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김오수 검찰총장이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회의에 출석해 '검수완박' 법안 입법과 관련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김오수 검찰총장이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회의에 출석해 "검수완박" 법안 입법과 관련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에도 수사권을 지키기 위한 검찰의 저항이 거셌다. 이때는 자치경찰제 도입과 함께 추진된 '경찰 수사권 독립'에 대해 검찰이 집단적으로 맞섰다. 당시 핵심이 됐던 것은 검찰의 수사지휘로부터 경찰을 독립시키는 것이었다.

그해 4월 27일 김광식 경찰청장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자치경찰제 시행 방안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수사권 독립 문제를 제안한 것이 논쟁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됐다. 그해 5월 8일자 <매일경제> 4면 기사는 "경찰은 이 보고서에서 경찰행정의 효율성과 신속성을 위해 수사상 검찰 지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경찰청장의 제안에 공감했다. 그래서 후속 조치들이 속도감 있게 진행됐다. 청장의 보고가 있고 나서 엿새 뒤에 발행된 5월 3일자 <조선일보> 2면 기사는 "(경찰청이) 2일 그 내용을 '자치경찰제의 이해'라는 소책자로 만들어 전국 일선 경찰에 배포했다"고 전했다.

책자 배포 이틀 뒤인 5월 4일에는 당정협의가 열렸다. 자치경찰제와 수사권 독립에 대한 집권당 차원의 공감대가 이로써 형성되기 시작했다. 5월 7일자 <한겨레> 기사는 "당정은 경찰 수사권 독립과 관련해 앞으로 법무부 등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의견을 수렴한 뒤 7월 말까지 수사권 독립 채택 여부 등 최종안을 마련해 의원 입법안으로 9월 정기국회에 발의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추진됐지만, 1999년의 수사권 개혁 시도는 '불발'로 끝났다. 검찰의 공세를 경찰도 막지 못하고, 정권도 막지 못한 결과였다.

5월 4일 당정협의에서 필요성이 거론된 의견 수렴을 가장 적극 활용한 쪽은 검찰이었다. 5월 8일자 <경향신문> 22면 기사에 따르면, 검찰은 처음에는 "대응하면 손해"라는 판단 하에 입장 표명을 보류했었다. 그랬다가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본격적인 공세에" 나서게 됐던 것이다.

"수사권 독립, 인권 후퇴시킨다" 검찰의 대응 논리 
 
1999년 5월 8일자, 자치경찰제를 다룬 <경향신문> 22면 기사.
 1999년 5월 8일자, 자치경찰제를 다룬 <경향신문> 22면 기사.
ⓒ 네이버

관련사진보기

 
이때 검찰이 구사한 대응 논리 중에서 인상적인 두 가지가 있다. 그 둘을 살펴보면, '한국 검찰은 자신의 과거를 쉽게 잊는 망각의 존재'라는 인상을 준다.

집권당인 새정치국민회의와 김대중 대통령도 공감을 표시했지만, 검찰은 '절대 불가'라며 강력하게 제동을 걸었다. 그러면서 내세운 대응 논리 중 하나가 인권보호였다. 위의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5월 7일 김태정 검찰총장은 "경찰의 수사권 독립은 오히려 인권을 후퇴시키는 것으로 옳지 않다"면서 "수사권 독립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이 신문 22면에서는 검찰의 입장이 좀 더 직접적으로 소개됐다. 경찰이 수사권을 갖게 되면 국민 인권보호가 근간에서부터 흔들리게 된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었다. 또 검찰은 "한마디로 국민의 인권보호와 민주법치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있을 수 없는 발상"이라며 "경찰의 자의적인 권한 남용을 견제할 수 있는 기능이 없어져 국민인권 보호에 심각한 구멍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검찰 수사권의 전면 조정을 내용으로 하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논의되는 2022년 지금도 인권보호 논리가 대응 논리로 구사되고 있다. 이달 20일 나온 전국평검사대표회의 입장문은 "국민들께서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는 대다수의 민생범죄, 대형 경제범죄 등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범죄들로부터 국민을 더 이상 보호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이라고 한 뒤 이렇게 주장했다(관련 기사: 평검사들, '문 대통령이 내준 숙제' 풀까 http://omn.kr/1yfxx ).

"검수완박 법안은 검사가 기본적인 사실조차 확인할 수 없게 만들어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고, 검사의 판단을 받고 싶어 이의를 제기해도 검사가 이를 구제할 수 있는 절차를 없애 버렸습니다. 구금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과오를 시정할 수 있는 기회와 인권침해가 큰 압수수색 과정에서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까지도 없애 버렸습니다."

