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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누나>를 우연히 본 적이 있다. 한 회를 채 보지 못하고 돌렸다. 드라마 볼 여유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하루가 공감되지 않았다. 그들은 30대 직장인이었다. 그런데 드라마 속 그들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인 것 같았다. 그들은 야근하고,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고, 산책하고, 밤새 같이 게임을 하고, 다음날 멀쩡히 출근했다. 세상에, 너무나도, 공감이 안 됐다. 20살이라면 가능했을까 싶은 체력과 나에겐 없는 무한한 시간이 그들에겐 주어진 듯했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연애를 할 때도 다음날 할 일을 생각하며 시간을 조절하고, '체력관리'를 위해 밤새 데이트를 하는 건 다음 날 쉴 때만 가능하다. 우리 몸은 하나이기 때문에 '사랑'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건 있는 것이다. 내 몸이 여러 개라면 연애용, 일하기용, 집용 등 용도에 따라 구분해두고 싶다는 상상을 한다. 상사한테 욕먹은 날, 친구를 만나 맛있는 걸 먹어도 즐겁지 않을 때, 할 일이 태산인데 부모님 생일일 때 몸을 분리하고 싶다. 그런데 드라마 주인공이 아닌 나의 몸은, 평범한 사람의 몸은 늘 하나이다. 

몸이 두 개면 좋겠지만 

새벽에 일어나 식구들의 아침을 챙기고 학교와 일터로 보낸 소영씨는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빨래를 넌 뒤에야 씻고 화장을 한다. 그리고 돌봄교실로 출근한다. 소영씨는 12시까지 학교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하는 시간제 돌봄전담사이다. 그는 수십명 아이들의 방과 후 수업을 준비하고 간식을 챙겨주는 등 돌봄교실 운영에 필요한 모든 일을 한 뒤에 집으로 향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학원을 다녀온 아이들이 먹은 간식을 치우고 저녁을 준비한다. 설거지를 마친 뒤,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고 남편의 직장 고충을 들어 주고 나서야 잠자리에 든다.

그는 정말이지 몸이 2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 한다. 그러나 그의 몸 역시 2개일 수도 없다. 그는 잠을 자는 5시간 정도를 제외하고는 집에서, 직장에서 쉬지 않고 일한다. 그의 몸은 단 한 순간 분리나 단절 없이 장소와 대상, 노동의 내용만 달라질 뿐 끊임없이 쓰이고 있다. 일과 가정, 공과 사,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 쉬운 일과 어려운 일. 어떤 일이든 우리의 몸이 한다. 

우리의 몸이 하나라는 사실은 불편한 진실이다. 노동자는 본인의 노동력을 이용해서 생존하는 사람이다. 노동의 내용이 아무리 달라진다 해도 그 노동이 누군가의 몸에서 나온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노동자에게 몸은 결국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노동자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건강한 삶을 살 권리가 있다.

신체의 건강은 단순히 주관적인 안녕을 넘어서 다른 이들과의 사회적 상호관계를 맺는 능력과 이를 통해 얻는 편익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1) 노동자의 건강권은 단순히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함을 넘어 존엄하게 살기 위한 기본 권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에게 몸이 단 하나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진실이다. 

이러한 진실은 그를 고용하고 있는 사용자에게는 불편하다. 노동자의 몸이 하나라는 사실을 회사가 받아들인다면 그는 노동자가 가정 내에서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노동자의 전체적인 1일 노동시간과 강도를 고려해서 업무를 부여해야 한다. 노동자 개인마다 차이가 있으므로 사용자는 이를 알려고 시간을 투자하고 노동자가 전반적인 건강을 유지하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업무를 부여해야 한다. 그런데 사용자는 이런 노력을 하는 것보다 노동자가 출근하기 전에 집에서 쓰는 몸은 집에다 두고, 새로운 몸으로 출근하는 것처럼 취급하는 편이 훨씬 편한 것이다. 

그러나 사용자의 주문처럼 우리는 몸을 분리할 수 없다. 우리는 하루를, 10년을, 100년을 단 하나의 몸으로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의 몸은 생애 전반에 걸쳐, 집, 회 사, 그가 머무르는 모든 공간에서 건강을 위협받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안전을 해치는 위 협이 특정 공간 또는 특정 시간 내에만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위협은 다른 공간에, 다른 시간에 존재하는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무리 우리가 집과 회사, 공 과 사 따위를 구분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한다고 해도 완벽한 분리는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1명의 노동자에게 1.5명의 업무량을, 정해진 임금 안에서 수행토록 하는 것이 흔한 일인 이상 일터에서의 안전은 더욱 중요하다. 
 
노동자의 몸이 하나라는 사실을 고용주가 받아들인다면 그는 노동자가 가정 내에서 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노동자의 몸이 하나라는 사실을 고용주가 받아들인다면 그는 노동자가 가정 내에서 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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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을 겪는 몸, 일터의 위험은 평등하지 않다 

우리의 일터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존재한다. 사회가 차별적이므로, 사회 안에 존재하는 일터 역시 차별의 영향을 그대로 받는다. 동시에 노동자의 몸은 하나이므로, 일터 안과 밖에서 사회적 차별을 겪는다. 

레슬리 도열은 차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상대적으로 열등하다는 문화적 메시지에 직 면하면서 심리적으로 자아 형성을 위한 '투쟁'을 경험하는 것이고, 이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 안녕을 획득하는데 '장애'를 겪는 일이라고 했다. 산업재해, 임금체불, 부당해고 등은 모든 노동자가 경험하지만, 여성, 장애인, 고령자 또는 청소년, 이주민 등 사회적으로 차별 받는 자들이 노동자가 되었을 때는 일터에서의 안전함, 노동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한층 더 어려운 일이 된다. 

이러한 차별의 영향을 한국계 미국 작가 캐시 박 홍은 '마이너 필링스'라고 이름 붙였다. 그는 은근하게 계속되어 끝내 내면화된 차별과 구별짓기가 한 개인의 마음속에 불안, 짜증, 수치심, 우울감 등으로 자리게 되고, 이 감정들은 무시하기엔 날카로워서 삼키면 상처가 되고 내보이면 혐오의 표적이 된다고 지적한다.2)

분명 강력한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마이너 필링스는 사소하거나 개인적인 또는 '감정적인', 그래서 중요하지 않은 것들로 여겨진다. 그뿐만 아니라 마이너 필링스를 느끼는 사람들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차별은 분명히 존재하며, 이로 인해 우리는 영향을 받는다. 노동자가 경험하는 일터의 위험은 평등하지 않다. 

1) 레슬리 도열, 무엇이 여성을 병들게 하는가 – 젠더와 건강의 정치경제학 
2) 캐시 박 홍, 마이너 필링스 이 감정들은 사소하지 않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한울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4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여성_노동자, #차별, #가사_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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