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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3월 27일 성베드로광장에서 신자들도 없이 거행된 코로나19 종식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비를 맞으며 제대로 향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 텅빈 광장에 홀로 선 프란치스코 교황 지난 2020년 3월 27일 성베드로광장에서 신자들도 없이 거행된 코로나19 종식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비를 맞으며 제대로 향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 바티칸 미디어 채널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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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전 해제되면서 종교모임도 자유롭게 되었다. 부활절 미사에 참례하면서 비록 마스크는 다들 착용하고 있지만, 성당을 가득 메운 신자들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그동안 모임이 자유롭지 못했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사태 앞에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 달라'는 질병관리본부의 권고에 따라 모임을 조심해야 하는 비대면 사회에서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곳이 종교계였음은 익히 아는 바이다. 면벽 수행(面壁修行)하지 않는 한 종교 행위는 모임을 통한 친교인 까닭이다. 교회라는 말 자체가 라틴어로 회중(會衆, ekklesia)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모임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종교계를 힘들게 했는지 충분히 이해되는 상황이다.

하필이면 코로나19 사태 초반 일부 종교 집회가 확산 지원지로 부각되면서 비난의 대상이 되자, 각 종단에선 자의반 타의반으로 종교 집회를 중단하게 된다. 천주교회의 경우 한국가톨릭교회 창립 236년 역사상 처음으로 미사를 전면 중단시키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고, 대한불교조계종도 전국 사찰에서 법회를 중단하기도 했었다. 개신교계 역시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온라인 예배로 대체하였지만, 전광훈 목사의 사랑제일교회를 비롯해 일부 교회에서 '교회당 예배'를 고집해 지자체와 갈등을 빚기도 했었다.

2년 전 이맘 때쯤이었다. 전세계가 팬데믹 공포에 떨던 그 때 하필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성베드로광장에서 신자들 없이 홀로 코로나19 종식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은 인류의 심금을 울렸다. 그날 교황은 "짙은 어둠이 우리 광장과 거리와 도시를 뒤덮었고 귀가 먹먹한 침묵과 고통스러운 허무가 우리 삶을 사로잡아버렸다. 우리는 두려움에 빠져 방황하게 됐다"며 "코로나19로 비탄에 빠진 인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려달라"고 간구했다.

그날 교황은 1522년 페스트가 로마를 휩쓸 당시 신자들이 십자가를 들고 16일간 로마 거리를 돌며 기도하자 페스트가 사그라들었다는 전설의 로마 산타 마르첼로 알 코르소 성당의 목재 십자가까지 모셔와 기도를 올리기까지 했다. 

종교는 믿음이 아니라 깨달음이다... 표층종교에서 심층종교로
 
당산동성당 회랑
▲ 믿음과 깨달음 사이 당산동성당 회랑
ⓒ 정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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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종교계는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하지만 대면 집회의 재개가 곧장 회중집회 중심의 종교로 단순히 복귀하는 것으로 되어선 곤란하다고 본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가 우리 사회에 준 긍정적인 효과 가운데 하나가 사회적 거리두기든 물리적 거리두기든 그 덕분에 대면 기회가 제한 받다보니 홀로 있는 시간이 자연스레 많아졌다는 점이다. 집단에서 벗어나 홀로 되면서 바쁜 일상 탓에 놓쳤던 자신을 되돌아보는 내적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비대면 시대가 가져다 준 뜻밖의 선물이었다.

종교적 관점에서 보자면 <예수는 없다>의 저자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가 말한 표층종교에서 심층종교로 나아가는 계기가 된 것이다. 오 교수에 따르면, 표층종교는 자신 육신의 안녕과 무조건적인 믿음을 중요시하고 신을 초월적 존재로만 보기에 자기 밖의 신을 찾지만, 심층종교는 새로운 나로 태어남과 깨달음을 중요시하고 범재신론(panentheism) 입장에서 신을 초월이자 내재적 존재로 보기에 신을 찾는 길이 곧 참된 나를 찾는 것이 된다.

심층종교에서는 지금의 나를 부정하고 죽여 더 큰 나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궁극목표로 삼기에, 교리와 율법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문자적인 '믿음'을 강조하는 표층종교완 달리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깨고 의식의 변화,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얻는 '깨달음'을 강조한다. 오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종교인들 중에 95% 정도가 표층단계에 있다"면서 "표층도 필요하지만 심층으로 가야한다. 표층에만 머무는 것은 종교적 발달장애라고 볼 수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 종교는 깨우침의 길 잃지 말아야 
 
국회의사당 공원에서 벚꽃이 피고 지고 있다
▲ 개화와 낙화 사이 국회의사당 공원에서 벚꽃이 피고 지고 있다
ⓒ 정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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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의 비대면 시대는 종교의 본령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성당이나 예배당에서의 미사와 예배, 사찰에서의 법회 같은 공적 전례가 거의 멈추면서, 신앙생활이라 하면 그저 종교 집회에 함께 모이는 것으로만 여겼던 우리들의 전통적 신앙관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온택트(ontact)이든 언택트(untact)이든 대면 집회를 가질 수 없도록 만들었던 지난 3년은 대중집회를 신앙 활동의 중심인양 내세웠던 종교기관들에게도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 받게 만들었다. 종교계에선 이미 그런 각성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그것을 더욱 앞당기고 있을 따름이다.

종교가 사회를 걱정해야 하는데,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고 있는 시대. 각 종교에서 주장하는 종교인 수를 더하면 총인구수보다 더 많다는 종교백화점 국가, 다양한 종교들이 전투적 포교활동을 펼치며 경쟁하고 있는 사회, 하지만 종교에 대한 국민들의 매력은 갈수록 잃어 가는지 2015년 통계에 의하면 본인이 무종교인이라 대답한 경우가 전체 인구의 56.1%를 차지하고 있는 무종교 국가. 이것이 대한민국 종교계의 실상이다.

종교적 이 위기시대에 새로운 깨달음과 깨우침,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다. 지난 2천년 동안이 종교적 천재들인 고등종교 창시자의 깨달음을 단순히 추종했던, 본회퍼가 말한 '값싼 믿음'의 시대였다면, 이제부터는 개개인과 대중 스스로가 깨우칠 때다. 부활절이 지나가고 다시 부처님 오신 날(5월 8일)이 다가오는데 불교야말로 그 어느 종교보다 깨달음과 깨침을 중요시하는 종교 아닌가. 하지만 강남대로나 광화문광장 등 큰 거리를 수놓고 있는 오색 연등만큼이나 불교 역시 외형적 화려함에 취해 있는 것은 아닌지.

초파일 연등축제는 내가 누구보다 좋아하는 연중행사이고, 조계사와 봉은사는 나와 같은 휠체어 장애인들에겐 그 용이한 접근성 때문에 즐겨 찾는 곳이지만, 이번 부처님 오신 날에는 청량한 법정스님의 수필을 일주문(一柱門)으로 삼는 것도 좋을 것이다. 거기 수필집 <아름다운 마무리>에서의 "사람이든 사물이든 또는 풍경이든 바라보는 기쁨이 따라야 한다. 너무 가까이도 아닌 너무 멀리도 아닌 알맞은 거리에서 바라보는 은은한 기쁨이 따라야 한다"는 말씀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사람이 세상과의 사이에서 서 있어야할 알맞은 거리란 얼마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구절 아닌가.

태그:#팬데믹, #표층종교, #비대면 사회, #심층종교,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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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정권교체동행위원회 장애인복지특별위원장, 대구대학교 한국재활정보연구소 부소장,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맹 수석부회장,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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