 한 장면이 마음에 남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여행을 다녀오면 자연스럽게 여행스타그램을 만든다. 어느덧 2년 넘게 해온 일이다.
핸드폰, SNS상에 있는 여행 추억을 우리집 한가운데로 가져와 보면 어떨까? 일상이 그리 고단하게 느껴지지만은 않을 것이다. 너무 바쁘고 힘든 하루를 보내고 온 날에도 식탁 앞에 붙여진 여행스타그램을 보고 있으면 '저 때 참 좋았지' 하며 미소 짓게 되니까.
<여행준비의 기술>에서 저자는 떠나지 않는 일상에서도 충분히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여행 준비'를 말한다. 가고 싶은 여행지를 찾아 구글 지도에 별 표시를 하고, 명소나 음식점 등의 이용 후기를 읽고 구체적인 일정을 짜보며 상상으로 먼저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여행 방법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날로그 여행스타그램! 여행을 추억하는 것도 근사한 여행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