지금까지 수사권으로 인한 인권침해 사례들은 경찰과 검찰의 합작 혹은 상호 묵인에 의해 일어났다. 검찰이 독자적으로 양산해낸 인권침해도 많고, 수사지휘권을 가진 검찰이 경찰을 제대로 견제하지 않아 발생한 인권침해도 적지 않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아 법원에 넘기는 중간 단계인 검찰이 인권보호 책임을 제대로 이행했다면, 경찰로 인한 인권침해는 현저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지금 추진되는 검수완박은 검찰을 견제하는 측면도 있지만, 이제까지 수사권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두 기관을 따로 떼어놓는 의미도 있다. 경찰 역시 당연이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그간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참회가 전제되지 않는 검찰의 경찰 비판은 설득력을 갖기 힘들 것이다. 1999년에 검찰이 구사한 인권보호 논리는 그런 점에서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인권문제, 자질문제... 검찰, 경찰 탓할 위치에 있나   

인권문제와 더불어, 검찰 혹은 친검찰 진영이 구사한 또 다른 논리는 '경찰관 자질' 문제였다. 경찰이 과연 독립적으로 수사를 담당할 역량이 있느냐는 주장들이 제기됐다.

1999년 5월 8일자 <경향신문> 사설은 "수사권을 둘러싼 검·경 간의 대립은 지난 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이래 정치·사회적 변혁기 때마다 불거져나왔다", "논쟁의 대부분은 검찰의 지휘에서 벗어나려는 경찰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되었으나 번번이 아무 소득도 없이 끝나고 말았던 게 사실이다"라고 한 뒤 다음 두 문장으로 글을 끝맺었다.

"경찰의 자질 향상이 선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이번 논쟁이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수사권과 관련된 자질은 수사권을 가진 조직의 집단적 역량에서 일차적으로 드러난다. 이에 관한 역량을 평가할 때는, 경찰관보다는 경찰 조직을 먼저 살펴보는 게 순리다. 경찰 조직이 수사에 필요한 조직력과 정보력을 갖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다.

경찰관과 검사 중에서 누가 더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는가는 이차적인 잣대다. 수사권과 관련된 조직적 역량을 감안하지 않은 채 경찰 자질론을 퍼트렸다는 점에서 당시의 친검찰 논리는 설득력을 지니기 힘들었다.

그래서 자질론 시비에 대한 불만이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서도 제기됐다. 일례로 5월 7일자 <동아일보> 7면에 따르면, 한광일 총경은 "검찰은 으레 수사권 독립과 관련해 경찰의 자질 문제를 거론한다"고 불평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의 자질 문제를 부각시킬 만한 돌발 사건이 일어났다. 검찰 특수부가 경찰청 국장을 수뢰 혐의로 구속하는 사건이었다. 5월 20일자 <조선일보> 1면 우중단은 "서울지검 특수2부(부장 김인호)는 19일 경찰 수사를 받고 있던 아파트 관리업체로부터 수사를 무마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22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경찰청 박희원(57) 정보국장을 구속 수감했다"고 보도했다.
 
1999년 5월 20일자 <조선일보> 1면
 1999년 5월 20일자 <조선일보> 1면
ⓒ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관련사진보기

 
이 일은 상당한 파장을 낳았다. 5월 21일자 <경향신문> 사설은 "경찰청 정보국장인 박희원 치안감이 독직 혐의로 구속된 사실은 충격적이다"라고 한 뒤 "그동안 줄기차게 도마 위에 올랐던 경찰의 자질이 이번에 또다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말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러한 행태가 고쳐지지 않은 한, 경찰은 결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수사권 독립도 마찬가지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찰 구성원의 자질 향상과 도덕성 재무장 방안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이 사건은 수사권 독립의 추진 동력을 상당히 떨어트렸다. 박희원 국장이 구속된 다음날 김광식 경찰청장은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해야 했다. 이후 박 국장은 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과 추징금 22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인권문제도 그렇지만 자질론 역시 검찰이 자신 있게 건드릴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검찰 역시 기소권 남용, 제 식구 감싸기, 권력 지향성 등을 통해 자질 부족을 드러냈다. 그래서 인권문제와 더불어 자질론 역시 검찰이 꺼낼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이는 검찰 스스로를 욕되게 할 만한 일이었다고 본다.

그런데도 검찰은 대담하게 경찰을 비판했다. 자신의 옷에 묻은 얼룩에 개의치 않고 경찰의 옷에 묻은 얼룩을 자신 있게 나무랐다. 이런 검찰의 공세 앞에서 1999년의 수사권 개혁은 결국 무산됐다. 한국 검찰은 자신의 과거를 쉽게 잊는 집단이라는 느낌을 갖게 할 만한 사례다.

태그:#검찰개혁, #검찰 수사권, #검수완박, #수사권 독립, #검경 수사권 조정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